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서너 살, 혹은 그 이상으로 어린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스스로에게 흠칫 놀랄 때가 있다. 어느 순간부터 나만 말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뭐 그리 아는 게 많고, 할 말이 많길래 홀린 듯 입을 놀리는 건지 나조차도 당황스럽다. '꼰대'처럼 행동한 날은 그 여운이 꽤 가시질 않는다. 한참을 곱씹고 또 곱씹는다. 내가 왜 그랬지 하며. 며칠 전만 해도 그랬다. 나는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고, 앞에 앉은 두 친구는 이렇다 저렇다 하는 반응도 하지 못한 채 나를 그저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침묵의 눈동자. 다행히 그 눈동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차, 나 지금 왜 이러고 있지. 이렇게 꼰대가 되어가는 걸까.
나이를 먹으면 꼰대가 될 수밖에 없는 걸까. 나도 모르는 새에 꼰대가 되어 가는 것은 슬픈 일이다. 육체의 나이와 상관없이 마음이 늙고 추해지는 것을 그 누가 반길까. 모두들 자신은 꼰대가 되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검색창에 '꼰대'라는 두 글자를 입력하면 '꼰대 테스트'라느니,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방법'이라느니, 꼰대를 방지하려는 대책이 줄지어 등장하지만, 이 사회의 '꼰대 절대량'은 여전한 듯 보인다. 예전에는 남 일 같아 보여, 손가락질하기 바빴던 꼰대들. 그런데 이제는 통 자신이 없다.
그래서 요즘은 친구들과 모일 때마다 서로의 꼰대질을 고발하기에 바쁘다. "아니, 얘가 전에 어린 친구들한테 말이야!" 서로의 꼰대질을 여러 사람 앞에서 무자비하게 까발리고는 신나게 비웃어준다. 이런 사람이 늙으면 진짜 무서운 꼰대가 되는 거라며 저주도 퍼붓는다. 그리고는 함께 다짐한다. "내가 꼰대질 하는 거 보면, 제발 나 좀 때려줘." "그냥 입을 막아버려." "그래 우리 서로 꼰대질 하면 정신 차리라고 서로 해줘야 해. 뒤에서 욕 안 먹게."
꼰대가 되고 싶지 않은 큰 이유 중 하나는, 사회생활 경험 곳곳에 꼰대들이 남긴 악몽 같은 기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꼰대의 역사' 중에서도 가장 최악으로 치는 건, '꼰대인데도 꼰대인 줄 모르는 꼰대'다. 의외로, 자기가 권위적인 부분이 있다는 걸 아는 어른들은 대하기에 오히려 편하다. 나도 그의 꼰대스러움을 적당히 예측하고 처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자신의 말이 불편할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말을 아끼는 지혜가 있다. 꼰대가 아닌 척, 탈권위의 코스프레로 많은 사람을 현혹한 후 자신의 '꼰대력'을 무한대로 펼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답이 없다. 자고로 자신의 병을 알아야 치유할 수 있는 법. 자신이 꼰대인 줄 모르니 말과 행동에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다. 그뿐이랴. 꼰대가 아닌 줄 마음을 놓았다가, 꼰대에게 된통 당한 사람의 마음은 곱절로 어렵다. 어차피 꼰대를 만나야 한다면, 여러모로 보아도 차라리 앞/뒤가 같은 꼰대가 낫다.
"나이 들어 주름이 안 생기려면 지금부터 관리해야 한대."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을 중학교 시절, 친구가 '아이크림'을 바르라며 그랬다. 그때야 주름이 먼 이야기였을 테니 유난이라며 콧방귀 한 번 뀌고 적당히 흘렸던 이야기였는데, 요즘 들어 그 이야기가 자꾸 귀에 맴돈다. 마음의 주름이 신경 쓰일 나이라 그런 모양이다. 얼굴 주름이야 세월의 훈장인 양 자연스럽게 스미길 바랄 수 있다지만, 마음에 주름이 생기는 건 왠지 더 서글프다. 주름진 마음으로는 다양한 사람들의 손을 잡을 수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도 없을 것 같다. 사랑스러운 어른들은 언제나 '마음은 청춘'이던 분들이 아니던가. 마음이 늘 청춘일 수 있도록, 마음에 쪼글쪼글 주름이 잡히기 전에 잘 관리해야지. 중학교 때부터 '주름'을 염려했던 친구는 아마 지금 나보다 더 피부가 좋겠지. 그 친구의 염려와 경계가 그녀를 주름으로부터 지켰을 테니까. 얼굴도, 마음도 주름이 질 수 있다는 걸 깨닫는 것, 항상 주름을 경계하며 관리하는 것이 가장 좋은 관리 중 하나가 아닐까. 오늘 하루도 스스로에게 '꼰대스러운 순간'은 없었는지 찬찬히 되물어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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