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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지연 Feb 22. 2024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다면 이것을 이겨야 해.

이 일 오래 하고 싶어요.


오랜만에 예진이를 만났다. 5년 만이었다.(수업일 기준) 이직을 했다고 했다. 너무 좋다고 했다. 그래서 오래 하고 싶다고.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예진이가 어떤 일에 애착을 갖는 것도, 한 자리에 정착하고 싶다는 것도. 그래서 꼼꼼히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그러느냐고. 또 그 일의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도.


주선자 같은 업무였다. 소개팅에서 잘 어울릴만한 남녀를 연결해주듯 회사와 취업희망자를 연결해주는 일(직무명은 잡매니저). 취업희망자에게 전화로 합격 소식을 알려줄 때 특히 좋다고 했다. 전화기 너머로 '진짜요?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들을 때면 본인이 더 감사하다고. 자신이 매칭해드린 분이 오래 일할수록 기쁘다고 했다. 잘 맞는 일을 추천해준 것 같다며.


우리 예진이가 이런 일을 하다니. 기뻤다. 그리고... 몹시 어이가 없었다. 한참을 웃었다. 지금 예진이가 하는, 오래하고 싶다는 일은 바로 수업 종강 강력하게 부정했던 그것이기 때문이다.


종강 날 자신만의 한 줄을 만드는 실습을 했다. 머리굴리지 말고 그간 실습한 것을 바탕으로 '자신이 하면 가장 행복할 일'을 한 줄로 정리해보라고 했다. 예진이의 한 줄은 '다른 사람의 성장을 돕는 일'.(좀 더 구체적으로는 '다른 사람의 성장을 위해...'로 문장이 한참 길었는데, 아쉽게도 해당 자료가 남아있지 않다.)  적절한 한 줄이라 생각했다. 예진이는 '사랑'이 중요한 사람이었으니까. 또 뿌듯했던 순간이 자신의 글이 진심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을 때이기도 했고.


하지만 예진이의 생각은 달랐다. 내가 '좋아!' 라고 채 내뱉기도 전에 말을 잘랐다.


아니에요. 제가요? 아니에요. 이건 그냥 실습이고 전 이런 일 할 사람이 아니에요.


그리곤 다시 공기업,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역시 자신의 길은 그것이라며.


예진이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어색함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한번도 그렇게 살아본 적 없으니까. 그녀는 5년 간 공기업, 공무원 시험 공부를 했다. 그녀 인생의 유일한 목표였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이었다. 부모님이 그랬으니까. 두 분 모두 공무원이었다. 내내 들어왔다고 했다. '공무원은 정말 좋은 직업이야. 예진이 너도 크면...' 오랜 시간 우등생이었던 것도 한몫했다. 높은 성적을 위해, 자신만의 목표달성을 위해 시험지에 코박고 살아왔으니 다른 사람의 성장을 돕는다는 건 상상도 못했겠지.


그래서 수업에서 자주 말한다. 니가 아는 니가 전부가 아니라고. 익숙할 뿐 좋아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고. 그러니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다면, 가장 먼저 당연하게 여기는 자신의 모습을 의심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지만 잘 통하지 않는다. 어색하니까. 불편하니까. 그래서 두려우니까 관성따라 돌아가 버린다.


다행히 예진이는 수업 직후 준비하던 공무원 시험을 그만두었다. 무언가 답답했는지 훌쩍 제주도로 떠났다. 며칠있다 돌아올 생각이었는데 머물던 게스트 하우스에서 매니저 자리를 제안했다. 냉큼 수락했다. 연애를 시작했다. 몹시 행복했다. 그렇게 알았다. 자신에게 맞는 다른 삶이 있음을. 이후 두 세차례 더 일자리를 바꿨다. 그저 재미있어 보이는 것으로. 그렇게 지금의 일을 만났다.


예진이가 제주에서 했던 연락들.


확신은 의심의 양에 비례한다.* 멋진 일은 대개 안전함 밖에 있다. 진정 하고 싶은 일은 오랜 자신을 넘어섰을 때 확실하게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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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둑들>, <범죄의 재구성>, <외+계인>의 최동훈 감독이 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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