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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E리제 May 06. 2019

한남동 이야기

※<한남동 이야기>에 대한 약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래는, 한남동까지 갈 생각은 아니었다.


순전히 즉흥적인 결단이었다. 비교적 가까운 합정이나 그즈음에 머무르려 했던 것이나 마침 내 손에는 <한남동 이야기>가 들려있었고 또 마침 내가 탄 노선에 그 동네가 있었으므로. 선행지가 바뀌었대도 나는 그저 조금 더 앉아만 있으면 되었다. 


무심코 걷게 된 한남동은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았다. 사실 시간이 부족해 구석구석 돌아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책에서 나왔던 건물이 혹시 이걸까, 저건가 생각하며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다른 재미가 있었다. 


책의 제목이 <한남동 이야기>라 하여 한남동의 깊은 역사나 무엇이 담겨있는 책은 아니다. 소재나 배경이나 작중 인물의 출신, 혹은 무엇이든 한남과 연관만 되어 있으면 되는 <월간 윤종신>의 프로젝트 중 하나. 500부만 발간하는 책이라며 종신옹 인스타그램에 펀딩 프로젝트로 올라왔었고, 재미있어 보였다.


각 이야기의 맨 앞장에는 제목과 작가 이름과 작가의 간단한 약력 그리고 작가의 한마디가 덧붙어 있고 그 뒤로 그립거나 쓸쓸하거나 가볍거나 무겁거나 귀엽거나 유쾌한 이야기들이 대략 2~3장 분량으로 실려있었다. 나는 특히 몇몇 젊은 작가들의 재치 있는 글들이 인상 깊었다. 지극히 현실적으로 친구들과 할법한 대화들이 나온다거나, 자신이 그린 작중 인물에 작가 자신이 벽을 친다거나. 마치 친구와 소소한 농담을 하듯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아파트도 못 사." 이 대목에서 나는 쓰러졌다.


커피도 맛있고, 빵도 맛있었다. 잼도 맛있었는데 너무 비싸서 기억만 하기로..

역에서 내려 조금 걷다가 보기에도 예쁘고 왠지 유명한 것 같은 한 카페에 들러 책을 읽었다. 소위 '핫플'이라 할법한 예쁜 곳에서 책을 읽으려니 무슨 인플루언서가 된 듯한 기분이 들면서 그 나름대로 기분이 괜찮았다. 한남동에는 많은 얼굴이 있겠지만 이 카페는 초보자인 내가 원하는 한남동의 얼굴을 딱 찾은 느낌이었다. 보기 좋고 분위기 있는 그런 핫플인 한남동. 한 편으로는 죄책감이 들면서도 기분은 일단 좋았다. 


내 옆자리에는 20대 초반으로 보이고 성별은 여자인 두 사람이 있었다. 예쁜 옷을 입고 화분의 꽃을 배경 삼아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에 풋풋하고 좋을 때다, 생각했다. 요즘 소셜 계정에 보면 제일 예쁘고 좋은 시절에 다들 예쁘게 사진을 잘 찍어 올리던데 부러웠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흔한 부러움과 질투랄까. 한 시간 남짓 책을 읽고 난 뒤에도 그 둘은 계속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부러움은 곧 존경심이 되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내와 정성과 수고로움이 없이 좋은 것은 얻어지지 않고, 이들은 그만큼 노력을 많이 한 것이었다. 인정.



책은 얇았으므로 집에 돌아가는 길에 마저 다 읽을 수 있었고, 한남은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먼 동네가 아니었다. 가끔 마실 나가야지. 그때는 한강진역까지도 걸어보고 다른 얼굴들도 만나보고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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