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금세 피고 지는 것들의 아름다움은 잠깐 스쳐 가는 것처럼 느껴졌고 계절이 바뀌면 그 모든 것이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한껏 부풀었다 꺼지는 존재보다 언제나 그 자리에 푸르게 서 있는 나무가 좋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의 싱그러운 유록색이 좋았다. 계절의 절정은 나무에게서 왔고 그것은 단단하고 오래갔다.
그러던 어느 날, 흰둥이와 산책길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눈에 들어왔다. 꽃잎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듯한 오후에 흰둥이는 나무 아래 멈춰 서서 흙냄새를 맡고 있었다. 나는 얼른 카메라를 들었고 흰둥이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아주 짧은 숨결처럼 흐드러진 꽃잎 아래에서 마주한 눈빛과 미소가 찰나의 사진 속에 머물렀다. 그 순간이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았다.
그날 이후로 흰둥이와 산책은 꽃을 찾는 일이기도 했다. 내가 꽃을 볼 때 흰둥이는 꽃보다는 길가의 흙냄새나 사람의 시선이 닿지 않은 작고 낮은 곳의 풀을 더 좋아했다. 꽃을 배경으로 활짝 웃는 흰둥이를 담고 싶었지만 흙냄새가 좋아서 고개를 숙이고 킁킁대던 모습은 언제나 b컷이 되었다.
그래도 코끝에 흙을 묻히고 돌아보던 눈빛은 너무나 귀여웠다. 나는 그런 흰둥이를 바라보다 문득 꽃 아래 그 순간이 얼마나 예쁜지 깨달았다. 그렇게 갤러리에는 꽃과 흰둥이가 함께 있는 사진이 늘어갔다.
같은 장면을 각자의 방식으로 바라보는 것 또한 함께 있는 동안 충분히 행복한 순간이었다. 산책을 하지 않았다면 그 길에 피었다 지는 꽃을 보지 못했을 거다. 어쩌면 피어났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봄에는 샛노란 개나리와 하얀 벚꽃나무 아래에 서 있었고, 여름엔 담장 너머 핀 장미 그늘을 따라 걸었다. 가을이 오면 코스모스가 바람에 흔들리는 길에서 가을을 맞았고 겨울이 되기 전엔 국화가 피어 있는 골목을 찾아 마지막 길 위의 꽃을 배웅했다.
나는 꽃이 좋아졌다. 흰둥이와 함께 걷는 방향으로 꽃들이 피고 졌다. 그 순간에만 머물다 사라지는 것들과 조금만 늦어도 놓쳐버리는 것들이 그래서 더 소중했다. 흰둥이와 걸으며 피고 지는 것에도 애정하는 마음을 생겼다.
계절마다 바뀌는 꽃들에 익숙해질 무렵 집에도 꽃을 꽂아놨다. 거실 한편에 꽃을 놓고, 물을 갈고, 시든 잎을 다듬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다행히 흰둥이는 꽃을 물거나 먹지 않았다. 집에서도 거리에서도, 꽃과 흰둥이는 나란히 자리를 지켰고 나는 어김없이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의 흰둥이는 언제나 꽃보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꽃은 점점 우리의 일상 속으로 들어와 향기를 더했다
봄꽃 한가운데서 흰둥이가 나를 바라보던 순간이 담긴 사진이 있다. 만개한 꽃이 흰둥이를 위해 피어난 것처럼 주변을 감싸고 있는 사진은 늘 계절의 리듬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은 그 웃음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시간이지만 꽃이 피면 여전히 설렌다. 그 설렘 뒤에는 어김없이 허전함이 따라온다. 아름다운 것을 혼자 보고 있다는 허전함, 함께 봤던 기억 때문에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아이러니.
이젠 혼자 그 꽃길을 걷는다. 발걸음은 예전보다 빨라졌지만 예쁜 꽃을 발견하고 카메라를 꺼내는 손은 느려졌다. 프레임 안에 흰둥이 자리가 텅 비어 있어서다. 흰둥이가 있었다면 어느 자리에 앉았을지 상상하며 찍지만 소리가 없는 사진은 너무나 고요하다. 꽃잎 흔들리는 소리 너머로 흰둥이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는데, 이젠 바람 소리마저 고요하게 잠겨버렸다. 발소리도, 헥헥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사진은 그래서 가끔 쓸쓸하다.
흰둥이가 떠난 뒤에도 나는 여전히 꽃을 산다. 누군가의 부재를 가장 다정하게 채우는 방식으로 흰둥이의 자리에 꽃을 꽂아두고, 매일 물을 갈고, 시든 잎을 정리한다. 흰둥이의 사진과 장난감, 그리고 계절마다 다른 꽃 한 송이가 공간을 채운다. 함께 봤던 꽃들처럼, 지금도 흰둥이에게 꽃을 보여주고 싶다. 흰둥이에게 말을 걸듯 꽃을 정리하고, 그날의 기억들을 천천히 꺼내 본다. 여전히 꽃은 금세 시들지만 좋아하는 마음은 오래 남는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그때 흰둥이도 좋았을까? 햇살이 따뜻하다고 느꼈을까? 내가 느꼈던 설렘을 흰둥이도 알아차렸을까?
어쩌면 꽃이 피는 계절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것을 나보다 먼저 흰둥이는 알았는지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흰둥이는 꽃들 사이에 있고, 지금 그 기억 속을 걷는다고.
흰둥이를 담으려고 꽃을 찍었듯 추억을 회상하며 우리의 공간에 꽃을 꽂는다.
꽃은 계절의 얼굴이고 나에게 꽃은 언제나 흰둥이다. 계절이 지나도 그 이름은 여전히 피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