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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민 Jan 03. 2019

S#11. “지금 누군가와 싸우고 있다면 글을 써라.”

‘글쓰기’는 상황과 갈등을 객관화시켜 나의 주장을 견고하게 만든다.

16.

 다섯째, 시간을 주도적으로 쓰자.


 소송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무척 애썼다. 변호사에게 도움을 구하고, 입증자료를 찾기 위해 사고를 전환, 확장시키는 것보다 더욱 노력한 것이 조급해하지 않기였다. 직장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마냥 내 마음대로만 시간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시간을 주도적으로 쓰기 위해 나는 글을 쓰고, 짧고 긴 기다림에 나를 다양하게 노출시켰다. 이런 노력은 습관이 되어 소송이 끝난 지금도 나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선, 나는 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글을 썼다. 페이스북에 공개적으로 긴 글을 쓰기도 했고, 어떤 감정이 들 때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이미지로 담아 인스타그램에 남기기도 했다. 물론 대부분은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채, 혼자 스마트폰 메모장에 남긴 메모였다. ‘글’이라는 무게에 억눌리지 않고,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해 쓰고 또 썼다.


 소송을 준비하며 다시 한번 느꼈지만, 세상 사람들은 나의 일에 별로 관심 없다. 우선 나부터 오늘 나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타인의 처지와 곤란을 골고루 살피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이 처한 어떤 사건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그 순간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정보’로만 판단하거나 단정 짓는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남이 될 수 없듯, 남도 내가 될 수 없다. 완벽한 이해란 없다.


 다만, 싸움하는 사람은 너무나 예민하다. 그래서 타인의 말 한마디에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흥분하고, 혹은 헛된 희망으로 후에 스스로를 지치게 한다.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라는 것이 아니다. 객관적인 상황 판단을 근거로 한 낙관이 중요하다. 스스로 이런 상태를 조성하기 위해 ‘글쓰기’보다 좋은 것은 없다. 그래서 지금 누군가와 싸우고 있는 이가 있다면 글을 쓰라고 전하고 싶다.


 저작권 소송이 있기 전, 나는 문화예술을 전공했지만 ‘노동’과 관련된 연구를 이어오고 있었다. 문화예술을 전공한 이유는 나의 느낌을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함도 있었지만, 사람들의 ‘여가’가 문화예술로 풍요로워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대한민국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니 ‘여가’가 쉽사리 발을 디딜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넘치는 노동, 그 이외의 시간은 ‘다음날 노동하기 위해 회복하는 휴식’ 뿐이었다. 문화예술을 통한 ‘여가’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노동’에 대한 고민이 먼저겠다고 생각해 몇 편의 노동연구를 발표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직장 생활과 함께 대학원에서 ‘연구방법론’을 배우고 있지만, 소송 전 노동연구를 하던 나는 아무런 연구 방법도 모른 채 ‘세상이 이상하고 그래서 힘들다’고 목소리 높이며 움직이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글로 담았다. 연구자로서 설익다 못해 기초도 없었지만, 지금 내가 대학원에서 연구방법론을 배웠다고 해서 그때보다 더 살아있는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낸 연구를 발표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날 것 그대로의 가치가 분명 있었다.


 수많은 이들을 인터뷰한 후, 그들에게 자신의 이야기가 정리된 글을 보여주자 많은 이들이 ‘현재 자신의 상황이 정리된다.’고 했다. 스스로는 머리가 복잡하고, 울화통이 터졌기 때문에 펜 들 힘까지는 없었지만 글로 정리된 상황을 담담히 읽어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객관화 되고, 치유의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모습을 자주 목격했기 때문에 ‘당사자’가 된 나는 글을 썼다. 그리고 앞서 발표한 노동연구 덕분에 ‘생존, 그 이상을 꿈꾸는 2030 세대 노동 이야기’가 담긴 <자비 없네 잡이 없어>에 공저자로 참여할 수 있었고, 내가 처한 상황을 책으로도 발표했다. 소송 중인 사건으로 승패를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글을 쓰기 위해 내가 처한 상황을 진지하게 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다.


공저자로 참여한 <자비업네 잡이없어>에 나는 내 소송 이야기를 썼다. 글쓰기라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자문자답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사진출처 : 희망제작소 블로그)


 특히 내가 이 책에서 담당한 주제는 ‘안정적 소득’이었는데 미래를 계획하는 데 있어서도 안정된 소득이 중요했지만, 어떤 위기가 닥쳤을 때 ‘안정적 소득’이 있고 없음은 너무 큰 차이를 만들었다. 만약, 나도 지금처럼 월급 받는 상황이 아니라 인디뮤지션이었다면 과연 소송을 결심할 수 있었을까 생각했고, 그런 고민을 글로 담았다. 글을 쓰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찾아보며 내 상황을 더욱 객관화시켜보고자 했는데, 그중 세대 갈등뿐만 아니라 청년층 내부에서도 ‘양극화’가 심각해졌다는 연구는 나를 더욱 자극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고인 대기업이 ‘청춘을 응원하기 위해’ 20대 시절 내가 쓴 저작물을 허락 및 출처 없이 사용한 것이 아이러니했다. 애초에 그런 응원은 큰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글을 쓰며 내 앞에 주어진 질문에 대해 정리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물음이다. ‘나는 왜 화가 났는가? 저작권법은 왜 있는 것일까? 이 싸움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스스로를 타자화 시키며 질문 건넸고 답변을 정리했다. 글쓰기라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자문자답을 가질 수 있었고, 내가 조급해한다고 안 될 일이 되고 될 일이 안 되는 것은 아니겠구나 생각했다.


 요즈음 브런치에 남기는 글도 내가 소송을 준비하며 끄적끄적 남긴 메모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하나의 문단으로 일목요연하게 글을 쓰기 어렵다면 한 문장이라도 쓰자. 지금 자신의 상황을 시간 순으로 기록해 나가는 것이다. 한 문장이 어렵다면 핵심적인 단어를 먼저 적고, 그 단어들을 이어 보면 된다. 어떤 묘사나 세련된 표현 없이 사실 그대로의 진술을 기록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힘들고, 슬프고, 억울하고, 우울해서 아프다면 자신의 상태 그대로를 함께 남겨도 좋다. 절대 ‘글’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무게에 억눌리지 말고, 자신이 처한 현재의 기록을 시의성 있게 남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덜 지칠 수 있다.



 ※ 본 사건과 관련된 내용을 브런치에 게시하는 이유는 저와 같이 법에 대해 잘 모르는 저작권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본 게시물을 보시고, 임의의 매체 및 저작권법 관련 강연 등에 활용하실 경우 반드시 사전 협의 요청해주시길 바랍니다. 판결문은 SNS 등을 통해 공개하였으나, 본 브런치에 소개되는 내용은 제 개인의 정보가 있어 보다 정확하게 소개될 수 있길 바랍니다. 사전 협의 없이 사용하다 적발되는 경우, 민형사 책임을 묻도록 하겠습니다. (문의 : dearmothermusi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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