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보러 온 순간
-엄마를 보러 온 순간
딱 한 번 코복이를 만난 순간이 있었다.
아기를 낳고 두 달 정도 지나고 있을 즈음이었다.
그때 나는 새벽 수유와 육아로 늘 비몽사몽이었지만, 그 시기의 감정이 휘발되어 버리는 것이 아쉬워 아이가 잠들면 아이폰 메모장에 엄청난 오타와 함께 마구 일기를 써내려 갔다.
그날도 아이를 재우고 급히 일기를 쓰고 나도 잠에 들었다.
한참을 자고 있는데 누군가 내 침대 끝 모서리에 걸터앉아 있었다.
하얀 옷을 입고 가지런하게 앞머리를 자른 쇼트커트의 남자아이였다.
사실 여자 아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머리가 짧아서 단순히 남자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옷이 하얀 원피스 혹은 무릎까지 오는 흰 박스티였으니 여자 아이일 수도 있겠다.
그 아이가 앉아 미소를 짓고 잠든 아기 곁으로 걸어가길래 내가 아기를 깨울까 봐 “어어 하지 마.”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이가 날 보고 미소 지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나는 소리를 내며 잠에서 깼다.
다행히 아기는 쌔근쌔근 잘 자고 있었고, 나는 하얗고 투명한 피부와 가지런한 앞머리를 가진 흰 옷의 그 아이가 천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코복이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코복이에게 너무너무 미안해 기도를 했다.
[너한테 뭐라 한 거 아니야. 이렇게 모습 보여줘서 고마워. 엄마 보러 와줘서 고마워.
너도 저렇게 곱게 키워주지 못해 미안해.
너 천사가 되었구나.
아주 많이 컸구나. 미안해. 너한테 뭐라 한 거 절대 아니야.]
코복이를 꿈에서 만나기 전 나는 아이폰 메모장에 이런 일기를 썼다.
2018년 8월 17일
- 첫 번째 일기
아기 키워 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
1.
꽉 쥔 작은 손에 손가락을 넣어 일부러 손을 펴면 그 안에 선물처럼 들어 있는 때와 굳은 로션.
그게 무척 귀엽다.
너무나 소중해 꽉 쥐고 싶었던 순간.
2.
얇고 투명한 손톱. 이 손톱은 언제부터 자라 온 걸까?
3.
자고 일어났을 때 특히 작아 보인다.
아기를 재우면 내 시간이 오는데 그 시간 동안 나는 또 아기를 본다. 그동안 찍은 아기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웃는다.
그리고 나면 아기가 깬다. 사진으로 보다가 아가의 실물을 보면 너무 작아 보인다.
‘실물이 사진보다 작아요.’
4.
세포분열로 저런 온갖 표정을 짓는 아기가 된다니 신기하기 그지없다.
세젤귀
‘세상 모든 것 중에 제일 귀여운.’ 그건 정말 맞는 말. 아주 정확한 말.
그런 게 존재할까 했는데 존재하더라. 그게 또 신기하다.
5.
태어나면 생기는 모성인 줄 알았고 처음부터 내 새끼는 좋을 줄 알았다.
아니다. 연애 감정이 생기듯 서서히 좋아지고 설레고 보고 싶고 안고 싶어 진다.
‘나에게 완벽히 의지해서 안긴 한 사람’
연애하는 것 같다 그런 시작하는 감정 너무 오랜만.
6.
아기가 너무 좋지만, 아기가 잘 때도 아기 사진을 보고 있지만, 아기가 없는 하루도 보내 보고 싶다.
아주 완벽히 아기가 없는 하루 말이다. 아기에 대한 조바심, 걱정 조차 없는 하루.
-두 번째 일기
남편이 매일 조금씩이라도 바깥바람도 쐬고 운동도 하라고 시간을 줬다.
매일 30분에서 한 시간 남짓.
나의 운동 첫날, 영화 <쇼생크 탈출>의 엔딩 장면처럼 비가 왔다. 나는 달렸다.
임신하고부터 달리기를 못했으니 거의 일 년 만에 달리기를 해본다.
자유라는 말이 떠올랐다.
자유가 이런 건가? 자유는 빗속에서 달리기를 하는 건가?
-세 번째 일기
주먹 보고 입에 집어넣고 빨기를 하루에도 수십 번 하고 잘 안되면 짜증을 낸다.
그 모습을 보니 어디 하나 거저 얻어지는 게 없다는 걸 실감한다.
누구나 겪는 일이고, 누구나 겪어야 하는 일이지만, 그 과정은 누구나 힘들고 짜증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해낸다.
잘 큰다. 우리 아가.
코복이가 섭섭했을까 봐 너무 걱정이 됐다.
코복이가 동생을 부러워했을까 봐 너무 미안했다.
그리고 그 아이가 편안해 보여서 정말 다행이었다.
코복이가 내 마음을 알아줬을까?
나의 하얀 천사는 다시 하늘나라로 돌아갔다.
나는 그날 아침에 방콕에서 사 온 ‘코돌이’ 인형을 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