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일기 서른네 번째
자주 슬퍼하는 나날이다.
그럭저럭 책임감 있게 지내고 있지만 마음은 엉망이라 들키기라도 하면 큰일난다, 싶은 생각으로 이상한 균형을 맞추며 그렇게 있다. 일상이 소중해진 것은 그 일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조각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된 후부터일 것이다. 다시 4월이 다가오고 있고, 얼마 전에는 차기 대통령이 결정되었고, 내가 사는 도시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이후에도 변함없이 여성인 나는 위협을 느끼고... 일상은 그래서 각별하다. 반복되는 생활이, 탈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이 지루하게 느껴지던 때도 있었던 것 같지만(아득하고) 지금은 정말이지 그것만큼 감사한 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한 줌뿐. 통제 바깥에 있는 갑자기 들이닥치는 것들, 그런 것들 탓에 일상은 너무나 자주 달아나서 나는 그것을 지키느라 때로는 진이 빠진다. 고집스럽게 평안을 기도하다니. 이것처럼 이상한 일이 있을까. 어쩌면 그 이상한 일이 산다는 말과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러니 애쓴다.
지금 가장 애를 쓰는 것은 뉴스를 피하는 일이다. 습관이 무서워서 저녁 7시 30분이 되면 무심코 TV를 켜고 채널을 뉴스 프로그램에 맞춘다. 아이고, 나는 곧 TV를 끈다. 뉴스 보면 안 되지, 하면서. 뉴스를 보면 안 되다니. 이것도 몹시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한다. 그 시간에 후추와 눈맞춤 한 번 더 하겠다고 다짐했었다. 너무 슬프기 때문이다. 지금도 귀에 쟁쟁한 것은 전쟁을 피해 집을 떠난, 심지어 부모와 헤어지고 홀로 걷는 어린이의 울음소리다. 내가 어리석어서 전쟁은 언제나 다소 과거의 일이었는데 현재에 전쟁을 실감하고 나니 그것은 물리적 거리와 무관하게, 그저 바로 곁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공포스럽고 참담한, 가슴이 옥죄어오는 슬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파괴되고 불 타버린 건물들, 악마의 목구멍 같은 어두운 흔적들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고, 요즘 나는 자꾸 운다.
불 타버린 나무들과 집을 보면서도 그러니까. 암담한 현실에 눈물 짓는 산불 피해 주민들의 이야기가 슬프고, 앙상해져버린 산의 모습이 슬프다. 그을린 동물들. 그 두려워하는 눈을 보면서도 많이 울었다. 슬픈 일은 그렇게나 많다. 좋아하는 분의 가족이 아프고, 같은 서울 아래 살면서도 2년이 넘도록 보지 못하고 있는 친구가 그립고, 나를 나 자신이 아닌 당신의 무엇으로 보는 부친에게 화가 나고, 이런 와중에 말도 안 되는 말을 말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싫다. 이 모든 게 다 슬프다.
글로 이렇게 울기만 해서야 되겠냐고 자책하면서도 이것은 일기니까, 요즘은 어떤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나기 때문에 나는 이 글을 쓰면서도 울고 있다. 눈물을 꾹 참으려고 하다 목이 메어 괴롭다. 이 하찮은 괴로움은 내 몫이지만 어떤 괴로움들은. 그 마음들을 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서로를 위로한다. 위로하며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자고 말한다. 나도 그 말에 기대보려고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다시 망연한 채로 한숨을 쉬거나 눈물을 흘린다.
그러다 오늘은 책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슬픔은 자주 사랑으로부터 생겨난다.”(바버라 J. 킹, <동물은 어떻게 슬퍼하는가>, 47쪽) 이 말을 만나고 조금 힘이 솟았다. 슬픔을 좌절로만 이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이 모든 게 사랑하기 때문에 슬픈 것이라면 그래, 조금은 더 슬퍼해도 되겠다고 생각한다.
이런 시절이다. 그래도 잠시나마 웃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전부 후추 덕분이고, 어제도 그랬다. 전쟁과 산불과 범죄와... 정치라는 이름으로 횡포를 부리는 소식들을 망연히 보다가 또 눈물이 날 것 같아 TV를 껐다. 내 곁에 있는 후추는 그런 내 손을 살뜰히 핥아주었다. 이것이 일상이야, 너의 일상을 기억해. 후추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기뻐서 울었다. 고마워서 우는 거야, 걱정 마, 후추. 그런 나를 후추는 무한히 신뢰하는 눈빛으로 바라봐주었다. 몸을 맞대고 후추의 온기에 집중하자 마음이 조금 차분해졌다.
이 작은 몸 안에 든 우주, 거기에 깃든 분명한 생의 힘, 경이로운 생명력을 기억해야지. 이 힘을 바라보고 있으면 생겨나는 이 기운을 자주 떠올려야지. 그렇게 어떤 시기를 버텨보기도 하자고, 슬퍼하며 사랑하며 다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