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흰둥이는 발이 작으니까 그렇게 크지 않을 거야.
택도 없는 소리!
발이 작으면 강아지가 많이 크지 않을 거라는 소문이 어떤 근거에서 나왔는지 알 수 없지만 어린 강아지들은 모두 발이 작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크기에 관계없이 나에게 흰둥이는 언제나 콩만 한 강아지이지만 흰둥이에게 몸무게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하루 먹어야 하는 사료의 양과 영양제의 용량, 그리고 예방접종 시 몸무게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바로 그 무게였다.
7살이 넘어가면서 흰둥이의 몸무게는 소형견과 중형견의 경계선에서 왔다 갔다 했다. 계절의 특성상 운동량이 적은 겨울에는 8kg이 훌쩍 넘어갔다. 괜한 걱정이라고 할 수 있지만 흰둥이는 다리 관절이 좋지 않아 체중관리가 필수적이다. 병원에서도 나이와 활동량, 식습관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볼 때 몸무게는 9kg을 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하고 있다.
정해진 먹이와 간식을 일정량이 넘어가면 절대로 주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키려 노력하지만, 애교와 애처로움을 겸비한 흰둥이가 냠냠이를 달라고 작정하고 떼를 쓰면 안 주고는 못 배긴다. 하지만 흰둥이가 원한다고 무작정 주다 보면 적정 체중을 유지하기가 매우 힘들다. 결국 감성에 기대지 않고 과학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면 흰둥이는 하루에 얼마를 먹어야 배가 고프지 않을까?
예를 들면
5kg 성견인 경우 2%는 (5x0.02) x 1000 =100g
5kg 성견인 경우 3%는 (5x0.03) x 1000 =150g
이 외에도 휴식기나 활동량이 적은 경우의 RER(Resting Energy Requirement)식 필요 요구량과 크기, 나이, 중성화 여부 등을 모두 고려한 1일 필요 요구량인 DER(Daily Energy Requirements)식 계산법이 있다.
제조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사료 포장지에 체중 대비 하루 급여 적정량을 설명하고 있으니 각자 급여하고 있는 사료의 성분표를 꼼꼼히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
일부 펫샵 등에서는 강아지를 분양할 때 매우 소량의 먹이를 급여하도록 권하기도 한다. 이는 성견이 되었을 때 크기를 키우지 않기 위한 사람들의 어긋난 욕심에 불과하다. 적은 양의 사료로 적게 자란 강아지가 앙증맞고 귀여울 수는 있어도 강아지의 건강에는 매우 비상식적인 행동에 불과하다. 영양적 불균형에 빠진 강아지는 늘 무기력하고 별것 아닌 자극에도 예민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체내 저항력이 떨어지게 되면 면역조절과 대사장애를 일으킬 수 있고 나아가 쉽게 질병에 노출되어 버린다.
요 작은 녀석이 먹으면 얼마나 먹겠어?
그래그래~ 우쭈쭈쭈~
아프면 안 되니까 많이 먹어 흰둥아.
ㅎㅎㅎㅎ
그... 그... 흰둥이 너
지금 그 웃음은 뭐니?
하지만 흰둥이의 먹성은 과학적인 계산이나 사료 회사 매뉴얼로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활동량이 많아서였을까? 흰둥이는 적정량의 밥과 간식을 주어도 언제나 모자란다는 듯 더 많은 냠냠이를 원했다. 얼마를 먹어야 그 양이 찰까 싶던 어느 날 아빠는 흰둥이를 쓸 적 한번 쳐다보며 매우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쟤, 이거 한 마리 다 줘볼까?
아빠의 손에는 꽤 묵직한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그 속엔 "자연에서 자란 ***토종닭"이라고 쓰인 마트용 생닭 한 마리가 들어있었다.
흰둥이를 초대형견으로 만들겠다는 평소 아빠의 꿈과 그 먹성의 크기가 늘 궁금했던 나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고 한 참 후 삶아진 닭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흰둥이의 밥그릇에 살코기를 발라 담아 주기 시작했다.
결과는 나의 기권패. 배는 점점 부풀어 오르는데 흰둥이의 식욕은 꺾일 줄 모르니 덜컥 겁이 났다. 닭 한 마리를 게 눈 감추듯 먹어가는 흰둥이를 보며 이렇게 다 주다가는 정말 큰일 나겠단 생각이 들었다. 결국 1/3 남은 상황에서 밥그릇을 빼앗아 들고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마치 이 상황을 예측이라도 하신 듯 룰루랄라 닭을 삶고 있던 아빠와 내게 이런 명언을 남기셨다.
그러다 강아지 짜구난다.
먹고 또 먹고, 싸고 또 싸고,
그리고 또 먹을 걸 달라고?
넌 뱃속에 대체 뭐가 들은 거니?
그만 좀 먹어, 야 이 돼지야!
수많은 반려견이 주인에게 한 번쯤은 들어봤을 "야 이 돼지야!"
음식을 꼭꼭 씹어 먹는 사람들과 달리 일반적으로 개들은 먹이를 그냥 삼키기 바쁘다. 그렇게 삼킨 음식은 10초 이내 식도를 지나 위에 도달한다. 몸에 비교해 커다란 위를 지니고 있어 순간에 많은 음식을 섭취하는데 무리도 없다. 개는 사람에 비해 짧은 장을 가졌고 소화관의 무게도 체중의 11%인 사람보다 3~7%로 작아 음식을 더 빨리 소화할 수 있다. 이렇게 소화가 된 음식은 생식은 4~6시간, 반 건조식은 8~10시간, 완전 건조식은 10~12시간이 지나면 대변으로 배출된다. 평균 소화 시간이 24~30시간인 사람에 비해 왕성한 소화력과 활발한 배변활동을 지닌 개들이 온종일 먹을 것을 바라고, 먹고 나면 바로 변을 보는 것은 크게 놀라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거 봐요.
우린 남다른 소화력을 가지고 있다고요.
돼지가 아니라고요.
어서 와,
중형견은 처음이죠.
생각보다 많이 먹어요.
넉넉히 준비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난 이제 더 이상 소형견이 아니에요
누나 더 이상 망설이지 말아요
누나 기다렸던 만큼 나도 오늘을 기다렸어요
육포 스무 개를 내게 줘요
누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육포 꿈을 꾸며 나 이제 잠이 들어요.
남다른 소화력을 지니고 있어도 한없이 먹다 보면 엄마의 말씀대로 흰둥이의 배는 짜구가 날 정도로 빵빵해진다. 그렇게 몸이 둔해진 흰둥이는 미쳐 침대에 다 오르지도 못한 채 뻗어 버린다.
누가 업어가도 모르겠네.
잠에 취한 거니, 배가 불러서 그러니?
허기지면 잠들기 힘들어요.
zzz
zzz 누가,
냉장고 문 좀 열어 주시겠어요.
zzz
두 번째 서랍 안쪽에
육포가 ZZZ
zzz ZZZ
더는 안돼!!!
오늘은 딱 여기까지!!!
마음을 굳게 다잡아도 본능적으로 타고 난 치명적인 애잔한 눈빛 발사 한방이면 정신을 못 차리고 어느새 간식 봉투를 뜯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그래도 끝까지 이성적 판단을 놓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모든 반려인의 숙명이다.
아니야, 아니야~~ 마음 약해지면 안 돼, 정신 차려~!
우리 흰둥이 그렇게 간절한 눈빛을 하고
누나를 바라보고 있는 걸 보니 배고프구나.
밥 먹기엔 아직 이르고... 흰둥아, 냠냠이 줄까?
흰둥아 삐쳤어?
안 먹어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