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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바써니 Apr 04. 2023

02_I`m not ready.

그동안 ‘어떤 가족, 가정을 이루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결혼을 먼저 떠올렸다. 결혼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면 머릿속은 온통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할까?’라는 질문으로 가득해졌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다른 누가 아닌 나 자신이 배우자로 적합한 사람인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원가족 사이에서 좋은 것보다 부정적인 것을 더 많이 보고 자랐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부모님처럼은 살지 말아야지’ 했는데 연애하면 할수록 부모님의 닮고 싶지 않은 면이 내게서 자주 보이곤 했다.

처음엔 자신을 모조리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그 충격이 컸다. 아이러니한 건 그렇게 충격이 컸음에도 나는 그 고질병을 고칠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그냥 연애했다. 어쩌다 푹 빠져놓고는 잡아먹을 듯이 싸우기를 질리지도 않고 반복했다. 이게 과연 바람직할까?     


온라인의 한 웹사이트를 통해 애착유형 검사를 무료로 해보았더니 ‘공포 회피형’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자신도 타인도 긍정할 수 없는 나는 누구도 믿지 못한다.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계속 무너지는 경험이 잦았던 나는 가까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내 물건을 만지는 게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이런 내가 가정을 꾸리는 게 맞는 걸까?     


그렇게 진전 없는 생각이 계속되었는데, 어제는 문득 그런 의구심이 들었다. 도대체 가족이라는 게 뭔데? 가정이라는 게 뭔데 이토록 목을 매야 하는 걸까?

사전을 찾아보니 가정이란 ‘1. 한 가족이 생활하는 집 2. 가까운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 공동체’라고 쓰여있었다.     


우선 혈연으로 맺어진 원가족과 공동체를 유지할 생각이 없으므로 극단적으로 대답하라면 나는 가정을 꾸리길 원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결혼이나 입양 등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꾸릴 수도 있지만, 지금 내가 버는 수입을 고려하면 누군가와 함께 생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나 하나 먹이고 입힐 생활비 마련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최근, 대출까지 받은 터라 상대방에게 부담이 될 게 뻔하다.     


감정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이미 밝힌 바 있듯 나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그런 생각으로 나는 오만에 빠지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내가 의사가 아닌데 감히 타인의 우울을 견디는 것을 넘어, 고칠 수 있다고 믿었다)

2021년, 6년 만에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는데 당시 만나던 사람은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다. 치료받기 시작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상태라 많이 혼란스러워했다.

나는 그 사람이 나를 만나면 달라질 거라 믿었다. 내가 그에게 충분한 지지와 응원을 계속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5평 남짓한 좁은 원룸에 성인 두 사람과 개 한 마리가 각자의 사생활이라곤 1도 없는 상태로 지낸다는 건 지옥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내 감정과는 다르게 그의 우울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며칠씩 머물다 갔다. 그런 날이면 우리는 모두 숨을 죽이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그게 나를 숨 막히게 했다. 그렇게 계속 가라앉은 기분으로 있고 싶지 않았다.


“내 기분은 괜찮다고!!”라고 외치며 뛰쳐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내 기분과 상대의 기분이 같지 않을 수 있다. 이건 명백하게 알겠다. 그러나 이럴 때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끝끝내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로.     


반대로 내게 우울이 찾아오는 날이면 내가 겪었던 그 감정을 내 곁의 누군가가 겪어야만 할 거다. 이게 얼마나 숨통을 죄어오는지 경험했기 때문에 나와 함께 생활하는 사람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결국 나는 누군가와 한 공간에서 함께 생활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단순하게 ‘미래’에 꾸리고 싶은 가정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시작한 이야기가 비장하게 이러이러해서 나는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라 버렸다.               



한편 ‘돌봄’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늘 그림자처럼 안고 있다. 아직 젊고 건강하지만, 좀 더 나이가 들고 건강을 잃기 시작하면 ‘누가 나를 위로하고 돌봐줄까?’라는 걱정을 가끔 한다.

가능하다면 그 돌봄이 따뜻했으면 좋겠는데. 그저 몸을 돌보고 돌아서는 관계가 아니라 애틋한 마음이 오가는 관계면 좋겠는데 말이다.

1인 가구는 누구에게 그런 돌봄을 부탁해도 되는 걸까? 가슴이 먹먹해진다.          


앞으로 연애하든 하지 않던 1인 가구의 생활을 유지할 것 같기 때문에 내 삶이 윤택해졌으면 좋겠다. 가능한 한 오랫동안 혼자서 나를 돌보는 게 가능할 수 있도록.

이것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일 테니 온 힘을 다해 자신을 돌보고 싶다.     


그러나 정말로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그때에는 어떡하면 좋을까? 그때 가서 고민하기에는 너무 늦지 않을까? 누군가 내게 정답을 알려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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