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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무 Dec 27. 2022

2022년 1월, 엄마와 블로그

엄마가 며칠 전부터 식탁이 아닌 PC 가 놓여있는 거실 책상 앞에서 뭔가를 유심히 보는 시간이 늘었다. 온라인 강의 프로그램을 신청해서 듣는다고 했다. 엄마는 코로나 펜데믹 이후, 온 세상이 오프라인에서 디지털 세상으로 갈아타는 시대적 부름에 뒤쳐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유튜브 강의를 듣기 시작한지 꽤 오래됐다. 매일같이 올라오는 유튜브 동영상을 빠짐없이 듣다가 급기야 거기에서 만든 사이버대학인가 뭔가 하는데에 1년치 등록금을 덜컥  결제해버린것이다. 내가 알았다면 절대 못하게 막았겠지만, 내가 안 것은 이미 결제는 애시당초 한 뒤였고 매일 진도에 맞춰 듣는 강의에서 내주는 숙제를 머리싸매고 하고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디지털 세상에 빌딩을 짓겠다고 오늘도 아침부터 돋보기 안경을 끼고 컴퓨터를 조물조물 하기 시작한다. 유료 강의를 듣는다는 것 자체부터가 나로써는 이해할 수 없었고 우리 엄마처럼 디지털 하면 무조건적으로 긴장부터 하고 보는 세대를 마케팅으로 현혹하는 상술에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넘어갔다는 것에 그런 강의를 남발하는 유튜브 스타강사들이 싸잡아서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런 거 다 상술이라고 불안감을 자극해 뭐라도 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처럼 말해놓고 그대로 따라 하면 자기도 그 사람처럼 뭔가가 될 것처럼 그럴듯하게 만든 마케팅에 속은 거라고 당장 그만두라는 말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저렇게 뭔가 배우려는 열정으로 책상 앞에 앉아있는 엄마의 모습이 오랜만이라서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은 블로그를 만드는 게 숙제인데 좀 도와달라고 했다. 그것 보라며 왜 할 줄도 모르는 걸 시작했냐고 내가 한소리 할 줄 뻔히 알면서도 도저히 혼자서는 할 수 없었는지 여러 번 고심 끝에 내게 보낸 SOS 였다. 그동안 블로그는 네이버 아이디만 있으면 다 되는 것인지조차 몰랐던 엄마는 블로그를 개설하는 것이 유튜브 동영상 편집을 배우는 것만큼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엄마가 취미생활로 유튜브를 시작한 지 일 년쯤 됐다. 엄마의 채널이지만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운영이 되지 않는 채널이다. 그렇게 나는 엄마의 유튜브에 올릴 콘텐츠를 간단한 편집툴로 자르고 붙여주는 편집자가 되었다. 원래는 올리는 것까지 내가 다 했는데 이제 유튜브 계정에 올리는 건 엄마 혼자서도 할 수 있게 됐다. 엄마가 음성녹음 앱으로 녹음을 하면 완성된 녹음 파일로 편집은 빠르면 5 분이면 하는데 나는 늘 편집을 해달라는 엄마한테 바쁘다고 꼭 한 번은 미루고 나서 마지못해 해준다. 편집기 프로그램이 잘 나와서 편집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나는 손을 뗄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그때는 몰랐다. 엄마한테는 모바일 앱에서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때 왜 이 버튼을 눌러야 하는지, 버튼을 한번 누르는지 더블클릭을 하는지, 핸드폰 화면에서 손가락을 왔다 갔다 하면서 길이를 줄이고 늘리고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한마디로 엄마에게 핸드폰은 전화 카톡 유튜브 만으로도 충분한 물건인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유튜브는 잘도 찾아서 보면서 왜 이건 모르냐고 핀잔을 준다. 나에게는 당연한 것이 엄마에게는 당연하지 않다.  


엄마의 블로그 개설 숙제를 해주기 위해 네이버 계정에 들어가 보니 엄마의 블로그는 아이디를 개설한 2012 년 즈음부터 이미 어떤 사행성 게임을 홍보하는 계정에 해킹을 당한 상태였다. 낯선 게임으로 아웃링크가 되어있는 똑같은 포스트가 여러 개 올라와 있었고 네이버 측으로부터 불법 포스팅으로 신고되어 사용이 중지된지도 어언 8 년이 흘러있었다. 해킹당했을 때 아이디를 도용한 사람이 교묘하게 관리 모드로 들어가는 버튼의 글자 색상을 흰색으로 바꾸어 놓아서 이 관리 버튼의 기능을 설명하는 것 만으로도 시간이 한참 걸렸다.  

이렇게 저렇게 블로그를 초기화한 후 가능하면 예전처럼 내가 다 해주는 것이 아닌 엄마가 직접 하나하나 해볼 수 있게끔 설명해나가려고 했다. 내가 다 해주는 게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것보다 몇 배는 빠르고 편하지만 최근에서야 엄마가 원하는 것은 결과물보다 자기가 해냈다는 성취감이라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블로그 설정 페이지에서 몇 가지 기본 정보 이를테면 별명, 블로그 제목, 게시판 카테고리를 개설해야 한다고 알려줬다. 그런데 엄마에게는 블로그 제목을 설정하는 것부터가 도전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한 것만으로도 진도를 많이 나갔다 싶어서 나도 엄마에게 숙제를 내주었다. 내일까지 여기 대문에 나타나는 블로그의 제목을 몇 개 생각해 보라고. 블로그가 책이라면 이건 책의 제목과 같은 거라서 엄마가 이 블로그로 하고 싶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거면 다 된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엄마가 몇 개 후보군을 불러주더니 나보고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다 좋으니 엄마가 하고 싶은 걸로 하라고 예처럼 대충 대답한 후 곧바로 돌아온 엄마의 대답은 이것이었다.  

“나 원더풀 라이프로 할 거야”

원더풀 라이프.  

엄마는 약간은 흥분된 어조로 밝게 웃으며 원더풀 라이프라고 말했다.  

엄마의 책 제목은 원더풀 라이프구나.  

‘엄마 엄마에게 이 삶은 원더풀 라이프야?’ 이렇게 묻고 싶었지만, 그런 마음은 그저 마음속에 넣어두고 다시 컴퓨터를 켜고 블로그 제목을 적는 페이지로 들어갔다.  

“자 이제 여기에 제목을 적어봐.”  

“원 더 풀..이야 플이야?”  

“풀이지”

“원 더 풀 라 이 프”  

“다 적었어? 그럼 여기 확인을 눌러.”


엄마는 하라는 대로 하고는 블로그 제목이 [원더풀 라이프]로 바뀐 것을 보더니 또 소녀처럼 손뼉을 치며 웃는다. 됐다 하며 뱉는 안도의 한숨과 ‘아휴 왜이렇게 힘드냐 집중을 했더니 완전 힘드네’  한마디와 함께.  

일 년째 생색이란 생색은 다 내는 딸의 투덜거림을 참아내면서도 블로그를 개설한다고 하루아침에 무언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어쩌면 디지털로의 트랜스포메이션은 엄마에게는 요원한 일일지 모른다는 것을 나보다 더 잘 알면서도 엄마의 원더풀 라이프는 그것들과 상관없이 온라인이 아닌 바로 이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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