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엄마의 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린 Oct 30. 2020

몰라서 시작할 수 있었으려나, 엄마



어쩌다 보니, 엄마


엄마가 꿈이었던 적은 없었다. 장래희망에 현모양처를 적어 내는 친구들이 종종 보이긴 했지만, 내 적성에 그리 맞는 일이 아니었다. 되려는 마음도 없었거니와 현모니 양처니, 그런 대단한 일을 할 만한 능력도 없었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엄마가 되지 않겠다 선언하진 않았다. 자연스레 다다르게 되는 어떤 지점이라 생각은 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랬으리라 희미하게 더듬어 볼 뿐 자세한 기억은 나질 않는다. 그 정도로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냥 모두들 엄마가 되겠거니 하고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 같았고, 그 기대에 부응하듯 나도 언젠가는 결혼도, 출산도 하겠거니 싶었다.


결혼을 한 뒤에는 엄마에 대한 고민이 조금 더 깊어졌다. 결혼하기도 전부터 임신과 출산 계획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았던지 아이에 대한 생각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내 표정과 입장은 고려치 않는 명료한 질문에 비해 내 대답은 늘 시원찮았다. 어떤 날은 둘셋은 나아 길러야지 싶다가도, 어떤 날은 한 명을 계획하는 것도 버거웠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고민만 덜어내면 인생이 한결 가벼워질 것도 같은데 어느 쪽 하나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다.


가임기 기혼 여성에게는 늘 두 가지의 선택지가 손에 있다. 선택지, 주변 많은 이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 정상 가족에 대한 고정관념이 주는 안정감, 나와 그를 닮은 작은 사람을 만나는 기쁨이 담긴 선택지 하나. 또 다른 선택지, 사랑하는 사람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자유, 계속 이어갈 수 있는 나의 일, 새로운 존재가 가져올 수많은 불확실함에 대한 회피가 내포된 그것. 낳지 않겠다 선을 긋자니 응당 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있는 기분이었다. 낳겠다고 마음을 먹자니 예측할 수 없는 천재지변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하고 어영부영하는 사이 임신을 했다. 주변의 많은 이들은 신의 축복이라 했다. 입덧과 요통, 골반통, 임신 주수에 따라 불편해지는 몸을 겪으며 이것도 신의 축복일까 했다. 하지만 '엄마'라는 타이틀은 그런 불경한 생각까지 지웠다.



착각’이라서 다행이었나


지금의 아이를 낳기 전,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을 본 일이 또 있었다. 신혼 초, 생리가 없어 임신테스트기를 했더니 양성으로 반응했다. 기다리던 일이 아니었다. 기쁨보다는 당혹감이 앞섰다. ‘임신테스트기 오류’ 따위의 단어를 검색창에 입력했다. 아침마다 임신테스트기로 내가 일어난 일을 확인했다. 기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죄책감과 생활이 갑자기 바뀔 것이라는 불안감이 뒤범벅된 날이 며칠이나 지나갔다. 팬티에 피가 비쳤고, 우리가 착각했나 봐 하며 남편과 우스개로 ‘착각이’라는 태명도 지었다. 피가 비쳤지만 임신테스트기는 여전히 두 줄이었다. 착각이가 착각은 아니었다. 결국 찾아간 병원에서는 화학적 유산이라는 말을 들었다. 기쁘지도, 홀가분하지도 않았다. 내가 무엇인가를 잘못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임신테스트기 두 줄에 기분도, 인생도 휘청거렸다.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 엄마의 일


임신테스트기 두 줄에도 여성의 삶은 휘청대는데,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해 사회는 너무 안일했고 세상은 너무 해맑기만 했다. 한 존재가 세상에 나면서 생기는 무한한 노동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임신부터 출산과 육아에 이르기까지 '엄마'의 희생과 헌신이라는 말로 그 수고를 치하하는 것 같았으나 고작 말 뿐이었다. 고작 말 한마디. 말로는 그동안 들인 나의 시간과 노동과 스트레스를 보상해 줄 수 없었다. 다만 말은 나의 마음에 무겁게 내려앉아 나의 죄책감을 자극했다. 엄마인데 나는 아이를 마냥 기뻐할 수 없는지, 이 정도 노동도 달갑게 여지기 못하는지 스스로를 못마땅해하는 시간이 늘어만 갔다. 


다른 한 편으로는 이 모든 일을 여성이 알아서 하게끔 만들어 놓은 사회에 화가 났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사회는 나에게 꿈을 꾸고 재능을 펼치라고 했다. 노력하면 그럴싸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라고도. 그러나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가 여성에게 어떤 역할을 요구하는 것인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육아에 포함된 돌봄 노동이 무엇인지, 어떤 강도의 일인지도 몰랐다. 꿈을 펼쳐야 하는 한창의 때와 아이를 낳고 기르기에 적절하다 말하는 시기가 겹쳐 있다는 것도, 시작은 할 수 있지만 끝낼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도 아이를 낳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기록하는 나의 돌봄 노동


아기를 낳고 등 떠밀리듯 돌봄 노동의 현장으로 나갔지만 나는 돌봄에는 도무지 소질이 없는 인간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척척 해내는 것 같은 작은 일에도 손이 서툴러 허둥대기 일쑤였다. 아이에게는 미안한 일이 많았고, 미안한 만큼 우울도 깊어갔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성과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자라는 아이를 보는 기쁨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웃음소리보다는 울음소리가 크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에 기쁨보다는 불평과 우울, 분노가 이는 날이 많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까 두려웠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나의 딸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 바랐다. 그래서 쓰기를 멈추는 날이 잦았고 자기를 검열했다. 그리 대단하지 않은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닌지 매일같이 되물었다. 


그러나 나는 쓰기로 했다. '정말 그만큼 우울했던 적도 있잖아, 솔직하게 기록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며 반려인은 나의 망설이는 마음을 다잡아 주었다. 아이를 키우며 나는 어떤 노동을 경험했는지, 그리고 그 노동의 시간 동안 나는 어떻게 허물어져 갔는지 쓰려한다. 앞으로 쓰일 글들은 나의 못난 모성을 고발하는 글이자 20개월을 버텨낸 나의 노동 일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