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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 Aug 07. 2016

음악으로 재구성한 신의 도시

시티 오브 갓, 2002

신의 도시는 아이러니다. 그렇지 않다면 리우 데 자네이로 한복판에 실존하는 신의 도시, 시다지 데 데우스(Cidade de Deus)에 내려진 것은 신의 축복이 아니라 저주일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죽고, 도망쳐도 죽는 이 도시에서 살아남는 길이란 상대를 향해 서슴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것일 뿐. 거기엔 피도 눈물도 그리고 일말의 가책도 없다. 그러나 지독하게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시티 오브 갓Cidade de Deus>으로부터 황망한 시선을 거둘 수 없는 건 페르난도 메이렐레스Fernando Meirelles 감독이 그려낸 지옥도가 현실에 발을 딛고 있다는 충격 때문이다. 


영화음악가 안토니우 핀투Antonio Pinto 역시 비슷한 부피의 충격을 받았다. 메이렐레스 감독이 파울로 린스Paulo Lins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그는 놀라면서도 감독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어 영화의 음악을 맡고 싶다고 자청했으니까. 그로부터 4년이 지난 뒤 그에게 건네진 러시 필름을 보면서 안토니우는 또다시 충격에 휩싸인다. 가난에서 비롯된 도시의 탄생, 신의 도시를 점거한 이들이 불러온 광기와 살기 그리고 파괴로부터 오히려 호흡을 연장시키는 도시의 생명력이 스타일리시한 영상에 담겨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시티 오브 갓>을 제외하면 안토니우 핀투는 그전까지 두 편의 영화에 음악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주로 차분한 현악 스코어로 인물의 감정선에 역성을 들었던 전작과 달리, 그는 전혀 다른 음감을 이 영화에 선보인다. 가난 때문에 약탈을 감행했던 텐더 트리오의 시절부터 흉폭한 제뻬끼노의 시대까지 숨 가쁘게 질주하는 영상을 살펴보던 그는 음악의 힘이 정작 필요한 곳은 인물이 아니라 도시 자체임을 깨달았다. 리우 데 자네이로, 신의 도시라는 공간과 60년대에서 70년대를 가로지르는 시간. 그가 브라질 대중음악의 흐름을 이루는 MPB(Musica Populaire Brasileira)로부터 골라낸 삽입곡들은 실재하는 영화의 시공간에 풍요로움과 사실성을 더한다. 


빈곤과 독재로부터 되레 음악적 영감을 수혈받은 브라질 음악의 비옥함 역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60년대를 대표하는 뮤지션으로 사운드트랙에 초대된 위대한 삼비스따 까르똘라Cartola. 대부분의 인생을 가난하게 살았지만 삼바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까르똘라의 음성에는 도시에 아직 한줄기 여명처럼 남아있는 순수함이 느껴진다. 아고고스와 꾸이까 리듬으로 마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는 'Alvorada(새벽)'과 까발레이라의 죽음으로 마감하는 60년대를 기타 선율에 아로새긴 'Preciso me encontrar(내게 필요한 것을 찾아)'. 절박한 심정으로 마을을 떠나려던 까발레이라와 그의 주검을 기록하는 카메라에서 자신의 미래를 발견하는 소년의 시선이 삼바 리듬 속에 교차한다.


<시티 오브 갓>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ㅣ Milan Records(2002)


까르똘라의 삼바가 60년대를 소환하는 음악이었다면, 70년대 신의 도시에 머무는 음악은 소울과 펑크 그리고 록이다. 록 음악이 그랬던 것처럼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과 오티스 레딩Otis Reading의 아메리칸 소울은 60년대 중반부터 브라질 음악에 영향을 미친다. 그 여파로 탄생한 블랙 아메리칸(Black American) 스타일의 음악은 미국 남부지방의 흑인과 같은 피부색을 공유하는 브라질인에게 공감을 받았다. 


