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르 Jul 19. 2023

디지털 민주주의를 위한 소수 의견

왜곡과 가짜뉴스를 넘어 새로운 디지털 민주주의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2054년 완벽한 치안유지시스템 프리크라임(Pre Crime)으로부터 보호받는 워싱턴DC를 보여준다. 프리크라임은 예지적 능력으로 범죄를 예견하고, 사건 발생전 용의자들을 미리 체포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 시스템의 치명적인 오류는 아직 살인을 저지르지 않은 사람을 살인죄로 체포하는 넌센스다. 영화는 인간이 만든 시스템에는 항상 딜레마가 존재하기 때문에 완전함을 추구하더라도 소수의 의견(마이너리티 리포트)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어떻게 소수 의견을 놓치지 않으면서 참여적인 집단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을까? 다행히 최근의 디지털 기술은 불완전한 인간이 집단지성을 만들며 참여적 민주주의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2002)

오늘날 생성형 인공지능을 포함한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인해 인류는 위기의식과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모든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위협에서부터, 특이점을 통과한 인공지능이 곧 인류를 지배할 것이라는 괴담까지 널리 퍼져가고 있다. 하지만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인간보다 더 잘 공감해주는 AI가 등장하더라도 ‘의미를 생성하고 교환하며 창의성을 만드는 인간 정체성’을 그대로 복제할 수는 없다. 지금이야말로 인류는 서로 협업하여 의미를 창출하고 공유하는 훈련을 통해 인류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데 절실한 노력이 필요하다.


1990년대 인터넷과 함께 등장한 디지털 민주주의 개념은(전자민주주의로 불렸다) 다수결투표와 대의제도에 묶여 있는 현실 민주주의 한계를 극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사람들은 디지털 기술은 대의 민주주의를 획기적으로 혁신하며 대규모의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플랫폼 구현해 줄 것이라는 희망을 노래하였다.
하지만, 2010년 전후에 등장한 사회관계망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에서 넘쳐나는 현실왜곡과 가짜뉴스로 이러한 희망은 잠시 주춤하였다. 책임 없는 참여와 숙의과정 부재, 중재자 없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현상이 빈번해지면서 디지털 민주주의 무용론까지 등장하였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인 해결책만으로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없으며 성숙한 시민의식과 협업하는 인간성 회복이 선행되어야 함을 교훈한다. 과거 루소(Rousseau)가 말한 것처럼 ‘선거일만 자유로운 시민이 아닌 항상 자유로운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통찰력 있는 시민의식을 양성하고 행동을 연대하며, 다양한 공론의 스펙트럼을 경험하고 참여할 수 있는 직접적인 정치적 도구가 있어야 한다. 디지털 기술의 진보는 이러한 도구적 쓰임새에 조응한다.


디지털 기술은 단순한 투표시스템에 의해 유지되는 대의 민주주의를 획기적으로 혁신하며 대규모의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플랫폼 구현할 수 있다. 오늘날 디지털 기술은 각 도시에 흩어져 있는 시민들이 지구적 어젠다에 함께 참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시빅해커(Civic Hacker)로 불리는 활동가들은 디지털 도구를 활용해 신속하고 창의적으로 정부 시스템을 개선하기도 한다.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꿈꾸는 스마트시티 도시들은 아래와 같은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기후중립, 회복력, 지속가능, 15분 도시 같은 지구적 의제에 참여하기.

코로나19라는 팬데믹 현상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생태 지역(bio region)의 경계가 국경안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한국의 미세먼지는 이웃 나라의 과격한 산업 활동의 결과이며, 특정 지역이 겪는 열섬현상이 반대편 지구에서 벌어지는 지하수 남용과 무분별한 탄소배출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시가 국경(sovereignty) 혹은 행정경계 안에서 자기 도시의 사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매우 근시안적이며 종내 도시를 고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오늘날 인류는 지구라는 공간에서 인간, 자연, 동물이 서로 공생한다는 지구적 세계관을 가지고 지구시민으로 살아야 한다.


하지만 시민이 선뜻 행동에 동참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행동이 지구적인 변화를 만든다는 느낌이 없고, 지구적 의제의 해결이 경제적 가치로 바로 손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도시의 리더들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산업경제 발전을 중심으로 한 성장계획이나, 하드웨어 인프라 건설을 통한 단기적인 성과에 집중한다. 행정 지도자에게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기후문제야 말로 새로운 시장기회다. 탄소중립기술이나 생태계 비파괴적 에너지포집 기술개발은 시장성 높은 기술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16년 169억달러에 불과하던 기후테크 산업 규모가 2032년에 1480억달러(한화 약 192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 세계 기후테크 부문 벤처캐피털의 투자 흐름을 추적하는 미국 클라이밋테크 벤처케피털은 올해 상반기 조달한 자금은 작년 상반기에 비해 40% 감소했지만 거래 건수 자체는 오히려 8%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새로운 투자를 위한 투자 속도를 조절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지금 세계를 주도하는 도시를 보자. UN이 요청하는 탄소중립도시 목표연도(2050)를 15년 앞당긴 헬싱키, 시민이 직접 기후변화 대응에 나서 ‘시민 기후의회’를 창설한 바르셀로나, 2035년부터 모든 신규 경차에 대해 탄소배출 제로를 의무화하고 가스레인지 사용 금지법을 통과시킨 뉴욕, 직업·주거·문화에 높은 접근성을 만들기 위해 도시 자체를 재설계하고 있는 15분 도시 파리 등 경쟁력 있는 크고 작은 도시들이 글로벌 어젠다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늦은 출발을 하고 있다.

