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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K Sep 29. 2015

뚜벅이도 지x하면 달릴 수 있다

많아도 너무 많은 독일의 표지판 숲 속에서 살아남기

자, 지금 당신은 운전을 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길을 가던 중, 아래와 같은 표지판을 만났다면 당신은 어떤 방향으로 운전을 해야할까?


과유불급(過猶不及) in 독일

달리는 차 안에서 이 많은 표지판을 해독할 수 있다면, 당신은 신이 주신 해독능력을 갖은 복 받은 사람일 것이다! 위의 사진은 독일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장면이다. 독일에서 종이만큼 많이 쓰이는 것이 바로 표지판(Schilder)이다. 독일인의 자동차 사랑은 누구나 알 것이다. 그만큼 자동차와 관련된 산업도 발달하였고(*자동차 산업은 독일 최대 산업이며 최대 고용산업이다. 2011년 기준 약 712,500명이 자동차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러한 자동차 사랑에 힘입어 독일의 도로에는 아주 친절하게도 교통안전표지판이 아.주. 많다!


독일을 여행 중이라면, 당신은 표지판이 없어 길을 잃을 경우보다 너무 많은 표지판 숲 사이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해석불가능 상태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 한 골목에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표지판이 있으니깐 말이다. 독일 ADAC(Allgemeiner Deutscher Automobil Club: 독일 자동차 연맹)에 따르면 독일에는 약 600여 개의 교통표지판이 존재하며 그중 최소 1/3 이상의 교통표지판이  불필요하다고 한다. 독일인의 2/3 이상이 그 수를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일인들은 이러한 과도 행정을 Schilderwald(표지판 숲)이라고 부르며 과잉 행정을 비판한다.

사진: wikipedia

뚜벅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독일 운전면허 도전하다

나는 최근 독일에서 운전면허 학원을 다니고 있다. 한국에서 분명히 정식 허가받은 운전학원을 열심히 다니고 면허를 땄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운전면허는 정말 만만치 않다. 이런 나에게 너무도 많은 독일의 교통표지판은 말 그대로 표지판이 아닌 숲이다. 

https://youtu.be/CsMQKofIhys

출처: https://youtu.be/CsMQKofIhys

독일에서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서는 시간과 돈이 아주 많이 든다. 많은 이들이 독일의 면허가 얼마나 어려운지 너무도 많이  이야기했지만, 위의 유튜브 영상을 보고 지레 겁을 먹어 몇 해 미루었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2주 전, 용기를 내어 운전면허 학원에 갔다.  


독일에서 운전면허따기, 하나  둘 셋!

일단 나는 매일 1시간 30분씩 일주일 3번, 총 14회의 이론 수업을 들어야 한다. 대부분 학원은 소규모로 몇 명의 선생님이 순번을 바꾸어 가며 수업을 진행한다. 한국에서는 며칠 정도 이론수업을 듣고 다 같이 학원 차를 타고 가서 컴퓨터로 이론시험을 봤었다. 별다른 공부 없이 기본상식으로 합격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곳의 이론은 정말 만. 만. 치 않다. 일단 350페이지가 넘는 이론 책을 사서 온라인 프로그램에 주어진 나만의 시리얼 번호를 등록한다. 그러면 내가 소속된 학원명과 내 학습 진도가 표시된다. 1000개가 넘는 이론시험 문제를 풀고  연습할 수 있으며 만약 다 풀지 못하면 이론시험을 볼 수 없다. 이 문제들은 정기적으로 내용이 바뀌며 나의 고유 시리얼 번호를 남에게 양도해서도 안 된다. 이론은 객관식과 주관식으로 구성이 되어있고, 답이 하나인 경우도 있고 2개 혹은 3개인 경우도  있다. 즉, 내용을 정말 명확히 알아야만 답을 풀 수 있다. 이론수업에서 선생님은 각 상황별 동영상을 보여주고 설명을 더한다. 수 많은 교통표지판에 대해서 배우고, 자동차 내외부, 엔진 및 부품에 대해서도 배운다. 자동차의 기능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이 또한 불합격. 


도로주행 연습은 아우토반(고속도로), 야간 운전, 시내 운전 그리고 야외 시골 외곽 운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에서는 A코스 B코스가 주어져서 죽어라 연습하고 외운 대로 운전하면 합격이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주행 연습은 만만치 않다. 시험을 볼 때, 시험관은 응시자가 제대로 이해하는지를 테스트하기 위해 몇 가지 상황을 주문한다. 물론 주어진 A코스 B코스는 없다. 만약 아무 생각 없이 시험관 말만 따른다면 불합격. 시험관의 주문을 내가 배운 이론과 원칙에 어긋난다면 운전 중 시험관에게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기계식이 아닌 진짜 실전 운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응급처치(First Aid) 수업 6시간, 시력검사 등을 따로 받아야 한다. 보통 독일에서 운전면허를 따는 데에는 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리고 1500유로 정도의 돈이 든다. 물론 한 번에 모든 것을 합격하면 말이다.


이 먼 대장정을 시작한 나는 문득 한국에서 배운 운전을 떠올려봤다. 물론 장롱면허였지만, 분명 나름 연습도 많이 해서 면허를 땄는데 왜 나는 여기서 방황을 할까? 처음에는 너무 까다로운 이 시험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운전을 배우면서 또 다른 독일인의 가치관을 만난 것 같다. 안전과 생명의 중요성 그리고 자동차를 유익한 것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익히고 배워야 한다는 점. 복잡하고 너무 많은 교통표지판이 나를 가로막을지라도 오리도 지x하면 날듯이, 나는 달릴 것이다. 아우토반을!

Foto: Ingo Schneider

*Disclaimer: 이 글은 주관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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