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통해 느낀 것들
지난 주말은 1박 2일이라는 짧은 기간이긴 했지만 가족이라는 존재가 이런 것일 수 있겠구나라는 것을 느끼고 온 소중한 시간이었다.
결론적으로 아이들은 내가 우려하거나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훌륭하게 자라고 있었으며, 서로 간의 이해와 배려라는 것이 가족들 사이에서도 정말 필요한 것이라는 걸 새삼 느끼고 온 순간들이었다. 무엇보다 사회에서 느끼기 어려웠던... 나를 내세우기보단 함께 있는다는 게 참 좋은 것이구나 하는 것을 만끽하고 온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내의 직업은 오디오북 내레이터다.
흔히 알려진 직업은 아니지만 출판사의 의뢰를 받아 출판된 책을 낭독하며 그것을 녹음해서 전달하기도 하고, 함께 일하는 분들과 오프라인 낭독회를 갖기도 한다. 또는 학생이나 이에 관심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낭독 강의를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아내가 강의를 하러 가는 날을 맞춰 군산으로 향했다.
'군산'이라는 지역은 꽤나 가보고 싶던 곳이기도 했고, 제주도와 같은 리조트가 즐비한 관광도시 느낌보다는 한국의 근대화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가치 있는 유물과 볼 곳들이 많은 곳이어서 아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 아내가 강의를 하러 간다니 이 타이밍을 놓치기 어려웠다.
여느 여행 준비도 그렇듯, 우리 가족은 군산에 대해 조사하고 스케줄을 정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놀러 간다기보단 역사 여행이라는 콘셉트에 맞춰 적산가옥, 근대역사박물관 등을 지도로 살펴보며 순서를 정했다. 그 와중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 재미도 놓칠 수 없으니 서울에서 쉽게 접하는 것보단 그곳에서 특별히 더 맛있을 만한 곳들을 살폈다. 그리고 돌아오는 날은 군산에서 가까운 국립생태원을 들렀다 오는 것으로 일정을 짰다.
사실, 급작스럽게 떠나서 즉석에서 스케줄도 정하고 해보고 싶긴 했지만 함께 준비하는 것이 더 큰 의미를 둔터라 예정된 스케줄로 옮겨보기로 했다. 아이들은 가보기로 한 식당을 조사했고 먹고 싶은 메뉴를 골랐다. 국립생태원에서는 무엇을 더 시간을 할애해 둘러보고 올지도 생각하며 준비했다.
하지만, 그 스케줄대로 맞춰 움직일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예상치 못한 교통 정체로 인해 시간을 다소 틀어졌다. 군산에 도착해 먹기로 했던 점심식사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먹었고, 생각보다 약간 더운 날씨 덕분에 살짝 땀을 흘렸다.
아내를 강의장으로 들여보내고 4시간 남짓 아이들과 나만의 시간. 진포해양테마공원을 들러 각종 무기와 바닷가를 돌아다닌 후 옆에 있는 근대역사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때, 둘째의 반응이 놀라웠다. 여느 때 같으면 가까운 거리라도 차를 타고 이동하자 칭얼대던 아이가 아무 말 없이 걷기 시작한다. 가까운 거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번도 칭얼대지 않고 박물관과 근대건축박물관 등등 그 일대를 2시간 동안 아무 불평 없이 다녔다. 게다가 천연기념물인 '저어새'의 야생 그대로의 모습을 목격하는 행운도 얻었다.
아빠 운전하느라 피곤하기도 할 테고, 맨날 자연경관만 보는 곳을 다니다가 이런 박물관에 오니까 기분도 좋아졌어. 그리고 무엇보다 거리도 깨끗하고 너무 좋아
많이 걸어 힘들었을 텐데 차타자고 이야기 안 해서 고맙고 대견하다는 나의 말에 둘째가 던진 답변이었다.
4시쯤 아내를 픽업해 신흥동 일본식 가옥, 동국사, 초원사진관 등을 둘러보았다. 평소 사진 찍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두 녀석들이 웬일인지 흔쾌히 사진 촬영에 동의한다. 함께 둘러보고 열심히 사진을 찍어댄다. 그러다 보니 이윽고 저녁 시간이 되어갔다.
사람 붐비지 않고, 여유롭게 식사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이라 미리 호텔의 저녁 뷔페를 예약해 두었었다. 그런데 큰 아이가 이런 말을 던진다.
"우리... 뷔페 말고, 밖에서 회 먹고 가는 건 어때? 나 바닷바람도 쐬고 싶고 구경도 더 하고 싶어" 그러더니 슬쩍 동생 눈치를 본다. 아내는 내 눈치를 본다.
아이들이 나를 닮아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정해진 것이 변경될 때를 가장 싫어하는 거다.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터라 유연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엄청 많이 하지만 난생처음 와보는 곳에서의 변경은 썩 달가운 것은 아니었다. 아내 역시 그런 내 모습을 알기에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그래도 여행에 왔으니 이것저것 많이 둘러보고 하는 게 어떨까 싶어 흔쾌히 동의했다. 큰 아이도 동생을 보며 이런 말을 한다.
"저녁에 회를 먹고, 내일 아침에 조식 뷔페를 먹는 거 어때?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좀 다르게 해는 거 괜찮지 않아?"
"음.... 그래 알았어. 형이 그렇게 이야기한다면... 좋아. 그렇게 하자"
많이 컸음을 느끼는 둘의 대화다. 게다가 배려해 주는 모습이 너무나 이뻐 죽겠다.
바로 바닷가 근처 횟집을 검색했다. 한 곳을 정했고 우리는 정말 원 없이 배를 채웠다. 아내와의 술 한잔이 몹시 당기기는 했지만 그보다 더 큰 즐거움을 얻었으니 뭐 어떠랴...더불어 바닷가를 앞에 두고 경치와 더불어 마주하는 바닷바람이 시원하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예정된 국립생태원을 방문했다.
전기차 운행을 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걷기로 했다. 구석구석 둘러보고 자연을 조금이라도 더 느껴보자는 취지다. 사슴과 산양, 긴팔원숭이, 수달, 담비를 보고 에코리움을 거쳐 차로 돌아올 때까지 입가에는 미소가 없어지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걸음이 느린 엄마와 동생을 느긋하게 기다려주고 동생이 못 찾는 동물이 있다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기 있다고 알려준다. 형과 아빠가 저기서 기다리고 있으니 우리도 서두르자며 엄마를 재촉한다. 모르는 식물이 있으면 서로 휴대폰으로 검색해서 무슨 식물인지 서로 공유한다. 옆에서 동물을 보고 싶어 하는 다른 가정의 동생이 있다면 자리를 비켜주거나 손가락으로 알려주기도 한다.
어찌 보면 소박하고, 뭐 그런 거 가지고 유난을 떨까도 싶지만 그저 어른들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모습이기에 더 그런 듯도 싶다. 아내 역시 아이들의 그런 모습을 보며 칭찬 세례를 날린다.
여행이라는 것이 그저 놀러 갔다 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는 적어도 나에겐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배움을 수행하고 오는 현장학습과도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앞으로 아이들과 지내며 얼마나 이런 기회들이 또 있을까 싶다.
이제는 입시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큰 녀석과 아직은 마냥 아기 같은데 중학교에 들어가는 둘째 녀석이 지금처럼 또 여유롭게 서로를 생각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될 수 있을까도 조금은 걱정스럽다.
그래도 인간이기에....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모습을 보며 흐뭇해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남겨두고 싶다.
오래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