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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E리제 Dec 16. 2015

Tournesol의 엽서 공장

당신을 듣다 #1. 한 대학생의 기부 엽서 프로젝트

여행 중에 사진을 찍다가 양이 점점 많아지니까 
'이거를 다른 식으로 활용해볼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든 거죠 그냥. 
이렇게 수익 전액을 좋은 일에 기부한다는 전제로 그의 엽서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오늘의 당신을 소개한다.


사진 찍기를 좋아한답시고 어설프게 카메라를 들고 다닌 적은 많지만, 이 사진들을 엮어서 어디엔가 좋은 일에 쓰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이 친구의 프로젝트를 들었을 때 '아뿔싸!' 싶었다. 이렇게도 할 수 있었구나. 프로가 아닌, 준프로급도 아닌 평범한 대학생의, 지극히 개인적인 프로젝트. 개인적인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가장 충격을 받았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기부 업체나 후원 업체에서 일하지 않더라도 개인 단위로 가능한 일일 수 있었다니.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단단한 선입관의 벽  한쪽이 꽝, 하고 와르르 무너졌다. 한편으로는 소규모라도 사업은 사업인데, 이런 일을 벌일 때에  스스럼없이 생각대로 밀어붙일 수 있다는 실행력 그 자체가 나는 부러웠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내가 이 인터뷰를 기획하면서 단연 제일 먼저 떠올린 사람이었다. 




진일석


뚤네솔의 엽서 공장 공장장

사진 찍기가 취미인 대학생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무민 덕후



  처음에는 개인 SNS에 올리는데 반응이 좋은 거예요.

여행 시작할 때, 유럽여행을 또 언제 한 달을 갈지 모르는데 가능하면 글도 많이 쓰고 사진도 많이 찍고 해서 ‘여행기나 여행 수필 같은 걸 한 번은 쓰면 정말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는데 글감을 계속 메모를 해도 책이나 뭔가 연결성 있는 결과물로 나오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너무 드는 거예요. 갈수록 여행만 해도 지치고 피곤하고. 그래서 그냥 그거에서 목표를 확 좁힌 것이기도 하죠, 어떻게 보면. 사진위주로 하되 사진  업로드할 때 내 생각이나 이런 글을 같이  포스팅하기도 하고.


이렇게 처음에는 그저 이 사진을  가벼운 발상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랬다. 모든 걸 진중하게 처음부터 완벽하게 시작할 필요 따위는 없다.

그저 작은 돌을 툭, 던지는 것만으로도 물결은 넉넉히 퍼지니까.



막연하게 이주민 아동을 위해서 써보자, 처음에는 그런 거죠.

아무래도 제가 엽서를 만들어서 팔아도 애매한 거예요. 제가 프로는 아닌데 또 제가 만든 거를 돈을 받고 제 수입으로 하기에는  제 실력이나 제자신에 대한 불신도 있고, 내가 이걸로 돈을 받아도 되나? 그런 생각도 드니까. 내가 좀 부족하지만 이런 좋은 의도가 있으면 내 능력과 다른 사람의 이런 걸 해서 하면 구매자들도 그런 걸 좀 고려하면 양해를 해주지 않을까, 약간 부족해도.



콕, 집어 이주민 아동이라니. 

각자 관심사는 다 다르다지만 내게는 왠지 생소한 주제였다.

그는 언제부터 이주민 아동 문제애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걸까.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공지들

참고로 Tournesol 은 해바라기라는 뜻이란다. 이것도 별 뜻 없이 가볍게 지었다고 한다.


(이주민 아동과 관련된) 학부 수업을 들으면서부터였어요.

