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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지나지 않았다

by 모레

한동안 집을 나설 때면 불을 켜뒀다.

스무 해 가까이, 집엔 늘 흰둥이가 있었다.

돌아오면 반겨줄 얼굴이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삶의 중심 같은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그 중심이 사라졌고 집으로 향하는 걸음은 방향을 잃은 나침반처럼 흔들렸다.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는 손이 한참을 망설였다.

문을 열면 언제나처럼 흰둥이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데 그럴 리 없다는 걸 알기에 한 박자 늦게 문을 열였다.

그래도 습관처럼 아래를 내려다본다.

한동안 중문 너머 집안을 보는 일이 낯설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달려 나오는 흰둥이는 없었다. 익숙했던 마중이 사라진 자리엔 적막한 현관만이 나를 맞이했다.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면, 한 박자 늦게 마음이 따라왔다.


하루에 두세 번 나가던 산책 시간이면 습관처럼 시계를 보게 된다. 그 시간이면 흰둥이는 산책을 재촉했다. 어서 나가자며 꼬리를 흔들며 방 안을 휘젓던 그 시간이, 이젠 고요하게 비어 있다.

혼자 나서는 산책길엔 목적지도, 재미도 없었다. 흰둥이 없는 산책은 그저 ‘걷기’일 뿐이었다.

어느 날엔 현관 선반에 올려둔 하네스를 들고 있기도 했다. 이제는 필요 없는데 손이 먼저 움직였다.

몸은 기억하고 마음은 아직 따라가지 못하는 그런 날들이었다.


커피를 내리는 순간에도 잠시 멈춰 크게 숨을 고르는 날들이 있었다.

티타임은 언제나 흰둥이의 간식 시간이기도 했으니까. 이제는 내 몫만 준비하면 되는데 그조차 어색해서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습관을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래서 차라리 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던 것 같다.


치킨은 1년이 넘도록 먹을 수 없었다.

산책길에서 공동현관을 지나가다 치킨 냄새를 맡으면 흰둥이는 ‘꼬꼬아저씨’가 오는 줄 알았다. 집에 돌아가면 치킨이 있으리라 신나 하던 흰둥이는 해맑게 웃으며 발걸음을 재촉하곤 했다. 기대에 못 미치는 날도 있었지만 치킨의 계절 여름엔 달랐다. 집에 돌아오면 정말 치킨이 있었고 그건 우리만의 여름 풍경이었다. 치킨은 단지 음식이 아니었다. 흰둥이 꼬리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온몸의 텐션이 올라가는, 한여름의 소중한 이벤트였다.


밤의 시간은 유독 힘들었다.

흰둥이는 자기 침대 대신 내 침대 위에 올라와, 꼭 베개에 머리를 얹고 잠들었다. 쌕쌕거리는 숨소리, 자다가 쩝쩝대는 소리, 낮게 흘러나오는 코 고는 소리까지, 그 모든 소리는 나의 자장가였다.

그 자장가는 8월의 마지막 밤 고요히 사라졌다. 방 안은 조용했지만 마음은 더없이 소란스러웠다.


그날 덮고 있던 침대 커버와 이불은 여름용 패브릭이었다.

시간은 흘러 계절이 두 번 바뀌었지만, 나는 이불을 바꾸지 못했다. 그건 단지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침구가 아니라, 마지막으로 함께 잠든 날의 감촉이었다. 피부에 닿는 서늘함 위에 담요 한 장을 깔고 또 패드를 얹었다. 마치 아물지 않은 상처 위에 붕대를 감듯 슬픔 위로 그리움만 쌓여갔다.


거실에 흰둥이 집은 여전히 그대로다. 치우지 못한 게 아니라, 치울 수 없었다.

그 안에 놓인 방석에 쌓이는 먼지를 보며 계절을 센다. 아무도 들어가지 않은 강아지집, 그 곁을 지나는 햇살이 어느새 나보다 먼저 계절을 건너가고 있었다.


해마다 여름이면 우리는 바다에 갔다.

2023년 여름엔 흰둥이가 많이 아파서, 2024년 여름엔 흰둥이가 없어서 가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또 여름이 왔다.

매년 여름을 겪고도 습기와 폭염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는 흰둥이가 아팠고 떠났던 마지막 여름에도 여전히 적응하지 못한 채 머물러 있다.

매일 조금씩 계절은 바뀌지만, 나는 아직도 여름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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