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완료하는 것과 되게 만드는 것은 다릅니다
나는 현재 두 명의 팀원을 매니징하고 있는 작은 스타트업 마케팅팀 팀장이다. 그 중 한 팀원은 이 회사가 첫 직장인 1년차 마케터로 어린 나이에 벌써 다양한 업무 스킬과 경험을 쌓은 열정적인 친구다. 정말 똑부러지고, 최선을 다해 일을 하고, 맡은 일은 어떻게든 완수해낸다는 책임감이 있는 훌륭한 팀원인데, 왜인지 그에게서 나오는 결과물은 투입한 시간 대비 기대치에 못미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는 1) 경험이 부족하고, 2) 실행보다 고민을 많이하는 주니어들에게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노력에 따라 충분히 개선이 가능한 영역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나의 강점과 약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의식적으로 나의 약점을 보완하여 일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매니저의 역량은 팀원의 강점을 극대화하고 약점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성과 업무방식을 제시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이 친구가 투입한 노력과 고민의 총량에 100% 비례하는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업무방식을 제안해주면 좋겠다는 판단을 했고, 이 업무방식을 "일이 되게 만드는 법"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해보았다. 책에 나와있는 개념이 아닌 10년간 초기/중기 스타트업, 외국계 기업, 대기업을 거치며 다양한 규모와 스테이지의 조직에서 성과를 내본 나만의 일하는 법을 정리한 것이기에 동의하는 분도, 그렇지 못한 분도 계실 거라 생각한다. 그저 이렇게 일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너그러이 바라봐주시면 감사하겠다.
일이 되게 만든다는 것은 단편적으로 생각하면 "성과를 잘 내는 것"이라고 해석하기 쉽지만 사실 회사에서 하는 모든 일이 성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러 시장 상황에 의해, 내부 사정에 의해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음에도 좋은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나는 일이 되게 만든다는 것을 단순히 성과와 결부짓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정의내리고 있다.
일이 되게 만든다는 것 = 누가와도 이 이상의 결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스스로의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이런 확신은 일을 ‘그냥’해보거나 ‘일단’ 해봐서는 가질 수 없다. 내가 맡은 일의 Why와 What을 타인의 언어가 아닌 나의 언어로 정의하고, 이에 따라 도출된 How 리스트를 빠르게 실행해나가는 것이 핵심이다.
1. 이 일을 왜 해야하고 (Why)
2. 어떤 지표를 끌어올려야 하고 (What)
3. 이를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효율적이고 효과적일까 (How)
문제는 대기업에서 해야하는 일과 스타트업에서 해야하는 일이 다르다는데 있다. 대기업에서 하는 일은 어느정도 ‘루틴’이 있어 ‘개선’의 관점에서 해야하는 일이 많다보니 주니어 실무자라고 해도 기존의 업무 이력을 보며 Why - What - How를 정리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편이다. 반면 스타트업에서 하는 일은 0에서 1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존 히스토리가 전무한 상태에서 일을 시작하다보니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스타트업 주니어들은 Why와 What은 어찌어찌 정의내린다 해도 How를 어떻게 도출해야 가장 최선의 플랜인지 판단이 쉽지 않다. 때문에 스타트업의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고 일을 되게 만들기 위해서는 두가지 관점으로 나눠서 실행하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실행을 두가지 관점으로 나눠서 바라본다.
첫째. 계획을 짜기위한 실행 (계획 실행)
둘째. 결과를 내기위한 실행 (결과 실행)
경험과 인사이트가 많을 경우 계획 실행을 생략하고 결과 실행만 할 수도 있겠으나- 본인이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주니어이거나, 또는 경력직이라도 새로운 분야를 마케팅 해야 할 때는 계획 실행을 통해 빠르게 경험과 인사이트를 쌓고 이를 기반으로 더 나은 결과 실행을 추진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상황에 따라 계획을 언제든지 빠르게 변경 가능하다는 것이 스타트업의 최대 장점아니던가.
예를 들어보면 이런 것이다.