관련된 것들을 듣고 논문 같은 걸 통해서 실상 실태나 이런 것들 보니까 심각하더라고요. 이주민 아이들도 어떻게 보면 보호받지 못하는 난민과도 비슷한 처지예요. 불법 이주민의 자녀라서 어디 등록도 안 되어 있고, 학교를 가야 되는데 부모님이 학교를 갔다가 신분이 노출되면 또  강제 송환당할 수도 있으니까 학교에 못 가기도 하고. 만약에 학교를 와도 차별당하거나 하는 그런 사례들이 엄청 많거든요. 의료 서비스나 예방접종 같은 걸 제대로 못 맞기도 하고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도 많은 걸로 알아요. 국제 협약은 있어요. UN아동관리협약이라고. 이런 거에 관계없이 아동은 마땅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 그런 것들이 다 있는데 무국적 아동은 정말 사각지대인 거예요. 심지어 한국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까지 쭉 자라 온 '한국인'이라고 봐야 할 아이에게도.


그는 평소에도 소수자 인권 등 자신이 느낀 사회적 이슈들이나 담론에 대해서 고민한 흔적들을 페이스북에 자주 남긴다. 그러한 고민들을 기사로도 풀어내는데, 최근에는 그가 쓴 기사들을 인정받아 오마이뉴스 시민 기자로서 명함도 받았다. 앞으로는 기자가 되는 것이 잠정적인 목표라는 그는 이러한 고민들을 1인 시위 등 개인적 실천으로 옮기는 데에도 자유롭다. 그의 실천은 확신의 강요라기보다 답을 구하는 여정으로 느껴진다는 점에서 고유하다. 여기서 이주민 아동 관련 주제애 대해 그가 직접 작성.기고한 기사 한 편을 소개한다.

"바다 건너 한국 온 아이들, '등록'보다 중요한 인권"



이주민 관련된 곳에서 활동을 하는 선생님이 아는 분이 한 분 계신데 

원래는  그분한테 부탁해서 기부처를 찾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국내 이주민 단체는 오히려 생각보다 탄탄하고 운동이 많이 된다고, 오히려 더 급한 데를 도와주는 게 낫지 않겠나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미얀마에 마을 하나가 완전히 물에 파괴가 된 곳이 있는데 거기도 학교도 무너지고 고통받는 건 똑같으니 거기에 지원을 해보자는 쪽으로 (바꾸게 된 거죠).


따로 봉사활동을 해본 적은 없지만 친구의 적극적인 권유로 인권단체 앰네스티 등 관심 있는 단체에 후원하기도 한다는 그. 직접적인 계기는 '아이스 버킷 챌린지'였다고 한다. 어차피 힘든 사람 돕자고 하는 좋은 일에 형태는 구애받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사고가 참 유연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목적이 확실해야만 도구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유연한 사람은 확실한 사람이기도 하다.



내가 구매한 엽서들. 다른 예쁜 엽서들도 많았는데 해외에 있는 친구들에게 부치고 나니 이 정도만 남았다.
어떻게 보면 자기 자랑인데, 

사람들이 기부를 한다는 것 만으로는 엽서를 사지 않았을 것 같아요. (웃음) 물론 사람들이 기부를 한다는 마음으로 엽서를 사 준 것도 있겠지만 일단 자기가 상품으로 예쁘다고 생각을 하는 게 더 커야 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이거 같은 경우엔 예쁜 거지만, 예쁜 거 말고도 재미있고 즐거운 요소 없이 단순히 ‘뭘 해야 한다’, ‘뭘 하자’ 이런 건 참여를 이끌어내기 힘들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렇게 해서 골격을 갖추게 된 엽서 이미지의 아름다움은 실제로도 페이스북 서퍼들의 시선을 뺏기에 충분하였다. 유럽의 웅장하고 화려한 장면을,  때로는 일상적인 아름다움을 감각적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색감을 한껏 뒤틀어 버리면서도 일관적인 느낌을 낸다. 화풍으로 치자면 인상파라고나 할까?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Cafe Terrace, Place du Forum, Arles)'를 오마주한 '낮의 테라스'


찍는 게 아니라 사진기가 붓이라는 생각을 해요.

