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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돌아왔다

가장 싫어하는 계절에 다시 쓰는 브런치

by 모레


장마철 비는 하루 종일 내린다.

퍼붓다가 멈추다가 다시 와르르 흘러내린다. 그 흐름에 몸은 무겁고, 마음은 자꾸 가라앉는다. 습기가 벽을 타고 스며들듯, 무기력도 서서히 번져간다.


여름이 또 돌아왔다.

매년 비슷한 장면인데 익숙해지지 않는다. 여름의 잠은 얕고, 숨은 답답하며, 피로는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숨이 턱 막히는 폭염도 힘들지만, 햇빛도 없이 계속되는 흐림과 말없이 내려앉는 회색의 시간들 속에서 점점 축축해지는 마음은 어떤 말로도 쉽게 마르지 않는다. 여름의 장마엔 마음도 습기가 쌓여간다.

여름이 싫다기보다는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계절의 성격이 버겁다.


겨울은 추워도 서로의 체온을 당기는 움직임이 있다면, 여름은 그렇지 않다. 가까워지고 싶어도 몸이 먼저 거리를 둔다. 마음이 머물기를 원해도 열기와 피로의 끈적함이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함께 있어도 혼자 같은 계절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내리는 빗줄기 속에서도 문득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젖은 흙냄새가 올라오면 마음 어딘가 닿을 듯, 오랜 기억들이 와르르 쏟아진다. 지금은 없지만 비가 와도 좋았던 기억들.


비가 조금 약해졌을 때 흰둥이와 함께 걸었던 산책길.

젖은 풀냄새가 가득한 축축한 골목을 지나는 그 작은 발자국.

비가 잠잠한 틈에 재잘대는 새들처럼, 하루의 리듬이 가벼워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런 여름의 시작에 나는 다시 브런치를 꺼내 들었다. '다시 쓰기 시작했다'기보다는 나 자신과 이 계절을 견디며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다시 말 걸기 시작했다'라는 표현이 맞겠다.


지금 글을 쓰는 일은, 여름의 소음을 덜어내는 일 같다. 쏟아지는 빛과 비 사이로 문장을 끼워 넣고, 묵직한 숨을 한 줄 한 줄 끄적인다. 그러면 덜 힘들고, 조금 가벼워질지도 모른다는 위로를 기대하면서.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감정들에 다듬어지지 않은 문장들이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그 모든 것이 여름을 건너는 방식이다. 가장 싫어하는 계절에 다시 쓰는 브런치는 조금은 용기고, 어쩌면 새로운 계절로 가기 위한 준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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