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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김민정 Apr 28. 2020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여행

김민정의 제주산책 walk&talk (18)

기상과 동시에 랜선 요가 클래스 접속. 발리의 푸른 초원을 배경으로 한 요가 영상을 따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오전에는 지난해 베트남에서 산 원피스를 꺼내 입고 동네를 산책한 후 점심으로 싱가포르의 맛을 고스란히 재현한 칠리크랩과 달걀 볶음밥을 먹는다. 여행의 추억을 소환하는 아로마 향초를 피워두고 휴대폰 속에 저장된 사진들을 들춰보며 다음은 어디로 떠날까 꿈꿔보다가 저녁이 되면 식전주를 즐기는 이탈리아의 아페리티보 문화를 내 집 식탁에 옮겨와 멋을 부려본다. 이윽고 깊은 밤, 오디오 채널에서 흘러나오는 여행지의 ASMR을 들으며 꿈나라로!     


한 여행 사이트가 제안한 일상 속에서 휴가지에서의 마음 상태(Vacation State of Mind)를 불러일으키는 방법을 참고해 구성해본 하루다. 처음엔 “뭘 이렇게까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한 줄 한 줄 상상하며 적다 보니 적잖이 당황스럽다. 실제 여행을 계획할 때의 설렘까지는 아니더라도 근래 여간 뛸 일 없던 가슴이 콩닥콩닥 반응을 해온 까닭이다.       


집에서 잘 노는 방법이 화두다. 인스턴트 커피와 설탕과 따뜻한 물을 천 번 정도 저어 만드는 달고나 커피가 대표적이다. 한국발 유행이 동남아, 미국, 유럽까지 상륙했다. 외국인들이 유일하게 아는 한국말이 ‘빨리빨리’라는 우스갯말이 있는데, 뭐든 신속하게, 시간을 허투루 쓰는 걸 좀처럼 견뎌내지 못하는 우리들은 코로나 19속에서도 별의별 재미를 찾아내는 것 같다.     


프리랜서 작가인 나는 집이 곧 일터고, 일터가 곧 집이다 보니 집에서 혼자 잘 노는 101가지 방법에 대해서라면 아주 잘 알고 있다. 하나부터 일일이 세어본 건 물론 아니고, 그만큼 집에서만 지내는 생활에 꽤 능숙하단 얘기다. 기질적으로도 ‘집순이’가 잘 맞는 편이지만, 재택근무자로 살다 보니 자연스레 터득된 면도 없지 않다.     


그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하루에 한 시간쯤 초보가 되는 것이다. 직업인으로 살다 보면 관련된 사람만 만나고 관련된 정보만 습득하게 된다. 익숙하고 편하지만, 그 말을 우린 이따금 지루하다는 말과 동의어로 쓰지 않던가. 초심자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두면 일상에 활력소가 된다. 가령, 언어를 배운다든가 식물을 키운다든가 하는 일. 그건 여행의 본질과도 비슷하다. 돈 들여 시간 들여 낯선 곳 낯선 사람을 굳이 찾아 떠나는 이유는 결국 새로움을 발견하기 위함이니까. 여름 휴가 계획으로 가을, 겨울, 봄을 살아내듯 그 한 시간이 나머지 스물세 시간을 살게 하는 힘이 되는 걸 매일같이 경험하고 있다.     


그동안, 여행은 대체재가 없다고 믿어왔다. 짐을 꾸리고 기차나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해 걷고 먹고 봐야만 ‘여행’이라고. 그게 우리가 알던 ‘여행’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19로 바뀐 세상에서 ‘여행’은 여러 가지로 치환된다. 영상으로, 음식으로, 음악으로, 취미로, 새로운 것에 대한 탐닉으로.      


누군가 그랬다. 여행은 ‘여기서 행복할 것’의 줄임말이라고. 듣기 좋은 말로만 여겼는데 새삼스레 뜯어보게 되는 건 아무래도 요즘 분위기 탓일까? 코로나 19 이후 우리의 삶은 이전과는 같을 수 없을 거라고들 한다. 그래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의 여행은 어떻게 정의될까? 


[김민정의 제주산책 walk&talk]는 동명의 제목으로 제주도의회에 연재 중인 칼럼을 묶은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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