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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모닝 비엣남 Jul 03. 2020

#04. 하노이 - by Lee

하노이의 겨울

[하노이의 겨울]

하노이의 겨울은 꽤나 쌀쌀한 편이다. 두꺼운 이불을 사기에는.. 그렇다고 얇은 이불을 덥고 자기에는 애매한 날씨 때문에 나는 10평 남짓한 방 구석의 얇은 이불 속에서 숙취와 함께 새벽에 눈을 뜬다. 습관적으로 아니 오늘 하루의 평안을 바라는 내 작은 의식에 담배 한 대를 제물로 바치며 길거리로 나선다. 새벽의 하노이는 꽤나 분주한 편이다. 담배를 입에 물고 시장거리를 걸으면 한국에서는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냉장고가 없어 파리가 날리는 고기들, 자신의 키보다 큰 과일과 야채 더미를 작은 오토바이로 나르는 사람들, 어딘가에서 와서 어디론가 움직이는 수많은 사람들, 나는 골목을 지나 식당의 작은 의자에 앉아 천오백원 짜리 국수 한 그릇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이 사람들은 새벽부터 무엇을 하기에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 국수 한 그릇을 먹는 것인가? 라는 이상한 생각을 잠시 하다가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떠올라 그 공상을 멈춘다.

이 넓은 도시에 천만의 사람이 살고 있는데 그 사람들의 행선지까지 궁금해 하기에는 내 삶이 그리 여유롭지는 않다. 그리고 이 사람들에게 나 역시 하루에 수 없이 마주칠 특별할 것 없는 외국인 중 하나일 뿐이다. 4년이라는 시간은 나에게서 호기심과 특별함을 날려 보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이쑤시게 하나를 입에 물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동이 트기 시작할 무렵 빛이 들어오자 쥐만한 바퀴가 길에 죽어 있는 것이 보인다. 고양이만한 쥐들이 인기척이 들리자 숨을 곳을 찾아서 바삐 움직인다. 크게 놀랍지는 않다. 어릴 적 동네 골목에서 흔히 보는 것들이었으니까 단지 이 나라는 사람 빼고 모든 것들이 내 고향의 규격보다는 조금 큰 것이 차이긴 하지만 … 고양이만한 사람을 본다면 조금 놀랄까? 무언가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축복이자 저주이다.

추운 겨울 천원을 가지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참 좋은 것이다. 적당히 배가 부른 상태에서 샤워를 하고 사무실로 나갈 준비를 한다. 핸드폰으로 길거리에 서서 오토바이 택시를 부르고 사무실로 출발을 한다. 국방색 바지를 입은 기사님이 10년은 족히 넘은 오토바이를 타고 내 앞에 나타난다. 전쟁을 보신 것만 같은 기사님이 운전하는 10년이 넘은 오토바이를 핸드폰으로 부르면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느낌이 든다. 그와 같이 과거와 미래가 혼재된 것 같은 묘한 풍경을 하노이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가 있다. 식민지의 기억 혹은 망국의 붉은 사상과 이념으로 쌓아 올린 성냥갑 같은 집들 사이를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간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좁은 곳에서 하루를 시작할까? 이들은 무엇을 할까? 어디로 갈까? 적당히 벗겨진 포장 도로를 10여분 달리다 보면 그 해답을 알 수 있게 된다. 내 고향에서는 볼 수 없던 높은 빌딩과 그 안으로 들어가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을 보면서 나는 성장 하는 도시에 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된다. 언젠가는 골목길의 작은 건물들이 그들이 과거에 신봉했던 신념처럼 무너지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너진 자리는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신념이 높은 빌딩처럼 들어서게 될 것이다. 오늘 나를 이 자리로 대리고 온 오토바이 기사님은 이 빌딩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그의 할아버지, 아버지, 친구 혹은 자신은 이 마천루가 그들의 심장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피를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보다 30살 어린 친구들이 이 빌딩에 올라 가기 위해서 이른 새벽부터 눈을 뜬다. 같은 무게의 돈은 피보다 무겁고 세상을 바꾸기 위하여 바친 개인의 희생은 너무나도 가볍다. 2019년 하노이에서 우리는 그들과 함께 살아 가고 있지만 그들은 생각보다 빨리 잊혀 질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누군가의 희생과 옛 이념보다는 오늘 먹는 점심 메뉴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하루가 지나고 짐을 꾸린 후 나는 집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수많은 차들, 집들, 빌딩들, 사람들 중에 내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약간 슬픈 일이지만 높은 건물 위에서 바라본 창의 풍경은 꽤나 멋이 있다. 누구의 꿈이 저 아래서 빛을 내고 있을까? 어떤 내일의 고민을 잊고 싶어 술 한잔을 기울일까? 무엇을 바라면서 잠을 청할까?

밤의 하노이는 누군가의 미래로 만들어진 도시이다. 불빛을 보고 쫓아온 불나방처럼 우리는 무언가를 쫓아 이 도시에 모여 들었다. 그들의 과거 현재 미래가 뒤엉킨 도시 그것이 하노이다. 당신의 꿈을 응원한다 그리고 그들도 나의 꿈을 응원해 줬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의 꿈이 있어야지 이 삭막한 도시가 영원히 빛이 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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