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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예인 Mar 13. 2020

금태섭이 떨어지면 반민주인가

정말 그건 표적 경선이고 징계성 경선이었나

금태섭의 경선 탈락에 즈음해 몇몇 ‘진보적’ 인사들에게 좀 실망했다. 경향 등 진보지에 대해서도 또 실망했다. 쓴소리 좀 방언처럼 쏟아내야겠다.


1.


내 마음에 드는 후보가 떨어지면 무작정 ‘반민주’인가. 내 맘에 드는 후보는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게 진보의 민주주의인가.


2.


현역의원에 대해서는 경선이 아니라 단수공천이 원칙이기라도 한가? 오히려 반대다. 단수공천은 최대한 피해야 하는 것이고, 경선이 원칙이다. 그런데 추가공모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어떻게 ‘표적공천’이 되나?

금태섭 지역구에 대해서만 추가공모를 했나? 아니다. 현역의원이 단수로 나선 지역구는 ‘전 지역구에서’ 추가공모를 했다.


오히려 현역의원을 경선에 ‘못 붙이는 게’ 골칫거리였다. 현역의원 지역구에는 쉬이 경쟁자들이 뛰어들지 못한다. 이건 ‘시스템 공천’의 함정이기도 했다. 경선을 하면 인지도에서 앞서는 현역의원이 거의 무조건 유리하니까, 현역의원을 아예 경선 없이 컷오프하지 않는 이상 신인이 뛰어들기 힘들 수밖에 없다. 많은 언론은 민주당이 ‘시스템 공천’에 갇혀 ‘현역 물갈이’를 못 하고 있다고 힐난하기도 했다.


3.


뭐, 그랬을 수도 있다. 당 주류가 후보들을 살살 꼬셔서 금태섭과 붙어보라 했을 수도. 강서갑에 김남국이나 강선우 같은 신인들이 도전한 게 당 주류가 살살 꼬신 결과일 수도. 그럴 듯한 가능성이지만 이건 시나리오일 뿐이다. 당 주류의 대단한 ‘음모’가 여기 작용했다 주장하려면, 최소한의 방증이라도 좀 대야 하지 않나.


설령 주류가 그들을 꼬셔서 금태섭과 붙였다고 치자. 유시민급 잠룡을 붙이기라도 했나, 김연아나 방탄소년단을 영입해서 붙이기라도 했나. 웬만한 정치 고관여층도 처음 듣는 이름이다. 뭔 ‘표적 경선’ ‘자객 경선’ 같은 소리도 하던데 무슨 마왕 잡는데 자객으로 슬라임 보내는 소린가.


심지어는 ‘여성 가점 25%’를 노리고 여성을 자객으로 붙였단 얘기도 있더라. 여성 정치인들이 유리천장이 아니고 유리핵폭탄이라도 갖고 있는 줄 알겠다. 여성이라는 게 정계에서 언제부터 ‘유리한 요소’ 였나.


4.


경선 결과도 그렇다. 무슨 슈퍼 대의원들이 모여서 금태섭을 떨궜나? 권리당원 50%, 일반여론조사 50%, 지극히 합리적인 룰이었다. 권리당원이란 거 별것도 아니고 당비 천 원 내면 되는 거다. 친문 성향 권리당원들이 비문은 당비를 못 내게 막기라도 했나? 여론조사 전화를 못 받게 음모라도 꾸몄나?


당 주류의 의지가 권리당원은 물론 일반 국민 대상 여론조사까지 장악하여 그 많은 사람들이 금태섭을 비토했나? 무슨 사람들을 오버마인드가 조종하는 저그로 보는 건가?


조국 지키자는 친문들의 패권주의가 국민들을 세뇌시켜서 경선에서 금태섭을 떨궜다는 시각도 있다. 친문 패권주의자들이 무슨 언론을 장악해서 빅브라더짓이라도 한 줄 알겠다. 반대다. 언론 보도는 물론이고 뉴미디어에서도 조국을 비판하는 논조가 절대적으로 많았다.


