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렷해진 기억은 사랑이 된다
언니는 뱀띠다. 나는 양띠니까 언니와 나는 두 살 차이이다. 기억이란 게 있기 시작할 때부터 중학교에 갈 때까지 언니와 같은 방을 썼다. 그리고 어리다면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혼자 살기 시작한 내 삶에 언니가 툭 끼어들었다. 그때부터 다시 한 집에 살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큰 것, 좋은 것, 새 것은 다 언니에게 가고 나는 물려받기만 했다는 억울함이 있었기 때문에 큰 방을 내가 써야 한다고 결정했다. 내가 집을 구해두고 살고 있었기 때문에 어차피 언니는 남아있는 방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살다 보니 그것은 매우 멍청한 선택이었다. 유럽의 집 구조는 참 이상해서 거실에도 문이 달려있었다. 내가 선택한 큰 방은 사실은 문 달린 거실이었기에 사실상 나는 현관에 딸린 거실에 사는 셈이었다. 남아있는 방은 훨씬 작지만 문간이 아닌 집 안쪽에 있었고, 화장실과 부엌이 가까웠다. 평생을 보상심리에 시달린 둘째들은 가끔 되게 멍청해진다.
그 집에서 같이 살던 6년 반 동안 나는 언니를 이해할 수 없어 미워했고, 떨어져 있을 때는 그리워했다. 미워하고 그리워하고를 반복하던 어느날 갑자기 영영 헤어져 살게 되었다. 내가 그 삶이 지겹다고 한국에 가 돈을 벌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고민할 때 언니는 내 결정에 힘을 실어 주었다. 용돈도 마련해주었고 부모님이 연을 끊을 것처럼 역정을 내셨기에 부모님의 모든 연락을 다 감당해 주었다. 그렇게 21년 전 다시 우리는 따로 살게 되었다.
같이 살던 6년 반의 시간이 내 살과 피를 얼마나 채우고 있었는지 헤어져 산 후에 알게 되었다. 시험 기간이면 콜라만 마시며 밤을 새우던 언니를, 기분이 나쁘면 비아냥대는 말투를 사용하던 언니를, 그렇게 내가 이해할 수 없고 싫어하는 행동을 계속하던 언니를 나는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날 아무리 대차게 온갖 욕을 섞어가며 싸웠어도 다음 날 아침 먼저 일어난 누군가가 커피를 끓이면 늦게 일어난 누군가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잔을 꺼내고 빵을 차린 후 마주 앉아 담배를 피우며 화해했다. 밤에 화장실에서 바퀴벌레를 만나면 자고 있는 사람을 깨우지 않고 입을 틀어막고 처리했다. 나는 요리를 못하는 언니를 먹여 살렸고 언니는 내가 치고 다니는 사고들을 수습했다. 그런 6년 반을 함께 보내고 난 후 헤어져 살게 되면 나빴던 기억은 희미해지고 힘을 모아 버티고 견딘 날들만 또렷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또렷해진 기억은 사랑이 된다.
나이가 들수록 유일한 형제와 떨어져 살고 있다는 게, 그 형제와 사이가 좋다는 게, 그런데 볼 수 없다는 게, 그 큰 이유가 경제적 현실에 있다는 게 너무 가혹하게 느껴진다. 아무런 목적 없이 일상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한 바로 그 밤에 언니로부터 마음이 어렵고 슬픈 연락이 와 있었다. 내용을 들을 때까지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그대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번아웃이 온 나와 다른 곳으로 가려 하는 언니. 자세한 이야기는 같은 방을 쓰던 어린 시절 잠들기 전 작게 나누던 비밀 이야기처럼 우리 사이에만 남았다. 어려움은 다른 곳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