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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겨울

2010 겨울

by 모레


나무가 이파리를 하나둘 떨어트리면 낙엽은 거리를 뒤덮고 아이들이 조막만 한 발로 그 위를 뛰어다닌다.

바스락 소리와 함께 작은 꼬마의 두 뺨이 발그레 물들면 계절은 어느새 겨울이다.


언제 나가요?


겨울이 오면 '춥다'라는 이유로 산책 가는 일이 망설여진다.

하지만 이중모 긴털을 지닌 흰둥이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극한의 한파가 아니라면 저 간절한 눈빛에 마음이 흔들려 겨울 속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흰둥아, 오늘 날씨가 엄~ 청 춥데.
그냥 오늘은 집에서 쉴까?


심심해.
우리 산책 언제 가요?



아~ 지루하다.


털이 긴 흰둥이에게 옷은 거추장스러운 물건일 뿐이다.

그럼에도 산책 시 입혀야 하는 건 추위나 바람으로부터 강아지를 보호하는 기능 외에 다른 이유가 있는데...


흰둥이는 다리는 짧아서 털이 길면 바닥을 쓸고 다닌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흰둥이는 바닥을 쓸기 딱 좋을만큼 털이 쪘다. 그래서 산책 후 배털이 엉망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럴 때마다 매번 목욕을 할 수 없으니 옷을 입히는 건 최선의 선택이다.



줄무늬 피케셔츠는 한여름을 제외하면 일 년 내내 입을 수 있는 필수템이었다.

하지만 배부분이 뚫려있어 앞 뒷발로 흙을 날리며 산책의 흥분을 참지 못하면 엉덩이와 뒷다리 털이 엉망이 되었는데 털이 자라면서 셔츠의 단추가 다 잠기지 않아 의도치 않게 셔츠를 단추를 풀고 다녔다.



일명 이소룡 츄리닝이라 불리는 노란색 올인원은 흰둥이에게 잘 어울려 입히면 귀여웠는데 문제는 세탁할때마다 옷이 작아졌다. 처음엔 분명 긴바지였는데?

맞지 않는 옷을 입은 흰둥이는 어그적 어그적 걸으며 불편해다.



기모가 들어간 슈퍼맨 티셔츠를 입은 흰둥이는 빙판에서도 날아다녔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걷는 나와 달리 발바닥에 아이젠을 장착한 듯 흰둥이의 속도는 남달랐다.


슈퍼맨 도와줘요~
혼자 가는 게 어디 있어, 같이 가 흰둥아


빨리 와요, 누나!


흰둥이도 여느 다른 강아지와 같이 눈이 쌓인 곳만 보면 달려들었다.

저 빨강 티셔츠가 아니었다면 소복이 쌓인 새하얀 눈밭에서 한눈에 흰둥이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흰둥아, 그만 나와!

너 지금 눈 먹었지?


이게 진짜 눈꽃빙수죠!

한입 하실래요?



옷을 입혀도 저렇게 눈밭에서 뛰고 뒹굴면 어쩔 수 없었다.

그냥 목욕을 하는 수밖에...


저거저거~ 놀 때는 좋아도 다~ 일인데.

그만 좀 나와라!

더, 더러워지기 전에 ㅠㅠ


우와~
온통 눈밭이네!



그 눈 다 쓸고 다닐 거야?

넌 발도 안 시리니?


잠깐만요.
저기 아직 발도장 안 찍은 곳이 있어요.


흰둥아, 이제 그만 가자.

눈이 녹고 있어!



꽁꽁 얼어붙은 강이 서서히 녹고 졸졸졸~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면

앙상한 매화나무 가지에 하얀 꽃잎이 피어난다. 봄이 머지 않았다.


흰둥이와 나는 함께할 7번째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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