저는 그림을 잘 못그리니까 사진으로 형태를 딴 다음에 색감은 제가 다시 칠하고 그리는 과정인 거죠. 저는 잘 그리는 능력은 없지만 사진기가  대신해주고 저는 그걸 건드릴 수 있으니까. 하늘 색깔을 제가 참 많이 바꿨죠. 모든 사진에. (웃음) 하늘과 바다와.



그런 그에게 유럽의 그림이란 또 어떤 느낌이었을까.


책 읽는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보면서 그런 생각이 불현듯 들더라고요. 

실제로는 큰 그림이나 작은 그림이나 모니터 안에서는 다 똑같이 표현이 되니까, 직접 미술품을 봤을 때는 느껴지는 게 다른 것 같았어요. ‘아, 이 그림이 이렇게 큰  그림이었어?’라든가 모나리자는 정말 작고. ‘메두사의 뗏목’이라는 그림은 정말 엄청 크고. 다르구나. 엄청 큰 그림은 그림 안에도 하나씩 이야기가 엄청 많잖아요. 그게 작은 화면으로 좁혀 놓으면 작은 이야기는 다 안 보이잖아요. 그래서 직접 가서 보니까 그런 그림은 직접 봐야 더 잘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책 읽는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보면서 그런 생각이 불현듯 들더라고요. 옛날에는 사람들이 영화가 없으니까 그림을 보는 게 영화를 보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고 그런 상상도 들더라고요. 영화 보는 대신에 그림을 보면서 그림과 관련된 이야기를 옆에 사람에게 설명을 들을 수도 있는 거고.



마지막으로 그와의 일문일답.


Q. 참여도는 어땠는지?

A. 다 해서 300장 정도였어요. 10장 이하로 산 사람들도 있고 구매자들은 다하면 2~30명 정도 됐던 것 같아요. 거의 지인 중심이었어요. 지인이 7~80 퍼센트이고, 나머지는 페이스북 친구나 한두 사람은 페이지를 보고 온 사람도 있었어요. 마케팅에 대해 제가 잘 몰랐기 때문에 그냥 페이스북만 사용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선물용으로 많이 사는 것 같더라고요. 가끔 보면 엽서를 사는 사람들이 편지를 써서 다른 사람에게 주는 걸  포스팅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 ‘아, 저거 쓰는구나 이제’ 하죠.


Q. 수익금을 기부하면서는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A. 아 끝났다. 이제 신경 안 써도  되는구나. (웃음)


Q. 짐을 내려놓은 느낌?(웃음) 괜히 일을 벌였다는 생각도 했었나.

A. 벌여놓고는 제가 해본 게 아니니까 되게 막막했죠. 사진 편집도 해야 되고, 업체도 찾아야 되고, 인화하고 포장도 해야 되고, 택배도 부쳐야 되고. 다행히 끝났고. (웃음)


Q. 앞으로 이 프로젝트를  계속할 생각인가?

A. 나중에 기회가 있고 모이면 또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저도 이게  주업이라기보다는 단기 프로젝트성으로 한 거니까 당분간은 없지 않을까요. 나중에 여행을 또 길게 간다면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지금 당장은 계획이 없네요.


Q. 그러면 이거랑 똑같진 않더라도 비슷한 단발성 이벤트나 프로젝트를 또 해볼 의향이 있는지?

A. 기회가 있고 조건이 맞아떨어진다면 할 수도 있겠죠.



그다음 프로젝트의 존재 여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건만 나는 지금부터 뭐가 될지 궁금하다.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차분하게 그러나 망설이지 않고 걸어가는 그를 

오늘도 조용히 응원해본다.




Tournesol의 엽서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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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 프로젝트도 멋있었지만 처음 그의 구상대로 간단하게라도 여행기를 묶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실제로 사진과 함께 그 지역에서의 에피소드나 팁, 특색을 설명하는 글들이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영양가 있었다. 궁금하신 분들은 그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직접 일독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모든 이미지 출처: 진일석/Tournesol의 엽서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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