탄소중립 2035년을 목표로 움직이는 헬싱키

현시점에서 인류는 성찰적 인간이 되지 않으면 탄소중립, 창의적 협력, 회복력, 지속가능성 확보 등과 같은 작금의 글로벌 위기를 넘어설 수 없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삶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불확실성의 끝에 살고 있다.  조만간 기후위기 때문에 우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살할 것이라는 연구보고서가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에 이미 대기오염과 기후변화를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 요소로 꼽았다.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스탠리(Morganstanley)가 투자자들에게 보낸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으며 실제 출산율 저하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경고한다.(기후우울증에 걸린 청년들)  한가하게 산업경제의 육성으로만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한담할 시간이 없다.


공공자산에 대한 새로운 사회계약

지금까지 도로, 도시공원, 도시숲, 공공주차장 등 공공재는 장기적인 수선이나 유지보수가 필요한 비용 요소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블록체인과 웹3.0 기반의 스마트계약(smart contract) 기술을 적용함으로써 공공재는 비용보다 편익의 주체로 역할한다.


예를 들어 빈집을 도시가 매입하여 주차장으로 개발하면 하드웨어 인프라에 투입하는 비용이다. 이는 인근 주택과 상가에 ‘더하기’ 개념의 가치만 상승시킨다. 하지만 도시가 빈집을 매입한 후 공연, 교육, 텃밭, 도시에 한달살기, 공유주방 등 활동 공간으로 활용한다면 빈집의 가치는 더하기에서 ‘곱하기’ 개념이 된다. 한 발 더 나아가 이러한 빈집 활용을 디지털로 예약하고  빈집에서 일어나는 활동성 단위를 평가지표(KPI)로 설정한 후 이해관계자들과 스마트계약을 맺으면 도시가치는 지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 평가지표의 예로 빈집 텃밭에서 키운 상추를 먹은 사람의 숫자나, 빈집을 공연장으로 활용한 횟수 등이 될 수 있다. 지표를 기반으로 미래 가치를 수치적으로 측정하는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30년 혹은 50년 동안 축적되는 미래 가치의 총량을 계산하고 나면, 이 가치를 기준으로 투자기관, 운영기관, 시민활동가, 도시정부는 스마트계약을 추진할 수 있다. 스마트 계약은 특정 지표의 조건이 충족될 때 예정된 자산이 계약 주체들 사이를 디지털 단위로 오고 간다.

빈집을 활용한  도시 가치의 지수적 증가 (출처: Dark Matter Laboratories, 2023)

일대일이 아니라 참여자간에 연쇄적으로 체결되는 스마트 계약의 특징으로 계약 주체의 활동이 한 단계 건널 때마다 시스템 전체의 편익을 ‘지수적’ 으로 증가시킨다. 스마트계약을 통해 시민들은 자신의 참여 활동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도 있다. 도시 재개발, 도시숲 조성, 도시 보안 등 도시내 광범위한 영역에 스마트 계약을 적용할 수 있다. 대구광역시가 대구테크노파크, Dark Matter Labs와 함께 준비하여 도전한 2019년 블룸버그 메이어스 챌린지의 실험 프로젝트가 바로 이러한 지수적 도시가치 상승을 위한 빈집활용 허가시스템 계획이었다. 대구는 이 챌린지에서 세계 50대 도시에 선정되었다.


영국 글래스고의 Trees AI가 이러한 분야의 대표적이 사례다. TreesAI는 도시 숲 관리와 투자에 필요한 데이터 기반으로 하는 오픈 소스 플랫폼이다. 글래스고는 도시의 향후 닥칠 환경 위기상황을 GIS를 중심으로 맵핑한 후, 이러한 위기를 해결하는 솔루션으로 자연 자산의 규모를 늘리기로 하고, 그 규모를 시뮬레이션하여 수치화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연 자산 확보를 비용으로 보지 않고, 향후 획득할 탄소배출권, 미래 위험에 대한 선투자 등으로 관점을 전환한 점이다. 도시정부는 도시 숲조성에 필요한 자금조달에 시민·개인·기업·정부가 참여할 수 있도록 금융 제도를 새롭게 개발하였다. 현재 TreesAI는 글래스고 외에도 케냐 나이로비, 캐나다 몬트리올,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도입을 논의 중이며, 시뮬레이션 알고리즘은 아마존이 지분을 투자하고 있다.  

글래스고 TreesAI 플랫폼 (출처. Dark Matter Laboratories)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대규모 시민참여 플랫폼 구현

합리적이고 숙의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민들이 도시 의제에 공감하고 참여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디지털 기술은 이러한 대규모 시민참여와 의제논의의 투명성과 즉시성을 제공할 수 있다.


