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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토타입L Jan 01. 2023

비협조적인 우주, 협조하는 인간

a perfectly coordinated upside-down

쇠고랑 찰 것까진 아니지만 법 앞에서 떳떳하지는 않을 일을 부탁받은 적이 있다. 간단한 일, 남들 다 하는 일, 곤경에 처한 소중한 사람을 돕는 일, 그러니까 당연히 들어줘야 할 일. 이런 적이 처음은 아니다.

거짓말로 나이스한 구실을 만들어 거절해야할지, 인정머리없는 윤리의 수호자로서 거절할지 여러 날 고민했다. 어느 쪽이든 거절은 상처를 만들 것이다. 상처는 험한 말/침묵을 만들고 험한 말은 또 상처를 만든다. 인정머리없는 거절을 했다. 거절하는 마당에 거짓말까지 뭐하러. 그렇지만 친절한 시늉이라도하는게 나았을지 모른다.

예정대로 상처가 생성됐다. 상대방의 상처가 어떤 모양인진 모르겠으나 내가 입었던 상처는 좌절처럼 생겼다. 하도 변하지 않아서, 그대로여서 주는 좌절. 아니, 계속 움직이는데 왜 나아가지 못하는거지. 

내가 이만큼 왔는데도 그 일은 순식간에 원래 있던 자리로 다시 집어던졌다. 이런 상황이 날 집어던질 땐 나도 어렵게 붙잡고 있던 것들, 가령, 지푸라기들을 다 집어던져버릴까 고민한다.

그렇다고 누구든 비난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들에겐 최소한의 공중도덕을 지키며 사는 것도 쉽지 않다는걸 다 알면서, 어떻게. 오히려 부조리가 그 삶을 지탱해주기도 한다. 그런 부조리가 급기야 내 책임을 덜어줄 때면 안도한 것도 사실이다.

나아감은 갈등을 수반한다 - 방향이 완전히 상관없다면 몰라도. 물살에 둥둥 실려가는건 진보라고 하긴 어렵다. 그런데 그게 꼭 진보보다 못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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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능력이 뛰어나지 않으면 열심히라도 해야지, 진심이라도 담아야지, 최선을 다해야지. 시간, 노력은 물론 가진 모든 자원을 충분보다 더 충분히 활용해서. 그게 마땅하지. 상황이 어떻든.

그런데 최선이라도 다하는게 정말 의미가 있는가. 뭐라도 계속 하고 있으면 최소한 하늘은 내 정성을 알아줄까. 그나저나, 최선을 다한다는게 어떤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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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제출날이 되면 학생들은 아프고, 컴퓨터가 고장나고, 그냥 사라진다. 제출기한을 3번 연장하더니 소식이 끊긴 학생이 있다. 차라리 내지 말고 흐지부지 넘어갔으면 했다. 그거 보는 것도 일이니까. 내지마라.. 내지마라.. 하면서 손가락으로는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너그러운 메일을 썼다. 과제는 진짜 시험을 위한 연습일 뿐이니 완벽할 필요없다고, 건강을 우선시하고 무리해서 완성하지 않아도 된다고. 학생은 나의 진심을 읽지 못했고, 대신 (아마도) 부담감을 떨친나머지 에세이를 완성하고말았다. 사실, 귀찮음을 덜자면 더 이상 연장은 안된다고 분명히 말하는 방법도 있었다.

내가 친절한 사람이 되는 방법은 아무래도 성실하게 위선을 떠는 것인가보다. 마음이 생겨서 하느니, 하다보니 마음이 생기는게 빠를지도. 출루가 우선이니까 먼저 흉내, 그 다음은 꾸준함. 진심이 다소 빠지긴 했지만, 그게 반드시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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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 최선을 다하는 태도, 마음과 행동의 일치. 그래도 이거 만큼은 틀리지 않겠지, 튼튼하게 제자리에 있겠지 하는 것들이 눈앞에서 훅 날아가 아무렇게나 바닥에 떨어진다. 어떻게 다시 맞출 것인가. 지금 성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은 이럴때 대개 사막으로 떠나 주워온 것들을 재배열하는데 열중했다.

성인을 꿈꾸지 않으니 그럴 필욘 없고, 새해 전날 밤, 사막에서처럼 막막함이 충만한 시간에 잠깐 곱씹어보고 넘어가자. 진보라고 부른 그게 갈등을 무릅쓸만한 거였는지, 갈등이 다른 사람에게 남긴 상처의 모양을 보려고는 했는지, 나아가지 못할 때 무익한 괴로움이야말로 최선의 증거라고 위안삼은건 아닌지, 또 상황은 무시하고 그런 종류의 최선을 남에게 기대하진 않았는지, 진심이 어디에 있는지 판단할 능력이 내게 있다고 과신하지 않았는지.

올해의 결론이라고 하자면, 성장을 위해 때로는 의심을 품고 나아가더라도 그보다 자주 그 반대로 움직여도 상관없단거다. 혹은 아무 방향으로나, 특히 변변찮은 쪽으로. 보아하니 알려진 세상의 질서든, 내가 이해한 질서든 반복해서 무너질 임시적인 것이고, 어차피 우주는 나아가려는 인간에게 비협조적인데, 협조적인 인간이라도 있으면 나으니까. 그러므로 새해가 당신에게 협조적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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