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을 위해 마음속 작은 '공감'의 방 준비하기
"선배부부처럼 사이 좋게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오늘은 하나뿐인 동생의 결혼식이었다. 코로나 상황이라 성대하게 할 수 없었지만 오히려 꼭 축하하고 싶은 분들이 자리를해서 조금 더 여유있고 따스하게 느껴졌다. 최근 내 주위에도 결혼하는 커플만큼 이혼하는 커플도 많다. 처음에는 누구나 행복한 가정을 꿈꾸고 결혼하지 않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5년 전쯤 이였던 것 같다. 후배들 7명이 갑자기 같은 해에 결혼을 했다. 그러다보니 '선배부부 처럼 사이좋게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비결이 있어요?" 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우리도 여느 부부와 마찬가지로 티격태격하며 지냈기에 특별히 비결이라고 말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꽤 사이좋은 부부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우리 부부가 절대로 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서로에 대한 '지적' 이였다.
처음부터 우리가 서로 '지적' 하지말자! 라고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이제 그 과정을 한번 이야기 하고자 한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 『안나카레리나』
늦은 밤 귀가 후 문을 열었다. 거실이며 식탁이며 넓지않은 집 안이 무질서한 가운데 질서가 잡힌 우주공간과 닮았다. 아이들의 장난감 병정들이 우리 몰래 전쟁이라도 한듯한 풍경. 평소 같으면 오랜만의 정리 기술을 뽐 낼 기회라고 두 팔을 걷어 붙이고 청소를 하겠지만 오늘은 도저히 그럴 체력도 마음도 나지 않는다.
'최근 맡은 프로젝트가 얼마나 어려운지. 나의 파트너가 얼마나 책임감이 없어서 내가 나날이 피가 마르는지 그래서 지금 내 스트레스 지수가 얼마나 심각한지. 나는"일본 여성은 정말 먼지하나 떨어뜨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며 좀 더 정리정돈에 신경을 써 주었으면 좋겠다'는 메세지를 장황하게 작성하고 송신 한다. 다만, 이 메세지는 ‘부치지 않는 편지함’에 도착한다.
조금은 예민한 성격의 나는 힘들고, 압박을 많이 받는 상황일수록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정리정돈에 '약간의 강박증'이 생긴다. 먼지가 많은 건 용서해도? 정리정돈이 되어 있지 않으면 불편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밥맛이다.
아마도 아내가 한국 사람이었다면 신혼 초 서로가 양보하지 못할 마지노선을 갖고 많이 다투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내가 단 한번도 지적을 하지 않았다니? 이제야 솔직히 밝히자면 내가 마음이 넓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서로 감정의 칼날로 전투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결국 마무리는 아내의 필살기 멘트(참고로 단 한번도 아내가 말한 적은 없다.) "당신하나 믿고 한국 왔는데 이럴 수가 있느냐?"로 끝날 것 이 눈에 선했다.
나는 절대 지는 싸움을 하지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냥 참았고 다음부터는 이렇게 부치지 않는 편지함으로 쓰며 '지금 나의 상황을 냉정히 바라보게되고, 내 감정에 더 다가가게 되고, 결국 정리정돈 되지 않은 집안의 상태가 문제가 아니라 본질은 '지금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나' 스스로에게 화가나 있었던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늦은 밤 홀로 정리 정돈을하면서 물건 하나, 하나에 오늘 하루, 문화가 다른 한국에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두살 터울 남매를 데리고 두 아이들과 얼마나 치열하게 지냈을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나 몰래 눈물 흘리는 아내의 그림자가 아른 거린다. 그리고 가슴속에 있던 서운하고 불편한 마음은 왠지 머쓱해지고 그 다음은 미안하고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으로 변하곤 했다. "휴~~ 그 메세지 안 보내기 정말 잘했다"
당연히 아내도 나에게 지적하고 싶은 혹은 개선했으면 하는 사항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 서로가 처음에는 지적하기위해 시작했던 '부치지 않는 편지함'은 서로 감사의 메세지로 바뀌는 '공감 노트'를 통해 교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할말 많은 신혼 3년이 지났다. 자연히 우리 부부는 절대 서로에게 ‘지적’하지 않는 무언의 약속이 자연히 생기게 되었다.
혹시, 마음 편한 가족, 친구, 선후배에게 무장해제하고 있을 때, 누군가에게 내 실수 혹은 내 단점을 지적 받아 본 기억이 있는가? 몰랐던 단점, 알지만 쉽게 고쳐지지않는 습관 그 종류는 다양할 것이다. 지적을 받고 개선기란 정말 어렵다. 그렇지 않다면 모두가 완벽한 인간이 될 것이다. 대체로 인간은 지적 당하면 “내가 바뀌어야지”라고 생각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앙갚음 하기위해 약점을 혹은 단점을 찾게된다. 그렇게 서로가 감정의 창으로 서로 베고 찌르고 자르며 선혈을 흘리게 된다. 이제 우리는 나쓰메 소세키의 '한눈팔기'라는 작품을 통해 꽤 자주 볼 수 있을 법한 '부부의 갈등'을 엿볼 것이다.
나쓰메소세키는, 근대 일본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그는 당시 귀족원 서기관장이라는 고관의 딸과 결혼을 한다. 그러나, 그 결혼생활은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의 자전적 소설 <한눈팔기>는 스스로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그리고 있다.
