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공간을 오래도록 좋아하는 법
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서재 겸 작업실이다. 일을 하는 것은 물론 복잡한 일이 있을 때는 이 방에 콕 박혀서 생각을 정리하거나 책을 읽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조용히 커피 한잔 즐기고 싶을 때도 이곳으로 들어간다. 애착이 가득한 작업실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건 새해가 지난 어느 주말이었다.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여느 때처럼 책을 읽을까 싶어 문을 연 작업실 앞에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서류뭉치들, 일을 하며 바닥 여기저기 쌓아둔 책들, 책상 위를 가득 메운 알 수 없는 물건들.. 늘 같은 풍경이었을 테지만 새해의 기운 때문인지 그런 모습이 갑자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의자에 앉아 멍하게 작업실을 둘러보기를 몇 분. 책장에 책을 꽂고 바닥에 흩어져있는 서류뭉치들을 한곳으로 모아 정리를 했다. 책상에 올려진 물건들을 가로 세로 각을 맞춰 본래의 자리에 놓고 먼지를 닦는 작업은 처음 문을 열었을 때의 좋지 않았던 느낌을 지워내려는 나름의 노력이었다. 하지만 정리를 끝냈음에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마음 속 불편함은 지속됐다.
마음 속 불편함, 대체 뭘까.
이 공간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일까?
내가 가장 좋아하던 작업실이 더 이상 편하지 않다는 건 꽤 충격이었다.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가장 단순한 것의 힘>의 저자이자 미니멀라이프로 삶이 윤택해졌다는 탁진현 작가에게 만남을 요청한 이유다.
탁진현 작가는 전직 기자에서 지금은 작가이자 독립잡지 <심플 라이프>의 편집장으로 살고 있는 인물로,
7년째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그녀가 미니멀리스트가 된 이유는 일, 사람, 주변환경 등 모든 것에 지쳐있었던 어느 날 각종 물건들이 가득 쌓인 자신의 방이 마치 자신의 머릿속과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편안하게 쉴 수 있어야 하는 방에서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 그녀는 단호하게 물건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기자로 일하는 동안 쌓인 서류만 일곱 상자가 나오더라며 그걸 버린 후 드러난 텅 빈 공간을 보고 있자니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린 듯한 느낌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고 덧붙였다.
이후 그녀는 세 가지 기준으로 물건들을 분류해 정리했다.
예전에 썼지만 지금은 쓰지 않은 ‘과거의 물건’
언젠가 쓸 것 같다고 생각한 ‘미래의 물건’
지금 필요한 ‘현재의 물건’
과거와 미래의 물건을 정리할수록 현재가 남았고 그 현재는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귀결됐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샀던 불편한 옷과 신발, 어울리지 않지만 유행이어서 샀던
화장품 같은 물건을 덜어내는 과정 속에서 남을 의식했던 나 자신과 이별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리고 나에게 가장 좋은 것, 진짜 나를 위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남더라고요.
답답한 마음을 없애버리기 위해서 했던 정리가 결국 나를 찾는 과정이었던 셈이에요.”
작업실이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공간이 된 내게 그녀가 건넨 해결책은 의외의 방법이었다.
물건을 다 내버리라거나 정리정돈을 철저하게 하라는 식이 아니었다.
“분명히 마음이 편안하고 좋아했던 공간인데, 더 이상 그렇지 않다면
즐겁고 행복한 기분을 안겨준 물건들의 존재감이 희미해진 게 아닐까요?
찬찬히 둘러보고 행복을 주는 요소들의 존재감을 키우는 방법을 고민해보세요.
저는 극단적 버리기를 하고서야 제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알았지만
그건 정답이 아니에요. 내 공간에 꼭 있었으면 하는 것,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물건 등을 위주로
공간을 살펴보시면 답이 나올 거에요.”
작업실로 돌아와 찬찬히 둘러보니 이전과는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좋아했던 책장 속 만화책은 알 수 없는 책들로 인해 가려져 있었고 그 만화책을 읽던 책상 위에는 커피잔을 올리기조차 어려울 만큼 다른 물건들로 빼곡했다.
곧장 1년 가까이 쓰는 둥 마는 둥 했던 데스크톱을 과감히 떼어냈다. 그리고 책상 위에는 일을 할 때 두 번 이상 손이 가는 물건만 올려놓았다. 달력, 티슈, 계산기, 안경 등이 남자 산뜻함이 밀려들어왔다.
다음은 책장. 정리 기준은 나에게 재미를 주는 책인가로 정했다.
두 번 이상 읽은 책과 어릴 때부터 열심히 읽어 손 때가 가득한 만화책은 남기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뺐다. 그렇게 꼬박 이틀을 고민하면서 작업실을 좋아하는 것, 없어서는 안될 것들로만 남기고 채웠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과거에 내가 좋아하던 그 공간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정리를 끝내고 나니 답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공간을 오랫동안 좋아하는 방법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우는 것.
너무나 당연한 것을 왜 몰랐을까.
물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 지 아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이 쉽지 않은 문제의 답은 결국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방법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런 작은 깨달음은 공간을 너머 앞으로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