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나 Oct 25. 2021

성급히 판단 말고 급하게 내치지 말자 1

The Subway -  Young for Eternity, 2006




The Subway의 2006년 발매 앨범 [Young for Eternity]를  처음 만난 곳은 후쿠오카 텐진에 있는 레코드샵이었다.


그때가 2005년이었나? 2006년이었나.  

꽤나 오래 전의 일인데 이 날의 몇 가지는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후쿠오카의 번화가인 텐진(天神)에 가야 할 용무가 있었다. 약속은 낮 3시 정도였고 날씨가 꽤 화창해서 일찍 집을 나서기로 했다.

‘평소 봐 두었던 카페에 가서 잠시 동안 나의 시간을 가져야지’라는 두근거림도 기억난다.


하지만 카페도 약속에 관한 것도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의 내 기억 대부분을 차지한 건 음반 매장을 가득 채운 알록달록한 팝업 카드였다.

귀여운 글씨와 대비되는 색상의 카드 하나에 [올해 꼭 들어야 할 앨범],  [오랜만에 수작을 만났다] 뭐 대충 이런 내용의 일본어가 적혀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하면서 음반 구입은 뜸해졌다.

하지만 과거의 나는 해외 아티스트 음반을 나름 구입하려 노력했다.

당시 일본 아티스트 앨범은 가격은 3000엔 이상이었는데 해외 음반은 수입판의 경우 1000엔~2000엔 사이였다.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는 기억이다. 해외 아티스트 음반이라 하더라도 일본 내 정식 발매판은 일본 아티스트와 비슷한 가격이었다.)

음반에 따라서는 한국에서보다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도 있었다. 이 고마운 가격 때문에 꽤 자주 레코드 가게로 향하곤 했다.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팝업 카드에 머글인 내가 볼 수 없는 주문이라도 써 놓은 걸까?

무엇인가에 홀린 듯 음반을 집어 들었다. 여느 수입판 CD가 그렇듯 이것 또한 가벼웠다.

평소라면 시청(試聴)을 한 후 구입하는데 그날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작은 글씨의 설명 몇 줄에 의지해 구입을 결정했다.

<The subway>라는 아티스트에 대한 기사 한 줄 읽은 적도 없고 ‘초면’이라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은 아티스트의 앨범을 구입하다니!

그렇게 나는 자주색 바탕에 나무의 윤곽만 그려진 앨범 하나를 손에 넣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감정 덩어리 중 하나는 ‘초면의 아티스트’ 음반을 과감히 구입했다는 ‘대견함’이었다.

들어본 적도 없는 음악에 이리도 만족할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과감한 나’에 흠뻑 취해 있었다. 집에 도착해 시디의 비닐을 뜯기 전까진 말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포장 비닐을 뜯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흘러나오는 멜로디와 함께 알록달록하고 눈부셨던 나의 하루는 일순간에 까만색으로 점철되어버렸다.

나를 담고 있는 공간에는 온몸에서 뿜어져 나온 실망 만이 떠다니고 있었다.


“뭐지? 이 밍밍한 음악은? 난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음반을 산 거야? 한 번 들어라도 볼걸. 이게 뭐야!”


이런 뻔한 후회의 문장을 거듭 중얼거렸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예뻐 보였던 보라색 재킷은 촌스러워 보였다.

그날 밤 내가 날 미워하지 않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시디를 안 보이는 곳에 쳐 박아 두는 것!


그렇게 <The subway>의 <Young for Eternity>는 망각의 배를 타고 완벽하게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급하게 판단 말고 성급히 내치지 말자 2]로 이어집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