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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ah Aug 25. 2024

154. 싯다르타

싯다르타

- 헤르만 헤세




진리를 찾겠다고 사람과 교리를 쫓아 다닌다. 분별심으로 정신을 흐트러뜨리고 시간과 기억 안에서 고통받으며 구도되기를 바란다. 부질없다. 불성은 내 안에 있고 범과 아트만도 내가 만든다. 나 하나만 깨치면 세상이 변한다.


여운이 가시지를 않는다. 미쳤다. 백번이고 더 읽어야겠다.



<좋은 문구 발췌>


남의 생활을 비판할 자격이 제게는 없습니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저는 비판하고, 선택하고, 거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오, 세존이시여, 우리 사문들은 자아로부터의 해탈을 찾고 있습니다. 만약에 제가 세존의 제자가 된다고 하면 저의 자아는 다만 외견적으로나 허위로만 안식에 도달되고 구원받을 것이 두렵습니다. 그리하여 실제로는 그 자아가 그대로 살아 남아 커갈 것이 두려운 것입 니다.


한 인간을 보았다. 그 앞에서는 눈을 내리뜨지 않을 수 없는 유일한 인간을 보았다고 싯다르타는 생각하였다. 다른 사람 앞에서, 아니 이제 어떤 사람 앞에서도 눈을 내리깔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그 사람의 교리가 자신을 유혹하지 못할 것이고 어떤 교리도 이제는 자신을 유혹하지 못할 것이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다. 깊은 물 속으로 잠수하듯 이 느낌의 원인이 숨겨져 있는 밑바닥까지 빠져들어 갔다. 왜냐하면 원인을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사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에 의해서만 감정은 인식이 되며, 소멸되지 않고 본질적인 것이 되어 그 안에 내재하는 것을 밖으로 내뻗치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구하는 것 없이 단순한 어린 아이처럼 관찰하면 세계는 아름다웠다.


불타의 보물과 비밀은 그 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찍이 대오 성도했을 때 체험한 것의 형용하기 어렵고 가르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것이야말로 바로 그가 지금 체험하기 위해 길을 떠나는 것, 체험하기 시작한 것이 었다. 그는 지금 자기 자신을 체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물론 그는 벌써부터 자기 자신이 아트만이라는 것, 범과 같은 영원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사상의 그물로 자기 자신을 잡으려고 했기 때문에, 여태까지 한 번도 정말로 그것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확실히 육체는 자기 자신은 아니었다. 감각의 희롱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처럼 사색도, 지성도, 습득한 지혜도,결론을 끌어내고, 이미 생각했던 것으로부터 새로운 사상을 자아내는 습득된 기술도 자기자신은 아니었다.


싯다르타는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그는 기다리고 생각하며 단식합니다. 그러나 그는 돌이 물 속에 가라앉듯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몸 하나 움직이지 않아도 세상의 사물을 꿰뚫고 갑니다. 그는 끌려가는 것이며 떨어지는 대로 맡기는 것이오. 목표가 그를 끌어당기는 것은 그 목표에 위배되는 일은 무엇 하나 마음 속으로 들여놓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것이야말로 싯다르타가 사문들 사이에서 배운 것이오. 어리석은 사람들은 마법이라고 부르며 마력의 짓으로 생각하지만 마력의 짓 같은 것은 결코 아니오. 마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마술을 할 수 있고 누구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소. 생각할 수 있고 기다릴 수 있으며 단식할 수 있으면 말이오.


알아 둘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을 직접 맛 본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오, 그렇다면 모든 괴로움은 시간이 아니었는가?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도, 두려워하는 것도 시간이 아니었는가? 시간을 극복하고 시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면 이 세상의 모든 곤란과 장애는 제거되고 극복되지 않았겠는가?


지식은 전달할 수 있지만, 지혜는 전달할 수 없는 것일세. 지혜를 찾아낼 수는 있고 그 지혜에 의해 살아갈 수도 있다네. 지혜에 힘을 입을 수도 있고 지혜로 기적을 행할 수도 있네. 하지만 지혜를 말하고 가르칠 수는 없네. 이것이야말로 내가 청년 시절에 어렴풋이 느꼈던 것이고 나를 스승으로부터 멀리하게 한 것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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