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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예림 Nov 19. 2019

시간을 학종이처럼 접다.

내 삶의 확장을 위한 글쓰기.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에게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난 지금 무얼 하고 있어? 나 지금 행복해?' 굉장히 원초적이고 유치한 질문이었어요. 그 당시의 저에게는요. 이런 자문은 쓸데없는 감정적인 일에 힘을 쏟거나 시간이 남아도는, 철없는 누군가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었죠.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편했을 테니까요. 그러나 소위 철없고 퍽이나 어리석은 고민 속에 저는 철저히 갇혔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깨달음은 곧바로 염원이 되고, 밤낮 없는 그림자처럼 스스로를 따라다녔어요.



전 그 시기를 '자각한 3차 성징'이라고 여깁니다. 3차 성징을 사이에 두고 저는 오랫동안 사귀었던 친구와 결혼을 하였고, 새 집을 마련하였어요. 혼을 빼던 시기니만큼 잠깐은 그 요란스러운 고민들도 정적을 감추었죠. 그러다 다시 시작된 것은 결혼 1년 차였고, 그때는 별수 없던 것 같습니다. 퇴사 같은 휴직을 했고, 냉큼 호주로 여행을 갔어요. 지금 떠올리면 나보다 더 이 고민의 해답을 찾고 싶어 했던 남편에게 큰 고마움을 느낍니다. 몇 번의 환승을 위한 첫 번째 비행기에 오른 그 날은 일요일이었고, 여느 때처럼 일을 하는 시간이었죠. 생소했어요. 7년간 휴가나 휴일 없이 일을 하고 보니 30대 초반. '청춘을 태워 나 참 끈질기게 돈을 벌었다.' 생각했지만 경제적 가장으로서 살아온 저에게 큰돈이 모아질리는 없었습니다. 거기에 어렵사리 일궈낸 내 분야의 직함을 놓고 다른 분야로의 새 출발이라, 내 이름의 한 자리를 얻어내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것인가를 잘 알기에 조바심과 두려움이 가장 컸습니다. 생계보다 내 꿈을 위한 노력을 일찍 시작하지 못한 내적 괴로움이 컸지만 가족을 지킨 나 자신에 대한 행복과 뿌듯함도 컸던 이십 대의 한 면, 한 면을 추억처럼 접어가 보니 38시간의 긴 비행이 끝날 즈음엔 자그마한 한 마리의 학이 놓여있었어요. 난 앞으로 이 학을 몇 번이나 더 만들어가겠지라는 사적인 철학을 하며 비행기에서 내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건 까마득한 첫 발이었고 1년이 지난 지금, 전 많이 달라진 삶을 살고 있어요. 엔터회사에 잠시 몸을 담궈 물의 온도를 체크해보며 작사가로서의 입봉을 마쳤고, 꾸준히 블로그에 기록들을 남기며 보통의 매일을 보내는 중입니다. 다른이가 쓴 좋은 가사를 듣고 내 가사도 쓰며 일하는 시간이 하루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된 삶이 맘에 들어요. 하지만 하고 싶은 일에 힘쓰고 실천하는 현재일지라도 워라벨에 대한 갈증은 언제나 유효한 것 같아요. 일하는 만큼 쉬고 싶습니다. 허나 글쓰기 안에서요. 일로써의 글쓰기와 삶으로써의 글쓰기는 무척 다르니까요. 저의 삶을 접어 쓰고 싶은 학종이같은 이 새로운 무늬의 공간에서 전 앞으로 몇 마리의 학을 접게 될까요. 궁금하고 설레고 떨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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