비록 복수 때문에 총을 들었지만 절대로 무자비한 폭력배가 되지 않겠다고 소리치는 마녜 갈리냐의 속내를 짚어낸 듯 절묘한 제목이 인상적인 윌슨 세묘날Wilson Semonal의 'Nem vem que não tem(내겐 어림없어)'나 사랑에 빠진 베네가 안젤리카와 함께 듣던 힐돈Hyldon의 감미로운 보컬 그리고 제뻬끼노의 죽음이 신문의 머리기사로 장식될 때 흐르던 띰 마이아Tim Maia의 펑키한 음률은 브라질을 대표하는 소울 뮤지션으로 꼽히는 이들의 정수나 다름없는 노래들. 거기에 히따 리Rita Lee와 더불어 70년대 브라질 록의 창시자로 추앙받는 하울 세이샤스Raul Seixas의 'Metamorfose Ambulante(걸음의 변화)'는 안경 너머 도시 바깥을 향한 베네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담는다. 신의 도시를 등지려는 그의 소소한 몸짓이 세이샤스의 음성에 힘입어 거룩한 변화처럼 다가오던 순간이다.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이 영상으로 시간을 자유자재 조립했다면, 안토니우 핀투와 에드 께르테스Ed Côrtes는 음악을 통해 시간을 맵시 있게 재구성한다. 스코어 작곡을 위해 그들이 MPB의 틀 안에서 주목한 장르는 블랙 아메리칸과 펑크, 삼바 그리고 펑크와 삼바를 결합시킨 펑크-삼바다. 속도를 달리하는 <시티 오브 갓>의 감각적인 이미지를 전적으로 삽입곡에만 의지한다는 것은 무리였기에, 그들의 영화음악도 시대를 의식해야 했던 것이다. 시퍼렇게 날이 선 칼과 공포에 질린 닭을 교차로 편집하는 시퀀스에 흐르던 'Convite para Vida(삶으로의 초대)' 역시 그렇게 탄생된 삼바. 수 조르지Seu Jorge의 보컬 아래로 아이들의 목소리를 포개어 놓은 이 경쾌한 삼바의 제목이 '삶으로의 초대'라니, 신의 도시에서 삶과 죽음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거칠게 두드리는 불길한 노크로 사운드트랙을 여는 'Meu nome é Zé(내 이름은 제)', 70년대의 시작을 알리는 'Funk da Virada(전향의 펑크)' 같은 스코어들이 도시에 먹구름을 드리운다. 닭장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허름한 파벨라, 그 사이로 연결된 미로 같은 거리, 땀으로 번들거리는 검은 피부의 감촉, 폭력과 살인에 마모되어 가는 사람들. 바테리아 드럼과 전자 기타의 그루비한 사운드, 매끄러운 트럼펫 음색과 버무려진 이미지가 블랙스플로테이션(Blaxplotation)의 그것을 연상시킨다(블랙스플로테이션과 브라질 음악의 상관관계는 한 번쯤 곱씹어볼 문제다).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고 이젠 그것이 운명이 되어 버린 비열한 도시. 그 무시무시한 광경을 차마 바라볼 수 없어 코코바두 산 위에 섰던 예수는 스스로 두 눈동자를 포기했던 것이 아닐까. 오늘도 폭염 속 신의 도시에는 삼바가 흐를 것이다. 




01 [02:30] Meu nome é Zé 

02 [01:24]  Vida de otario 

03 [01:36]  Funk da Virada

04 [02:28]  Estoria da Boca

05 [03:29]  Na rua, na chuva, na fazenda(Casinha de Sapê)_ Hyldon 

06 [02:02]  A Transa 

07 [03:47]  Metamorfose Ambulante_ Raul Seixas 

08 [02:32]  Nem vem que não tem_ Wilson Simonal

09 [02:55]  Preciso me encontrar_ Cartola 

10  [02:34]  Alvorada_ Cartola 

11 [02:59]  Convite para Vida_ Seu Jorge 

12 [06:03]  O caminho do bem_ Tim Maia 

13 [01:08]  Morte Zé Pequeno

14 [07:25]  Batucada_ Remix by DJ Camilo Rocha & DJ Y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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