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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좀 말려줘요

2012년

by 모레
흰둥아, 너 그러고 있으니까
꼭 목도리도마뱀 같다.
아니, 목도리 도마둥인가 ㅋㅋㅋㅋㅋ


이게 그렇게 웃겨요?
이게 그렇게 재미있어요?

제가 8살 때는 말이죠.



한가하게 다른 강아지들처럼
물고기 인형을 해체하며 놀고 있었어요.

그 흔한 눈알도 코도 없고,
귀도 달랑거리는 꼬리도 없는 인형이라
어디서부터 물어뜯어야 할지 고민이었죠.
아무래도 지느러미를 공략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순간

한 손에 빨간 장갑을 들고
누나가 앞으로 다가왔어요.

잠시 제 눈치를 살피는가 싶더니
누나는 장갑을 머리에 올려놓고는
저보고 둥빙닭이라며 혼자 좋아해요.

이게 뭐가 웃기다는 건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있는 게 분명해요.



그것뿐인가요.
하루는 둥티브 잡스가 되었다가



이상한 모자를 씌워놓고
군밤장수라며 혼자 쌩 난리예요.


옷을 얼굴에 칭칭 감아놓고
치타라고 하질 않나,

고깔모자를 씌우고
생일도 아닌데 노래를 부르질 않나,

생일축하합니다
생일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흰둥이~


이 꼴을 만들어 놓고
정말 나를 사랑하기는 해요?


꽃이 되었다가 또 나비가 되었다가
왜 이러는 거죠?
그냥 평범하게 찍으면 안 되나요?



그중 제일 난감했던 건 말이죠.
왕리본을 달고 공주 놀이를 해줘야 하는 거예요.


내 비록 땅콩은 없지만요, 그래도요.
속상해서 정말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있지만
어쩌겠어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웃으니
공주 놀이쯤 참을 수밖에요.


창피한 건 잠시뿐이라지만
아주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은
나의 흑역사 ㅠ


고된 하루였어요.
그래도 내가 흰둥이라는 걸
잊지 않아서 참 다행이에요.



이것도 다~ 옛날이야기죠.





2017년 요즘엔
얼굴인식 어플로 사진을 찍는데
뭘 쓰고 있지 않아서 조금은 덜 귀찮아요.


기술의 발전이 좋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한 문제는
이 누나스키는 끝을 모른다는 거예요.


어머~ 예쁘다, 예뻐!

흰둥아~ 표정이 왜 그래? 귀찮아?



아이고~ 아닙니다.
귀찮다니요~
열심히 찍으십시오!
예이, 예이!



얼굴인식 어플
이거 어떻게 파괴하죠?
방법을 알려주시는 분께는
육포 2개 드리겠습니다.
연락 주세요.


어머~ 흰둥이,
누나 폰은 왜 안고 있어?


이거 패턴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설마 우리 사이에
지문이나 홍채인식 뭐 이런 걸로
치사하게 잠가 놓은 거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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