- 아직 1년차밖에 안된 스타트업 주니어 마케터에게 해본 적 없는 업무 지시가 내려왔다
- 다음달에 신규고객 모객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모션이 런칭 될 예정인데
- 이 프로모션을 외부에 효율적&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미디어믹스를 기획해보라는 것
- 기간은 4주, 예산은 5천만원이다
이 마케터는 5천만원이라는 큰 예산을 직접 핸들링 해본 적도, 미디어믹스라는 것을 기획해 본 적도 없다. 광고라고는 페이스북 광고만 조금 집행해 본 정도인데 갑자기 미디어를 믹스해서 계획을 짜오라니 난감할 따름이다. 대부분의 경우 주니어 마케터들은 이 일을 받아들자마자 '4주치 미디어믹스'를 '완벽한 문서'로 완성해야한다는 압박감에 사로잡힌다.
3일 밤낮을 끙끙앓아가며 구글에 '미디어믹스'를 검색해 나오는 각종 경험담과 정보를 읽고 나름의 고민을 거쳐 미디어믹스라는 것을 짜간다. 당연히 상사가 보기에 성에 차는 결과물이 나올 리 없다. 이럴 때 스타트업 주니어 마케터들에게 추천하는 것이 바로 계획 실행과 결과 실행을 나눠서 접근하는 것이다.
-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성과를 내기 위한 광고 컴포넌트의 조합을 찾아내기 위한 실행
- 즉, 어떤 소구점을, 어떤 타겟에게, 어떤 크리에이티브로, 어떤 매체의 어떤 지면에, 어떤 캠페인 유형으로, 어떤 최적화 방식으로 집행했을 때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지 알아내기 위한 실행을 하는 것이다.
- 계획 실행을 하는 기간은 '성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 따라서 예산은 '광고 컴포넌트 조합'을 테스트하는 최소한의 비용만 집행한다.
- 계획 실행에서 얻은 배움과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테스트 비용을 제외한 나머지 예산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실행
- 결과 실행은 말 그대로 '성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비효율적인 컴포넌트는 전부 제거하고, 가장 효율이 좋았던 컴포넌트의 조합에 예산을 집중 배정한다.
이렇게 계획 실행과 결과 실행을 나눠서 접근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장착하면 빠른 실행으로 시간과 리소스를 단축하는 것은 물론, 처음부터 '완벽한 How'를 기획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사로잡히지 않고 건강한 멘탈까지 지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일을 맡긴 스타트업 팀장이 주니어 팀원에게 한 달치 미디어믹스를 짜오라고 했을 땐 처음부터 완벽한 주차별 계획을 짜오길 기대하지 않는다(미디어믹스가 아니라 어떤 일을 시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해당 팀원의 지식, 경험, 회사의 상황 등 여러가지를 고려했을 때 어떤 플랜이 최선일지 고민해서 가져오라는 뜻이다. 따라서 팀장이 '한 달치 미디어믹스'를 짜오라고 했을 땐, 단순한 보고서 한 장이 아니라 팀원의 이런 매니징업을 원하고 있을 것이다.
"팀장님, 제가 고민해보니 아직 이 프로모션이 어느정도의 효율을 낼지 파악이 안 된 상태이므로 현재 시점에서 한달치 미디어믹스를 구성하는 것은 크게 유의미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신 이렇게 해보겠습니다.
2주동안 어떤 미디어믹스를 구성해야할지 판단의 근거를 마련해 줄 광고 컴포넌트 테스트를 먼저 진행하겠습니다. 1주차에는 광고 크리에이티브 테스트를 통해 고효율 광고 소재를 도출해내고, 2주차에는 이 고효율 광고 소재를 기반으로 어떤 매체에 어떤 캠페인 최적화를 했을 때 가장 효율이 좋은지 도출하려고 합니다. 이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2주동안 N만원의 예산이 필요합니다. 적은 비용은 아니지만 꼭 필요한 최소한의 테스트비용이라고 생각합니다.
테스트 종료 후에는 총 예산 5천만원 중 테스트 비용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최적의 광고 컴포넌트 조합에 집중 집행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해당 미디어믹스는 2주의 테스트 기간이 끝난 후에 다시 보고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보고를 했는데 만약 팀장이 "왜 일을 이런식으로 하냐"고 면박을 준다면 그 회사는 바로 나오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