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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PMS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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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나 Oct 27. 2022

PMS, 너란 녀석! 날 너무 힘들게 해

PMS 극복기 1 - 울지 말자

며칠 전에 지인에게 메일 한 통을 보냈다. 

이직을 위해 여기저기 이력서를 보내는 중인데 마음에 드는 곳에서 정한 양식에 '추천인'란이 있었고 그곳에 그 지인의 이름을 써넣었다는 것을 알리는 메일이었다. 미리 양해를 구했어야 하는데 지원 마감이 코앞이라서 급한 나머지 먼저 연락하지 못했다는 사과의 한 줄도 써넣었다. 전에도 몇 번 이런 일로 신세 진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개의치 말고 자기 이름을 써넣으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의 메일에 곧바로 답장을 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지인에게서는 이렇다 할 답이 없었다. 지인이 몸 담고 있는 프로젝트의 소식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한창 바쁜 시기 같았고 그래서 늦어지나 보다 했다. 중요할 게 없는 답장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냥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았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침대 위에 몸을 뉘었을 때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나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나에게 답장을 하지 않고 있는 건 내가 최악의 인간이라서 그래. 그래 맞아. 내가 지금까지 여러 번 부탁했으니 귀찮을 만도 하잖아. 굉장히 뻔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답이 없는 거야.'


무섭게도 나의 생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 같이 뻔뻔하고 한심하고 무능력한 사람이 어떻게 지금까지 그렇게 유능하고 착한 사람과 관계를 이어 왔을까? 그것부터가 말이 안 돼! 그러니까 그녀가 이런 나를 잘라내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몰라. 그러고 보니 요즘 내 문제에 허덕여 다른 사람들에게도 세심히 연락하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그 사람들도 이렇게 한심하고 바보 같은 내가 싫겠지? 어쩌면 내가 깨닫지 못했을 뿐, 나는 이미 일과 관련해서 만나고 사귄 모든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는지 몰라. 아니. 버림받았어. 확실해. 나 같은 걸 친구 혹은 지인으로 옆에 둘 리가 없잖아. 그렇구나. 내가 그렇게 쓰레기 같은 인간이었구나. 어쩌지? 나 어쩜 좋지? 이런 인간이 이렇게 살아 있어도 되는 걸까? 나 같은 인간이 사는 것 자체가 모든 것의 낭비 아냐?' 




혹자는 급작스러운 생각의 전개에 당황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일이 정기적으로 일어난다면?


부끄럽게도 어느 날 갑작스럽게 우울의 끝을 달리는 2~3일의 기간이 월경 전 증후군PMS이라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월경과 관련된 신체 변화에 대해 나름 기록하고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가슴이나 허리가 아프다거나 두통이 있다는 정도만 기록했을 뿐, 롤러코스터와도 같은 나의 기분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무지했던 것이다. 



신체적 증상은 물론 심리적 증상도 포함하는 월경 전 증후군PMS은 사람마다 증상과, 증상이 지속되는 기간이 다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을 꼼꼼하게 관찰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의 경우 앞서 언급한 가슴과 허리 통증, 두통 외에도 기분 장애가 매달 반복되는데 신체적 증상의 경우 몇 알의 진통제로 다스릴 수 있지만 기분 장애는 늘 날 당혹게 한다.


이 글을 쓰는 오늘도 심한 기분 장애로 그 어떤 일에도 집중하지 못한 채 불안함에 떨고 있다. 신기한 것은 나의 (위에서 쓴 것과 같은) 망상이 월경 전 증후군PMS 증상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아, 이 빌어먹을 호르몬 같으니라고!'라고 욱 하다가도 인간쓰레기 같은 자신에게 화가 나 울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이런 글 따위 쓰레기밖에 더 되겠니'라는 생각 때문에 여기까지 쓰는 데도 꽤 시간이 걸렸다.)


솔직히 이렇게 글을 쓴다고 해서 요동치는 감정의 곡선이 잠잠해질지는 모르겠다. 다만, 증폭되는 초조와 불안감에 맞서고자 키보드를 두드리기로 했다. 별 거 아닌 이 작업이, 그리고 노력이 또다시 엉엉 울고 싶은 나를 감정의 벼랑 끝에서 구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여전히 '넌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존재야'라는 외침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지만, 이 글쓰기가 나에게 도움이 될지도 미지수이지만 월경 전 증후군PMS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브런치에 글을 써 보고자 한다. 

비루한 기록임이 분명하지만 적어도 오늘 밤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잘 막아주고 있으니까.....

아직 벼랑 끝에 서 있지만 오늘은 이걸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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