독일 북부 함부르크(Hamburg)는 인구 약 185만 명이 거주하고 있는 독일 제2의 도시이자 한자동맹으로 잘 알려진 항구도시다. 함부르크 시의회는 2005년 당시 구시가지였던 하펜시티(HafenCity) 지역의 재개발계획을 공표하고 하펜시티 대학교 설립하였다. 하펜시티 대학은 자연 친화적인 건축과 도시계획을 추진하였으며, 특히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대규모 시민이 참여하는 다양한 리빙랩 프로젝트를 통해 도시 문제를 탐색적으로 해결해 왔다. 하펜시티대학에 설립된 시티사이언스랩은 이러한 시민참여와 도시 디지털화라는 도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디지털 참여시스템(DIPAS: Digitales Partizipations system)을 구축하였다. DIPAS는 지도 기반의 공공데이터 플랫폼으로 시민들의 의견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시뮬레이션 분석 도구이다. 함부르크는 도시 공간, 교통, 환경 및 녹지계획,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 시리아 난민의 거주위치 문제 등에 DIPAS를 활용하여 시민의 의견을 수집하고 분석하며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린다. 

디지털 참여시스템(DIPAS: Digitales Partizipations system) 소개

대만에는 열린 데이터와 열린 정부의 정신을 가진 수천 명의 커뮤니티 플랫폼인 <거브 제로(gOv)>가 있다. g0v는 시민 기술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데이터 개방과 열린 디지털정부를 지향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있다 거브제로는 그동안 분산된 시민 기술을 활용하여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는 오픈소스 기반의 헤커톤대회를 사십여 차례 추진하였으며,  29개의 시민기술 프로토타입 프로젝트 추진하였다.  


디지털 민주주의 약점 극복하기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시민참여 플랫폼을 구현할 때 디지털 기술기반의 어두운 측면을 분명하게 고려해야 한다. 종종 흑백논리의 극단적인 대립상황으로 치닫는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그레이존을 형성하여 가교역할을 하는 디지털기술의 시도도 필요하다. 가령 이더리움 기반의 제곱투표(Quadratic Voting)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극복하고 반대된 의견을 충분히 학습 이해하는 토대를 제공해 줄 수 있다. 처음 디지털 전환기술이 등장할 때만 하더라도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시민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혁신적인 도구로 환영받았지만, 오히려 디지털 기술이 합리적 의사소통과 공적 견해 형성을 가로막거나 왜곡하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이는 디지털이 가지는 특성, 즉시성과 휘발성, 중첩된 연결성이 만드는 상전이(phase transition) 현상 등으로 인해 승자독식의 플랫폼 구조에 기인한다. 이는 소위 ‘포스트 민주주의’라 불리는 포퓰리즘을 증폭하는 현상으로도 나타난다. 디지털 기술이 가지는 이러한 양가적 특성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도시는 참여형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상적인 민주주의는 개개인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며 소수자가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 현재의 디지털 환경은 자기 의견을 발산하는 다양한 통로를 제공하지만 역설적으로 공동체가 의견을 합의하거나 행동을 이끌어 내는데 취약하다. 보다 참여적이고 민주적인 시민 활동을 촉진하는 디지털 기술의 해결책은 시대적 요청이다. <完>


추가 1. 지구적 의제동참하지 인간에 대한 뇌과학적 이해  

성장과 번성을 목적으로 인코딩(encoding)된 인간 뇌는 집단의 생존과 직결된 지구적 어젠다에 대한 체험적 지식이 없다.  탄소, 환경, 기후 등 지구적 문제에 관하여 각각의 브레인이 구성한 네러티브와 가설추정(abduction)은 폭이 넓은 스펙트럼을 그린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현재의 상태에서 변화량을 조금씩 더듬으면서 위험에 접근하는 수동적인 전략을 선택한다. 자유에너지(free energy)를 최소화하려는 느리고 보수적인 개인의 행동선택은 지구 생명체의 현실적인 빠른 변화 속도와 모순이 발생하며 충돌한다. 개인에게 있어 지구를 구한다는 의제는 매우 추상적이고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추가 2. 탐색적 학습과정이 필요한 디지털 민주주의

 최근 많은 도시들이 도시경제 활성화를 위해 인프라와 요소투입 방식 포기하고, 탐색적(Discovery) 방식으로 돌아서고 있다. 탐색적 방식은 도시에서 시민과 혁신가의 다양한 실험과 피드백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도시 지능(intelligence)을 늘려가는 방식을 말한다. 그래서 많은 도시들이 리빙랩이라는 탐색적 도구를 사용한다. 리빙랩이야 말로 가치를 탐색적으로 발견해가는 과정이다. 하드웨어 인프라는 재생산이 안 되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을 올리는 것 말고 도시자산(asset)을 축적할 길이 없다. 탐색적 과정은 공공 자산의 부를 늘리는 방법인 동시에 시민의 민주적 역량(capacity)을 구축하는 유일한 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감도시(共感都市)로 가는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