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전까지 너무 긴장할 필요 없다. 법률 상담도 편하게 받자.
20.
재판이 끝나고, 친한 예술가들과 만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지자체에서 예술가 대상으로 법률 상담을 해 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엄청 망설이다가 법률 상담받으러 갔는데 상담하러 오시는 변호사님이 차가 막혀서 늦으신다는 거예요. 맥 빠지더라고요. 그냥 여기서 접어야 하나 보다 했죠. 소송은 무슨 소송이냐 싶었어요.”
법에 대해 알 기회 없었던 이들은 법률 ‘상담’ 임에도 심리적으로 큰 부담 느끼며 고민하게 된다. ‘법률 상담’이란 말은 나에게도 여전히 부담스럽다. 앞으로 살면서 법률 상담받을 일이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그러나 사건, 사고, 분쟁을 원해서 경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 갑자기 닥치는 일이고, 예술가의 경우, 계약서를 쓰지 않은 상황에서 돈을 받지 못하거나 관행에 의해 창작물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정당하게 주장하지 못하는 등 피해 사례가 잦고, 이기는 경우도 드물다 보니 낙심 먼저 하게 된다. 게다가 상담받더라도 계약 절차나 저작권 등록에 대해 잘 알지 못해 피해가 분명하게 있어도 입증자료는 없는 경우가 있어 자책하며 자존감까지 낮아지게 되는 일마저 발생한다. 이러니 대단한 용기와 결심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예술가, 창작자 혹은 프리랜서 등은 ‘자신의 권리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보호막을 스스로 쳐야 되는 사람들’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 환경이 변화하고, 조직에 소속되기보다는 자신의 개성에 맞춰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대한민국 교육에서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지키는 방법’을 가르치는 경우는 드물다. 최근 몇 년 사이, 노동법 교육 강화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청소년 대상으로 노동 교육 시간이 조금씩 늘었으나, 사회 전반적으로 변화하는 직업 환경에 대응해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타인의 권리도 존중하는 문화’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소송’은 쉽지 않은 절차다. 내 사례처럼 아무리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문제 제기하고, 내용증명 보내고, 언론 보도까지 했더라도 소장을 접수하지 않았다면 소송은 시작되지 않은 거다. 소송의 ‘시작’은 법원에 ‘소장을 접수해야만’ 되는 것이다. 소장을 접수하는 사람이 원고가 되고, 원고의 상대방으로서 그 소장을 받는 당사자가 피고가 된다. 소장을 통해 법원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법부가 자신의 역할을 시작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법원의 자료를 통해 위의 내용을 좀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소송이란 법원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해의 충돌을 공정하게 처리하기 위하여 대립하는 이해관계인을 당사자로 관여시켜 심판하는 절차를 말한다.
소송은 소의 제기에 의하여 개시된다. 소장을 법원에 제출하면, 피고에게 소장부본이 송달된다. 피고에게 소장이 송달된 경우에는, 답변서 제출기한이 만료된 직후 재판장이 사건기록을 검토하여 처리 방향을 결정하게 되는데 그때까지 답변서가 제출되었는지 여부에 따라 절차 진행은 전혀 다른 궤도를 따라가게 된다.”
나는 사건 발생 초기에 ‘내가 원고야? 피고야?’라고 헷갈릴 만큼 아무것도 몰랐다. 게다가 드라마에서처럼 ‘나도 국선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나?’ 했는데, ‘국선변호인’은 형사피고인이 스스로 변호인을 구할 수 없는 경우에는 국가가 변호인을 붙이도록 하고 있는 제도다.(헌법 12조 4항) 즉, 민사사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참고로 ‘원고’와 ‘피고’에 사전적 정의는 국립국어원(http://stdweb2.korean.go.kr/main.jsp)의 해설을 참고하면 이해하기 쉽다. 재판 진행하면서 모르는 말이 있을 때는 법률용어사전뿐만 아니라 국어사전 등을 이용해 검색하면 된다.
· 원고(原告) : 법원에 민사 소송을 제기한 사람.