소세키의 분신 주인공 겐소는 30대의 대학교수다. 아내의 이름은 오쓰미로 고급관료의 딸이다. 영국으로 유학을 마치고 전도유망한 청년과 고관의 자녀 사람들의 축복을 받는 결혼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아무래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을 닫아 버린 채로 엇갈리게 된다.
소설에는 이런 부부 사이의 갈등을 묘사한 장면이 자주 나온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겐소가 조금이라도 생계의 보탬이 되려고, 지금으로 말하면 고급 아르바이트를 한다. 거기에는 아내의 살림 걱정을 덜어주려는 따뜻한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번 돈을 건네 받은 아내는 별로 기쁜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소세키는, 이 때 두 사람의 심리를 소설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오쓰미는 만약 남편이 부드러운 말을 곁들이며 그것을 건네주었다면, 분명히 기쁜 얼굴을 보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겐소는 '만약 아내가 기쁜 듯이 그것을 받아 주면 부드러운 말도 걸 수 있었으리라 하고 생각했다.' 이 장면을 묘사한 글을 읽고 인간의 심리의 미묘한 갈등을 찌른 날카로운 필치라고 생각했다. 겐소 부부는 서로 상대에 대한 기대와 요구만이 있고 서로에게 조금의 ‘공감’이 있을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조금만 서로에게 솔직했다면 하며 안타까운 심정으로 타인의 가정을 걱정하며 읽었던 기억이 있다.
사람의 감정은 항상 옳다.
사람을 죽이거나 부수고 싶어도 그 마음은 옳다.
그 마음이 옳다는 것을 누군가 알아주기만 하면 부술 마음도,
죽이고 싶은 마음도 없어진다.
비로소 분노의 지옥에서 빠져나온다.
그러나 실제로 부수고 해코지를 했다면?
사람의 감정은 옳지만 그에 따른 행동까지 옳은 건 아니다.
정해신 - 당신이 옳다
'당신이 옳다'의 저자 정해신은 공감은 그저 들어주는 것,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주는 것만이 아니라 정확하게 듣는 일이라고 한다. 정확하게 듣는다니? 책에서는 잘 모르면 우선 천천히 물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당신의 감정에 대해 내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 과정이 공감이라고 말한다. 단지 '하소연을 푸념을 들어만 주며 쌓이는 내 감정의 괴로움을 참는 것이 공감이 아니다'라고 명확히 말한다. 겐소도 우쓰미도 어쩌면 서로의 감정이 틀린것이 아니라 서로의 감정이 옳다는 것을 알아 주었다면 그리고 조금만 더 용기내서 솔직히 대화 했다면 어쩌면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할 때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상대에게 주목 하는 것 당신의 이야기 당신의 감정에 관심이 있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 상대의 존재에 대해 시선을 비추는 것 그것이 공감이라 말한다.
그리고 공감에 가장 인상 깊은던 내용은 공감이란 상대를 공감 해주는 일이 아닌 내 상처가 공감 받는 것에 예민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지 못하면 누군가를 공감하는 일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 부부의 공감법은 정말 함께 많은 대화를 한다. 주위 친구들은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솔직히 나는 아내와 대화가 가장 즐겁다. 왜 그럴까를 곰곰히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아내는 항상 내 이야기에 집중해 주기 때문인 것 같다. 회사 이야기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는 이야기 모두 결국은 기.승.전. '내감정'으로 된다. "그래서 당신의 마음은 어때요?" 사실 나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듯이 시시콜콜 하나 하나 말하는 성격이 아니지만 아내와 대화를 하다보면 "아 내가 그랬구나! 그런 마음이였구나"라고 깨닫는 경우가 많다. 아내와의 대화는 공감을 주고 받는 치료같다. 내가 왜 그 사람의 말에 태도에 화가 났었는지 나는 어떤 감정이였는지 이야기하며 쏟아내다보면 어느새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단 한사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 부부의 공감법은 꼭 전달하고 싶은 것은 말보다는 공감노트 혹은 편지지를 통해 전달한다. 말은 직설적이지만 글은 쓰면서 1차적으로 감정적 순화가 되고 2차 적으로 이성적으로 접근하게 된다. 그래서 글에는 단순하게 서운한 감정 뿐만이 아닌 왜 그렇게 느끼는지에 대한 배경이 설명이 된다. 즉, '행동이 아닌 감정에 반응'하게 된다. 그리고 꼭 잘 모르고 이해가 안되는 것은 솔직히 질문 한다.
정말?
왜 그렇어?
내 마음은 이랬는데, 당신 마음은 어땠어?
그렇다. 누군가 나를 위해 귀 하나를 쫑끗 세워서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나와 아내는 마음 속 깊이 치유됨을 느낀다. '공감 해 주고 공감 받는 다는 것' 그것은 대화의 과녁이 내 주위의 인간관계, 회사, 사회 현상이 아니라 '나' 였고 '아내' 였기에 오롯이 서로 공감을 주고 받는 시간이 되었다.
서로 닮은 행복한 가정에는 '공감'이라는 방이 꼭 있다. 그리고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한 가정은 각자의 방이 너무 많아서 '공감' 이라는 작은 방 하나가 들어갈 공간이 없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