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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에 흰둥이를 담다

2011년 NATURA CLASSICA super mx100

by 모레
필름 카메라 불편하지 않아?


불편하다.

크고, 무겁고, 비용도 들어가고, 잘 찍혔는지 또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답답함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필름 카메라가 좋다.

왜 좋냐고 묻는다면 이런 모든 단점을 한 번에 상쇄시키고도 남을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한롤의 필름에 담을 수 있는 순간은 단 36번.


하나의 컷을 담을 때마다 나와 카메라, 프레임 속에 들어온 대상은 하나가 된다.

찍고 싶은 대상과 공감을 나누며 셔터를 누르기까지 순간에 집중하는 일, 그래서 결과물이 아쉬워도 그 기억은 소중하고 오래 남는다.


좋은 결과물을 남기기 위해 주변과 대상들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카메라 설정을 맞춰가며 적절한 타이밍이 다가올 때까지 준비하고 기다린다. 그 모든 일련의 과정들은 대상에 대한 공감이 없다면 힘들고 번거롭다. 그래서 대상을 관찰하고 들여다보 한컷 한컷 셔터를 누르는 일은 어쩌면 보이지 않는 내면의 마음을 담아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필름 카메라를 놓지 못하는 제일 큰 이유는 공감이라는 감정에 있다.

애정과 공감이 담긴 사진은 결과물의 완성도가 어떻든 언제나 마음을 따스하고 행복하게 해준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Henri Carier - Bresson

사진을 찍을 때 한쪽 눈을 감는 이유는 마음의 눈을 위해서이고

찰나의 승부를 거는 것은 사진의 발견이 곧 나의 발견이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단순히 잘 나온 결과물을 얻기 위한 일만은 아니다.

0과 1로 만든 금세 찍고, 쉽게 버릴 수 있는 사진보다 마음의 눈을 열어 그 속 없지만 찍는 사람의 감정까지 담을 수 있는 필름 카메라가 그래서 더 좋다.



뷰파인더에 눈을 가져가 보자.


사각 프레임으로 보는 세상은 조금 다른 감정을 끓어 올리기도 하고

맨 눈으로 바라볼 땐 몰랐던 또 다른 빛의 색이 보일 때도 있다.


어떤 것도 새롭지 않고, 많은 것이 서투르더라도 셔터를 누르는 순간 나의 시간이 그렇게 저장된다.

구도, 초점, 노출, 어느 하나 맞는 구석이 없어도 모든 사진이 소중한 이유다.


가만히 있는 사물이나 풍경을 찍는 일도 어려운데 필름 카메라로 흰둥이를 찍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나올지 고민하거나 망설일 여유도 없다. 휴대폰처럼 손 닿는 곳 가까이 카메라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때가 훨씬 많다.


운 좋게 손에 카메라가 있다면, '바로 지금이야!' 생각이 드는 순간이 온다면, 망설이지 말고 셔터를 눌러야 한다.


분명 '바로 지금이야' 싶은 최고의 순간이 눈앞에 펼쳐졌는데, 아쉽게도 필름을 채 감지 못했거나 이미 필름을 다 쓴 상태의 그 허탈함이란.


결과물을 장담할 수는 없지만 가끔은 예상외의 사진을 건질 수도 있다.


그때, 그 순간이 고스란히 담긴 오래전 사진을 바라보고 있으면 찰나의 순간이 지금 나에게로 후욱- 하고 되돌아오는 것만 같다.


지금 이 사진을 마주하고 있는 내 마음이 그렇다.


안녕?
참 나른한 오후네요.
그래도 햇살이 따사로워요.

지금 누나는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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