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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goongjun Jul 19. 2022

13. 그래...적당한 거리감은 필수지

회사생활 적응기 #3

속에 있는 이야기 다 하는 거 아니야


첫 회사 다닌 지 2년 정도 지난 때였던 것 같다. 그때 내 부모님은 다른 나라에서 살고 계셨다. 집안 사정으로 조기 은퇴하신 아빠가 다른 나라에서 일하며 살 수 있는 기회를 찾아 먼저 떠나셨었고, 1년 정도 뒤에 엄마를 아빠에게 모셔다 드리느라 열흘 정도 휴가를 내고 다녀왔었다. 정말 오랜만에 부모님과 함께 모여 여행도 다니고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나도 그곳에서 같이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래도 당장 가겠다는 것도 아니었고, 일단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건 해두었다가 나중에 기회가 생긴다면 도전해 보자 정도의 이야기를 했었다.


엄마를 모셔다 드리고 돌아온 뒤 회사 동료분들의 질문들에 답하다 보니 '거기 가서 부모님이랑 같이 살고 싶지는 않아?'라는 질문도 나왔었고, 거기에 난 '기회가 된다면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하죠. 부모님이랑 언어 준비 같이 일단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은 해보는 게 어떨까 하는 이야기는 했어요. 근데 어디 다른 나라 가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인가요. ㅎㅎㅎ' 정도로 답했었던 것 같다. 그 후 마감을 해야 하는 일들이 있으니 회사일 열심히 하고 지냈다. 그러다가 회사일에 도움이 되는 교육을 받을 기회가 왔었다. 회사에서 필수로 이수하도록 하는 교육이었는지 내가 요청한 교육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내가 받을 교육이 있었고, 팀장님은 그에 대해 담당자분과 이야기를 하러 가셨다. 이후 팀장님이 날 살짝 부르시더라.


"네가 받을 교육은 이제 곧 받게 될 거야. 그런데 너 부모님 계신 곳에 갈 계획 있다는 이야기한 적 있니?"

"다른 분들과 이야기하는 중에 갈 계획이 있냐는 질문이 나오길래 가고 싶은 생각은 있다는 말은 했었어요. 언어 같은 건 준비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도요."

"어휴, 그런 마음이 있더라도 그걸 그렇게 말하면 어떡하니... 그런 말은 솔직하게 하는 거 아냐."

"왜 그러시는데요?"

"네 교육 관련 이야기하러 갔더니 '어차피 떠날 사람인데 교육받을 필요가 있나?' 하는 말이 나오더라... 당장 떠나는 것도 아니고 지금 일하는데 필요한 교육이니 받아야 한다고 말해서 하기로 했지만 앞으로 그런 속 이야기는 안 하는 게 좋아. 알았지?"


이때 참 충격받았었다. 당장 2-3년 사이에 떠날 계획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가 '어차피 떠날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고, 당장 진행되는 작업에 도움이 되는 교육에 쓰일 비용을 허튼 지출로 회사에서 인식할 수 있다는 점이. 사회생활 시작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은 때였지만 '내가 참 많이 순진했구나'를 느꼈던 순간이었다. 더불어 아무리 동료분들과 친밀하게 지내고,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내 모든 시간을 투자하며 내가 할 몫을 충분히 한다고 여겨져도 난 결국 '대체 가능한 조직원 1'일 뿐이라는 것과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 꺼내는 건 회사생활에는 참 위험한 일이구나'를 제대로 깨달았던 순간이기도 했다. (이렇게 깨달았어도 때때로 바보짓하는데 그래도 사회생활 중 갖는 인간관계에 '적당한 거리감'을 갖도록 노력하게 되더라.)


이때는 어리기도 했고 관계의 친밀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때라 참 많이 서운했었다. 하지만 경력이 쌓이면서 알게 된 건 마음을 드러내는 정도를 조절하는 게 나뿐만 아니라 협업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도 된다는 거였다. 모든 사람의 마음이 다 나 같지는 않다. 코드가 맞아서 죽이 잘 맞는 동료들조차도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일로 만난 사이에 사적인 친밀성을 높이고자 하는 행동이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고 결국 결과물의 질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점을 잘 인지하고 그 거리감을 잘 지키는 것이 정말 중요하더라. 그리고 회사의 운영진일수록 내 속을 모르는 게 서로 속이 편하다. 최대한 속 편하게 일하기 위해 속 마음은 최소한만 드러내자.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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