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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예인 Apr 26. 2019

조선일보가 자유한국당 편인 건 다 알지만

그래도 이렇게 노골적이어서야 쓰나요


1.


"팩스 제출·病床 결재로 선거법 날치기, 군사 정부도 이러진 않았다". 4월 26일 조선일보 사설의 제목입니다. 군사 정부는 굳이 이렇게 법으로 정한 절차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죠, 체육관에서 대통령도 뽑던 시절인데 무슨 헛소리야 ㅋㅋㅋ


조선이 선거법에 반대하는 이유는 자유한국당에 불리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관심법을 쓴 게 아니고 진짜로 사설에 그렇게 써놨습니다. 선거법이 한국당 의석을 줄이고 친박 신당을 촉진하여 한국당에게만 치명적이므로, 나머지 4당의 의기투합이 이뤄진 거라고. 이정도면 정줄을 아예 놓은 것 같습니다(...)


2.


이번 선거법 개정이 비례성을 강화하긴 했지만, 그 영향은 제한적입니다. 지역구 수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민의를 고려해 총 의석수도 늘리지 않으려다보니 제도 설계가 복잡해졌기 때문인데요. 비례대표 수도 별로 늘릴 수 없었고, 연동률도 50%로 제한되었습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한국당에만 불리하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해 거대정당에 상대적으로 불리하고, 소수정당에 상대적으로 유리합니다. 다시 말해 민주당에도 불리하다는 얘깁니다. 이는 19대, 20대 총선 시뮬레이션에도 그대로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한데, 거대정당은 지역구 소선거구제의 특성 때문에 지지율보다 더 많은 의석을 가져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20대 총선의 경우 민주당이 수도권 선거구에서 박빙 리드로 당선된 경우가 굉장히 많아서, 실제 지지율에 비해 의석수가 많이 늘었는데요. 연동형이 시행되면 이런 버프가 많이 줄어들겠죠. 보통 '농촌은 자유한국당, 도시는 민주당'이란 도식이 있습니다만, 사실 이건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고 도시는 스윙보터에 가깝지 싶어요. 연동형이 도입되면 20대 총선같은 기적은 아마 어려울 듯...


어쨌든 선거제도 개정은 민주당에도 불리합니다. 조선일보가 생각하기엔 소수정당이 민주당과 사실 한편으로 보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렇다면 자유한국당이 거의 늘상 과반 미만의 지지율로 과반의석을 점해왔던 것이 잘못되었다는 결론이 나와야 정상 아닐까요? 왜 친박 정당이 갈라지면 한국당에 치명적인데, (민주당과 사실한 한편인) 소수정당이 갈라져 있는 건 민주당에 유리한거죠?


사실 예전에 조선 사설은 "정당들은 게임을 규칙을 정하는 심판 역할에서 손을 떼라"고 쓴 적도 있는데... 학계는 물론 선관위까지 지역주의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선거제도 개혁에 연동형 비례제, 석패제 도입 등이 필요하다 말하는 판국에 지역구 100%라는 뻘소리나 하는 자유한국당의 선거제 개정안을 그냥 보고만 있는 것도 것도 참...


3.


이번 패스트트랙 처리에 무리수가 있었음을 부인할 순 없습니다. 상임위원을 강제 사보임시키는 것이 썩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순 없을 겁니다. 자유한국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위법적인 행위는 아니지만 말이죠.


조선은 이번 선거법 처리가 팩스 제출, 병상 결재 등 편법을 동원했다 맹비난합니다. 같은 시간에 한국당 의원들이 보좌관들을 동원하여 회의장을 물리적으로 봉쇄한 건 잘 보이지 않으셨나봐요. 뭐 조선일보니까 보고 싶은 것만 보시는 것도 다 이해하긴 합니다.


그럼 잠시 시계를 돌려, 2016년 테러방지법 정국을 봅시다. 조선일보는 "테러를 당하고 나서야 테러방지법을 만들 거냐"고 민주당을 맹비난합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전시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로 규정하는 초법적인 판단을 해가며 이를 직권상정하자, 조선일보는 또 민주당을 비난했습니다. 왜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인지 민주당이 먼저 되돌아봐야 한다고요.


민주당이 필리버스터로 본회의 처리를 최대한 늦추려 시도하자, 조선일보는 이것이 국회 혐오를 키운다며 맹비난했습니다. 민주당이 필리버스터를 끝내 중단하자, 조선일보는 이것이 법을 희롱한 것이며 청산해야 할 운동권 구태라고 맹비난했습니다. 선거철이 다가오자, 조선일보는 민주당이 필리버스터를 선거에 이용한다며 '꼴불견'이라고 맹비난했습니다.


이거 전부 조선일보가 '사설'로 한 얘기입니다. 개별 기자의 기사도 아니고, 그 신문의 의견을 가장 공식적으로 피력하는 자리에서 시종일관 민주당을 비난했습니다. 조선일보가 민주당을 비난한 이유 중에는 민주당의 필리버스터가 선거법 처리까지 가로막고 있었다는 점도 있었습니다.


4.


그랬던 조선이 이제 '자유한국당에 불리하다'는 이유만으로 선거법 처리에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필리버스터 등 합법적으로 보장된 방법도 아니고, 당직자를 동원해 회의장을 점거하는 방식으로 의사 진행을 막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필리버스터 때처럼 자유한국당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빠루를 든 나경원을 '투사'로 포장하기에 바쁠 뿐이죠.


신문에 정파성이 없길 바라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건 좀 너무하잖아요. 구성원들이 제발 부끄러움을 느끼길 바랍니다. 같은 날 조선 사설은 박근혜의 형집행정지 불허가 '너무하다'고도 썼습니다. 자유한국당을 수호하고 민주당을 비난하는 데서만 이상하게 날카로워지는 조선일보의 펜을, 사실 이걸 펜이라고 불러줘야 하는지... 참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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