5.


나는 금태섭이 검찰개혁법안 정국에서 보여준 ‘불통’스런 모습을 좋아하지 않았다. 퀴어 퍼레이드에 참석하는 등 젠더 이슈에서 가장 용감한 모습을 보여준 것은 좋아했다. 사실 가장 시비, 호불호를 강하게 가를 ‘조국 정국’에 대해서는 정작… 잘 모르겠다.


금태섭이 떨어진 것을 아쉬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금태섭 같은 소장파가 한 사람 쯤 있는 게 당에도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금태섭이 절대적인 리트머스인가 하면 그건 모르겠다. 금태섭에게는 정치인으로서 실망스런 순간들이 여럿 있었고, 그게 금태섭을 떨어뜨렸다면 유권자의 판단이 그랬구나 하고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민주당이 금태섭을 떨궜다 비판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그럼 어떻게 했어야 했나. 현역의원 단독 신청 지역들에 대해선 추가공모를 안 하고 그냥 죄다 단수공천해버리는 게 맞는 방향이었나? 그게 정말 더 ‘민주적인’ 방향이었나? 신인의 참여를 더 독려하고 현역의원들을 최대한 경선 붙이는 게 정말 ‘반민주적인 작태’인가? 금태섭은 특별하니까, 소중하니까 특별히 전략공천을 하는 게 ‘민주적인’ 의사결정인가?


나는 거기에서 쓰이는, ‘민주’의 뜻을 도통 잘 모르겠다.


6.

개인적으로 금태섭은 ‘불통 이미지’가 좀 강하다. 예를 들어 검찰개혁법안 정국에서도 민주당 안에 끝까지 반대했고 결국 기권으로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는데.


금태섭의 주장에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난 법조에 대해선 1도 모르긴 하지만, 싫어하긴 커녕 오히려 좋은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너무 공허하단 것이다. 금태섭의 주장을 받아들일 단위가 없다. 검찰도 안 받는 안이고, 그냥 다들 아무도 안 받을 안이다. 금태섭 안을 받아들이려면 방법은 하나, 그냥 지금까지 조율된 수사권 조정안을 다 엎는 수밖에 없다.


그게 굉장히 비정치적이라고 생각했다. 조율 과정은 모르겠고 그냥 내 맞말만 하면 된다는 느낌. 트위터리안이라면 얼마든지 응원했겠지만 그는 입법부 일원 아닌가. 내 뜻을 무조건 굽히라는 게 아니다. 당의 부속처럼 거수기를 하라는 게 아니다. 입법 과정에서, 정치에서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는 ‘조율과 타협’의 절차를 존중했어야지 않나 싶은 것이다. 그의 ‘불통’ 이미지가 그런데서 오는 것 아닌가 싶고.


7.


“금태섭이 떨어지다니 아쉽다. 금태섭처럼 소신을 지키는 정치인도 민주당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지자들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포용하길 바란다.”


“금태섭을 떨어뜨린 건 저격이고 표적 경선이고 징계성 경선이다! 친문 패권주의 파시즘이다! 친노폐족의 전체주의다! 부패를 은폐하려고 금태섭을 떨어뜨렸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를 모르면 좀 곤란하지 싶다. 전자를 (사람에 따라 생각이 좀 다를 순 있어도) 건강한 당을 위한 제언이라 한다면, 후자는 그냥 억하심정을 마구잡이로 내뱉는 감정적 언사일 뿐이다.


특히 진모는 진짜 악다구니만 남은 것 같은데, 결국 본인이 제일 정파적으로 굴고 있다는 걸, 그리고 여기저기서 정파적으로 ‘써먹히고’ 있다는 걸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선민의식도 꼴같잖은데 그럴려면 최소한 본인부터 좀 정줄을 잡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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