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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꽃 흰둥이

by 모레


보송한 공기에 취해,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으며 들릴 듯 말 듯 한 가느다란 숨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이게 정말 현실일까? 너는 어떻게 나에게 온 걸까? 혹시 꿈은 아닐까?”


흰둥이의 발이 나를 건드릴 때, 엉덩이를 나에게 붙이고 누울 때마다 그 작은 존재가 주는 행복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벅차올랐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시름이 사라지는 마법 같았다.


그만큼 흰둥이가 좋았다. 좋아하는 만큼의 감정을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어서 그저 꿈같다고 느꼈다. 흰둥이의 존재 자체가 기적 같아서,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여전히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 작은 체온이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위로였다.


흰둥이가 내 곁을 떠난 지 이제 곧 2년이 된다. 모니터 배경화면 속 흰둥이 사진을 보며 문득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이 정말 현실이었을까 싶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그 보송한 순간들이 너무나 아련하게 느껴져 꿈이었나 싶을 때가 있다. 때로는 흰둥이가 이 공간 어딘가에 있는 것만 같아서 뒤를 돌아보기도 하고, 어디선가 걸을 때마다 '틱틱'거리던 발톱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장난감을 물고 오는 흰둥이를 떠올리기도 한다.


브런치에 흰둥이 이야기를 쓰는 게 한때는 기쁨이었지만, 흰둥이가 노견이 되면서 우리의 일상은 이전처럼 역동적이지 못했다. 내 욕심으로 이런저런 사진을 찍는 것이 노견인 흰둥이에게 부담이 될까 봐, 보여주기 위한 기록보다는 그저 눈으로 함께하는 순간을 담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브런치에 글을 멈추게 되었고, 우리는 몇 년을 더 평온하게 보냈다.


침대 위에서 졸고 있는 흰둥이를 바라보며 나 역시 평온한 시간을 보냈던 일상들은 내 인생에 가장 포근한 시간들이었다.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지나고 난 후에야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매년 상하반기 건강검진을 받았고, 약을 복용한 기간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간 수치를 낮추는 보조약이었다. 흰둥이는 나이에 비해 건강했다.


눈에 띄는 이상 증상이 나타난 것은 2023년 2월부터였다. 원인을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검사는 다 받았지만 고칠 수가 없었다. 콧속에 생긴 양성 종양이 비강을 막아 호흡에 어려움을 겪는 희귀병이었다. 병을 낫게 해주고 싶었지만, 진행을 늦추며 관리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콧속 양성 종양을 제외하면 전반적인 건강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아침저녁 산책을 하고, 밥도 잘 먹고 여전히 간식과 장난감을 좋아하는 느리지만 평소와 다름없는 날들을 보냈다. 하지만 열아홉 살의 흰둥이에게는 결코 가벼운 상황은 아니었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고, 좋아하던 음식을 거부할 만큼 그해 여름 8월 한 달을 흰둥이는 많이 아팠다.

흰둥이는 내 곁에 머물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을까.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몸은 아프지만 이겨내고 싶다는 마음, 조금 더 함께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그 맑은 눈 속에 담겨 있었다. 매일 한 줌씩 작아지는 몸으로 힘겹게 버텨주던 흰둥이를 보면서 정말 낫게 해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 눈빛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무력했다. 차라리 내가 아프면 어디가 아프다 말이라도 할 수 있는데. 사랑하는 마음으로는 아픔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현실이 너무 잔인했다.


그해 여름은 폭염만큼이나 우리를 극한으로 지치게 만들었다.


강제급식을 하고, 물도 주사기로 먹이며 응급실을 오갔다. 집에서는 피하 수액을 맞기 시작했다. 그래도 검사 결과가 나쁘지 않아 다가올 선선한 가을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흰둥이는 2023년 8월 마지막 날, 내 곁을 떠났다.


흰둥이도 없는데 지나간 추억들을 다시 글로 남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왜 기억 속에 고이 간직된 흰둥이를 이제 와서 굳이 꺼내어 이야기하고 싶은지, 계속 나에게 묻지만 아직 그 답을 알지 못하겠다. 다만 하나 분명한 건, 흰둥이의 육체는 이제 곁에 없지만 그 영혼은 이야기로 남아 내 곁에 머물고 있다는 믿음이다. 이걸 미련이라 부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쩌면 이것이 내 방식의 추모이고, 그 아이를 잊지 않으려는 가장 조용하고도 단단한 애도인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묻는다.

“너와 함께했던 시간은 정말 현실이었을까?” 그리고 그 물음 끝에 도달하는 답은 언제나 같다. 꿈같이 아름다웠던 그 순간들이야말로, 가장 확실하고 생생한 나의 현실이었음을. 영원히 잊히지 않을 진실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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