· 피고(被告) : 민사 소송에서, 소송을 당한 측의 당사자.
소송을 결심하고, 관련 자료를 찾다 보면 사법부인 ‘대한민국 법원’이 국민에게 다양한 법률 정보를 세세히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은 사법부의 신뢰를 경험하기보다는 언론보도로 그릇된 모습을 먼저 접하는 경우가 많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발표 중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 평가’ 결과를 보면 OECD 회원국 평균은 54%인데, 대한민국은 27%이다.
사법부의 잘못도 있겠지만, 아무리 다양한 정보가 제공되더라도 대부분은 법률용어로 처음 듣는 말이 많고, 문장도 길어서 이해가 잘 안 된다. 어렵고 낯설고 불편하고 괜스레 긴장하게 되면서 신뢰감마저 들지 않는 것이다. 국민이 사법부를 더욱 신뢰하려면 사법부 자체의 노력뿐만 아니라, 사법에 대한 이해를 좀 더 실용적으로 교육과정에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헌법 제27조에 모든 국민은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명시되었으나, 경직된 사고로 재판 과정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교육의 문제도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27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27조 ①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②군인 또는 군무원이 아닌 국민은 대한민국의 영역 안에서는 중대한 군사상 기밀·초병·초소·유독음식물공급·포로·군용물에 관한 죄중 법률이 정한 경우와 비상계엄이 선포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군사법원의 재판을 받지 아니한다.
③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형사피고인은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지체없이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④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
⑤형사피해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당해 사건의 재판절차에서 진술할 수 있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가 아무리 낮더라도 내가 대한민국 국민인 이상 ‘법으로’ 해결해야 되는 문제가 있다면, 사법부인 대한민국 법원의 재판과 판결에 따를 수밖에 없다. 나도 그래서 무척 긴장했고, 매 단계마다 ‘절차를 몰라서’ 어떻게 해야 되나 싶었는데, 친분 있는 변호사들도 도움 줬지만 혼자 법원 홈페이지를 찾아보며 많은 정보를 얻었다. 뒤에서 자세히 이야기할 전자소송, 민사소액집중심리부, 원로법관 제도도 정말 큰 도움이 됐다. 진행과정에서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법원에 전화해서 물어보는 것이 가장 빠르다. 법원에는 판사, 검사뿐만 아니라 재판의 원활한 진행을 돕는 여러 공무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그러니 예술가가 창작과 관련되어 저작권 및 기타 소송을 진행하기로 결심했다면, ①저작권 관련 민사소액사건으로 예술가가 직접 개인 소송으로 진행한 내 사건 사례를 읽어보며 밑그림을 그리고 ②자신의 상황에 맞춰 법원 홈페이지를 찾아본 후 ③기타 관공서, 공공기관에서 제공하는 법률상담까지 이용해서 민사소액사건을 직접 진행해 볼 수도 있다. 소장이 접수되야 진짜 소송이 시작이다. 그전까지는 너무 긴장할 필요 없다. 법률 상담도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받자. 나도 손해배상액이 작아서 변호사를 선임하기 어려웠지만 지나 보니 큰 공부가 되었다. 아무리 금액이 적더라도 창작자의 권리는 중요하다. 그 권리가 차곡차곡 쌓여갔을 때, 결국 지속 가능한 창작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소송을 결심한 이상, 지치지 말고 끝까지 공부하는 마음으로 힘내시길 바란다.
※ 본 사건과 관련된 내용을 브런치에 게시하는 이유는 저와 같이 법에 대해 잘 모르는 저작권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본 게시물을 보시고, 임의의 매체 및 저작권법 관련 강연 등에 활용하실 경우 반드시 사전 협의 요청해주시길 바랍니다. 판결문은 SNS 등을 통해 공개하였으나, 본 브런치에 소개되는 내용은 제 개인의 정보가 있어 보다 정확하게 소개될 수 있길 바랍니다. 사전 협의 없이 사용하다 적발되는 경우, 민형사 책임을 묻도록 하겠습니다. (문의 : dearmothermusic@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