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그놀리아>
영화계에서는 천재 감독으로 인정받는 폴 토마스 앤더슨(줄여서 PTA)의 영화 매그놀리아는 과거의 잘못, 상처를 어떻게 마주하고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흥미롭게도 영화는 9명의 주인공을 등장시켜서 각자의 삶을 보여주는 형식을 취한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이야기들은 하도 많아서, 관객들은 영화의 이야기들을 정리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존 브라이언도 이 영화의 ost 작업에 함께 했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에이미 맨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음악들이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테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에이미 맨은 미국의 싱어송 라이터로서, 그래미 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을 정도로 실력이 출중하다. 영화에서 들리는 그녀의 훌륭한 음악이 이미 이를 증명하기도 한다. 그녀의 음악은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에 등장하고, 또 영화의 핵심적인 장면에서 아예 영화 내 인물들과 조응하며서 등장하기도 한다. (더 이상의 설명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생략) 찾아보니깐 몇 곡 더 있는데, 그것들은 패스
오프닝에 나오는 노래이다. 가사는 1이라는 숫자가 외롭다는 내용을 다룬다. 1은 2보다 나쁘고, 2에서 갈라져 나온 가장 외로운 숫자라는 것이다. 영화 초반부터 음악은 '이별', '외로움'을 암시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이 음악이 나올 때, 영화의 주인공 9명을 차례 차례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들의 인생이 마냥 밝지는 않을 거라는 걸 예상하게 된다.
엔딩에서 나오는 음악이다. 가사는 자기를 구원해달라는 내용을 다룬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할 거라 의심하는 괴짜들로부터 구원해달라고 한다. 자신을 둘러싼 그 괴짜들 때문에 자기가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사는 괴짜들을, 괴짜들 빼고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을 거라고 믿는 괴짜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괴짜가 아닌 사람은 무엇일까? 괴짜가 아닌 완전한 사람이 가능할 수 있을까?
영화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떤 형태로든간에 저마다의 결함이 있다. 그것은 과거의 일들로 생겨버린 결함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결함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을까? 결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영화를 보며 각자 찾는 걸로 하자.
자, 이제 날 구해줘
당신이 날 구할 수만 있다면
그 괴짜들의 무리들로부터 말이야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을 거라고 의심하는 괴짜들
그 괴짜들만 빼고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을 거라고 의심하는 괴짜들
그 괴짜들만 빼고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괴짜들
PTA는 영화 아이디어를 구상하던 중, 가수이자 친구인 에이미 맨의 노래를 듣고 매그놀리아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 결정적인 음악이 바로 이 'Wise Up'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영화의 주제를 명확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매그놀리아는 PTA가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살을 붙인 작품이라고 한다. 영화 내의 다양한 이야기들은 사실상 그의 이야기인 것이고, 에이미 맨의 음악은 산재하는 그의 감정과 느낌들을 모아주는 기준이 되었을 것이다.
이건 네가 처음 시작했을 때에
생각했던 그런 게 아니야
너는 원하는 걸 얻었고
지금은 간신히 버티고 있지만
이제 너는 알지
이건 멈추지 않을 거라는 걸
이건 멈추지 않을 거라는 걸
이건 멈추지 않을 거라는 걸
네가 깨닫기 전까지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Wise Up이 나오는 장면이다.
선택의 기로에 있는, 혹은 다가올 일들을 기다리고 있는 주인공들이 각자의 공간에서 공통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지만, 이 장면은 영화의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다.
영화 초반에서는 캐릭터들이 티비 스크린을 공유할 때, 이제 후반에서는 서로 음악을 부르며 공유하게 된다. 현실적으로 말이 안되지만, 정신없이 분산된 그들의 이야기들이 사실은 하나의 주제, 즉 과거의 잘못과 반성, 상처와 용서로 묶여있음을 상기시켜주는 것이다.
따라서 우스꽝스러운 Wise Up 합창 장면은 영화 주제의 환기이자 산만함을 정리시키는 지점으로서, 각자의 상처, 후회, 외로움을 동시에, 그러나 효과적으로 관객에게 전달시켜준다. 또한 이 장면은 영화의 시간이 잠깐 멈추는 장면이기도 하다. 흘러가는 시간을 잠시 정지시켜 비현실적인 합창을 통해 흔적으로만 남았던 과거를 끌어올리며 앞으로의 선택을 결정짓기 위해, 혹은 앞으로의 삶을 직면하기 위해 위해 반추하는 것이다.
물론 영화의 가장 결정적 순간은, Wise Up이 끝나고 다시 비가 내리는 순간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