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남 콘서트장에서 떠오른 생각들
*2019년 에릭남 콘서트를 촬영하면서 느낀 점들을 적어 내린 글이다.
1) 공연 사진은 발의 사진이다. 움직이는만큼 나오는 사진이다. 무대, 관객석. 이 두가지 포인트를 핵심으로 사방에 비어있는 구도를 찾아내며 자신을 적재적소에 위치시키고 해당 뮤지션 혹은 밴드를 다채롭게 담아낸다. 키워드는 다채롭게다. 짧게는 2시간 길게는 3시간도 하는 콘서트장에서 다양한 사진을 담는 것은 오직 발의 힘에 들렸다. 아무리 가수가 옷을 갈아입고 뒤에 다른 조명이 떠도 구도를 다양하게 하지 않는다면 수백장을 찍어도 비슷한 사진이다. 쉴틈없이 움직이고 또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무작정 움직이기만해서도 안된다. 공연하는 가수의 퍼포먼스와 부합되는 구도로 이동해야한다. 이 모든 것들이 조합되어 만들어지는 것이 공연 사진인데 이렇게 길게 고민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곡은 길어야 4-5분이고 중요한 안무 혹은 감정 포인트는 삽시간에 지나간다.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스릴 있는 사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거리 사진과 유사한 부분이 많아 내가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 공연 사진가가 반드시 지켜야 할 한가지는 공연의 주체는 관객이라는 것이다. 제 아무리 사진을 위해서라고 해도 관객의 관람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된다. 쉼틈없이 이곳저곳을 움직어야 하지만 그러면서도 최대한 몸을 낮추며 자신의 뒤를 틈틈히 확인하여 누군가 나 때문에 공연을 제대로 즐기고 있지 못하는건 아닌지 확인해야한다. 그 어떤 위대한 사진도 공연장에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보러 온 팬의 뷰를 막는 일을 정당화 시켜주지 못한다.
3) 사실 공연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쇼에서 사진은 가장 아래에 있다. 조명과 음향, 안무와 보컬. 공연에서 중요한 요소들부터 사소한 요소들까지 쭉 내려오다보면 그 마지막이 사진이다. 공연장의 필드에서 사진가는 가장 푸대접받는 직업이다. 영상의 시대가 오고나서는 더더욱 그렇다. 관객들이 사진을 찍을때는 더더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럴때일수록 나는 더 이를 악물고 찍고 싶다. 사진이 할 수 있는 일을, 사진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을 최대치로 보여주고 싶다. 사진을 쉽게 보고 우습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증명해내주고 싶은 그런 기분도 있다. 어디가든 열심히 하지만 공연장에선 그래서인지 더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
4) 나는 좋은 사진을 찍는데 있어서 어떤 기술보다 피사체를 향한 애정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여러 아이돌의 팬들이 사진을 잘 찍는 이유도 그렇다. 피사체를 진득하게 애정으로 바라보면 사진이 잘 나올 수 밖에 없다. 공연 사진가 또한 자신이 촬영하는 뮤지션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그것은 사진에서 확연히 들어날 것이다. 만약 몰랐던 가수의 공연을 촬영한다면 그들의 음반을 모두 숙지하고 다각도로 연구해야하는 것은 기본적인 과정이다. 사진은 무언가를 찍지만 언제나 사진을 찍은 사람의 본심을 들어내 보일 수 있는 신묘함을 가지고 있다.
5) 공연 현장에서 그간 캐논을 주로 쓰다 소니 a9은 처음 써보았다. 과연 이런 환경에서는 최고의 카메라가 아닐지. 그러나 너무 바디가 약해빠진게 아쉽다. 렌즈도. 100-400미리 후드가 어찌나 잘 빠지는지. 캐논 렌즈들은 한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참, a9에서 내가 가장 충격받은건 sd카드 슬롯이 두개인데 하나 다 찍으면 다음 슬롯으로 자동으로 넘어가는 기능이 없단 것이다. 메뉴 들어가서 다음 슬롯으로 지정을 해줘야된다. 너무 느리니 그냥 뚜껑 열고 카드 바꿔끼는게 빠르다. 캐논은 물론이요 소프트웨어가 약한 핫셀도 기본 장착한 기능인데 없다니. 첨단의 소니가 이게 뭐하는 짓인가.
6) 소니와 핫셀등 이틀 촬영하니 센서에 먼지가 팍팍. 렌즈 몇번만 갈아껴도 이러니 미러리스들 참 이런면에선 불편하다. 이런 촬영을 자주 한다면 매일 센서 청소 맡겨야 할 지경이 되겠다.
7) 외국 공연장은 사진 촬영을 위해 공간을 다 여기저기 만들어주기도 하고 촬영을 아예 고려해서 그런 자리들을 설계에부터 반영한 공연장이 많다. 한국 공연장은 그런 곳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될 지경. 이런 부분이 사실 제일 아쉽다. 언젠가 외국 공연장에서 촬영해보고 싶다.
8.) 사진가는 스타가 아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진가는 퇴장할때를 알아야 한다. 촬영한 장소에서 밍기적거리고 있으면 안된다. 나는 늘 내 사진을 앞에 두고자 하며 사진가인 나는 앞에 내세우지 않으려고 한다. 공연 촬영이 끝나면 최대한 신속하게 자리를 떠나는 이유다. 주인공은 나의 피사체들이다. 그들에게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기만을 바란다. 나는 항상 무대 뒤로 내려갈 시기를 아는 사진가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