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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HEIN Sep 18. 2015

안다는 것

나는 모르고 있기 때문에 즐거울 수 있다.

나는 굉장히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어찌보면 독단적이고, 제 잘난 맛에 혼자 세상사는 사람이랄까.

그동안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이고 '진리'라고 일말의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내 눈으로 보고 경험한 것 이외에 내가 알수 있는것이 없지 않은가.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한번은 내가 26살 시절, '나무를 심는 사람'을 읽고 메모를 남긴 것을 읽게 되었다.

26살의 나는 '위대한 일이긴 하지만, 개인으로 보면 과연 가치 있는 일일까'라고 적어두었고,

32살에 그 책을 다시 읽은 나는 '어떻게 한 인간이 이런걸 이뤄나갈 수 있는거지?'라며 존경을 표했다. 

이렇게 '내가 변한다'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꾸준히 공부를 하면서, 왜? 라는 물음에 깊이를 더해가다 보니-누구나 겪는 과정인지는 모르겠으나-나는 나를 부정하게 되었다. 즉,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남들이 보고 있는 것과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 말은 나의 생각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 내가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내가 아닌, 나라고 굳게 믿고 있는 실체없는 기억뿐일지도 모른다는 걸. 

나를 의심하면서 잠시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한가지 더, 나에게는 14년을 알아온, 그 중 약7여년을 연인으로 지낸 사람이 있었다. 

이별 후에 내가 깨달은 것. 나는 '그'가 아닌 '나를 좋아하는 그'만 봐왔다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가장 잘 안다고 느꼈던 것은 오롯이 나의 착각이었다.



리스본에 도착한지 3일째, 아직 짐도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교수님들이 오셨다. 알던 교수님은 아니었지만, 지도교수님과 친분이 두터우신 타학교의 교수님 두분이 답사차 오신것이다. 이날 일본 각 학교에서 리스본으로 온 학생들이 다 모여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지도교수님과는 다르게 좀더 자유분방하셨고, 와인이 한잔 두잔 늘면서 우리들은 인간 본성에 관한 깊은 이야기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노교수님께 여쭈어보았다. '그래서 교수님은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단 1초도 걸리지 않은 대답. '아니' 


앞서 인생을 걸어가신 분에게는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대답이었다. 

결국 진리는 없으므로, 내가 방황할 필요도, 의심할 필요도, 심각해질 필요도, 어쩌면 없을지도 모르겠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내가 느끼는 것을 같이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그의 마음이 나와 같지 않다고 해서, 연연해할 필요가 없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므로.


 

따뜻한 파스텔 톤의 리스본 건물들

  리스본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의 인상은 '지저분하다'였다. 어쩌면 결벽증같아 보이는 일본의 도시에서 도착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 환경에 적응해 있다가, 나는 열흘간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다. 로마에서 리스본에 도착한 나는 '리스본 너무 깨끗하잖아!'라며 피식 웃었다.

이렇듯 내가 보고 느끼는 것은 상대적이라, 맹신은 너무나도 위험한 독약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경험들에서 한가지 가꾸어낸 것이 있다면, 마인드 컨트롤이다. 

나는 슬프면 한없이 슬퍼하고, 즐거우면 한없이 즐거워하고, 화가나면 한없이 화를 내던 성격이었는데.

감정이라는 것이, 특히 우울함과 분노는, 습관이 되어버린다. 그 구렁텅이에서 나오는 방법을 찾았다고 할까.

내가 아는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내가 느끼는 것도, 뇌의 일련의 착각이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어떤일로 화가나 있는 상태에서(혹은 우울한 상태), 쉽사리 그 기억이, 그 감정이 누그러지지 않아 다른일에 집중하지 못할 때가 있다. 과거의 나의 치료법은 잠을 자는 것이었는데-물론 나에게는 효과적이다. 열정도 자고나면 사라지는 단점이 있지만-이제는 그보다는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 '아니야, 그럴수도 있는 일이었어. 지금 나는 순간적으로 착각에 빠진거야. 사실은 화나지 않아. 사실은 슬프지 않아.'라며 고여있는 그 생각들을 떨쳐버린다. 

충격의 강도에 따라 떨쳐지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 순간의 감정 때문에 남은 하루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커졌기 때문에... 그리고 사실은 나이가 차오름에 따라 당연해 지는 결과일지도 모른다. 자잘한 생각들은 귀찮고 거추장스럽다.


꽃만발한 작은 캐슬마을, 오비도쉬, 그녀와 함께

12살 어린 나의 친구, 어리지만 내가 그 나이였을 때보다 훨씬 성숙해서 친구가 될수 있었는지도 모른다(혹은 아직 내가 미숙해서?). 그 친구가 리스본에 놀러왔다. 못 본 약 1년여의 사이 그간 느낀것들, 생각한 것들을 나누었다. 위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동생이 말한다. '언니 역시 맨탈 갑'.


이렇듯, 내가 보는 것, 느끼는 것이 진실이고 안다고 착각하는 뇌라면, 가능한한 즐겁고 예쁜 기억으로 새겨주는 것이 이로울 것이다.


학생의 본분으로, 마감일을 앞둔, 조바심내는 마음을 밀어낸다. ‘あせるな!브런치도 즐겁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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