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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김민정 Jul 28. 2020

재난이 천국의 문이 될 수 있도록

김민정의 제주산책 walk&talk (21)

인터넷 한 커뮤니티에 ‘아홉 살 딸 아이의 소원’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그 소원이란, 친구들하고 손잡는 것,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것, 책상 붙여 나란히 앉아 공부하는 것, 투명칸 없이 같이 밥 먹는 것이었다. 너무나 당연했던 것들이 소원이 된 시대. 가슴에 돌 하나 얹은 기분이 들던 차, 아이의 이어진 말에 그 돌이 순식간에 커다란 바윗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근데, 어른들이 놀러 다니면서 코로나 옮겨. 나도 바닷가 가고 싶은 거 꾹 참는 건데… 어른들은 왜 그래?”     


제주에 잇따라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며 온 섬이 초비상이었다. 해당 지역의 학교들엔 등교 중지령이 내려졌고, 사람들의 왕래가 잦던 거리도 싸늘한 적막만 흘렀다. 진행하는 라디오에도 그곳의 주민들로부터 ‘유령 도시 같다’, ‘마트도 못 가고 줄곧 집에만 있다’는 문자가 날아들었다. 하필 날씨마저 우중충했다. 머릿속에 두 글자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재난, 이건 그야말로 명백한 재난이었다.      


재난이 훨씬 더 강력해지고 훨씬 더 일상화되는 시대. 현대사회를 이렇게 표현한 이는 미국의 저술가 리베카 솔닛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사람들은 그동안 중요하게 여겼던 모든 가치에 의문을 갖고 더 본질적인 무언가를 응시하게 되며 그 결과 놀라운 깨달음을 얻는다”고 했다. 정치, 경제, 산업, 교육 등 전 분야에 ‘뉴 노멀’이 중시되는 사회 분위기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재난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겸허히 수용하고 그에 맞는 표준을 마련하겠다는 의미이니 말이다.      


관광 분야도 예외일 수 없다. 무조건 빗장을 걸어 잠그던 초기와 달리, 이제는 코로나19 속에서도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하고 있다. 해외 수요가 국내로 몰리면서 지자체마다 뉴노멀 관광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분주하다. 코로나 19에 직격탄을 맞았던 대구도 최근 소규모, 비대면 중심의 스마트 관광 도시를 만들겠다고 공표했다. 제주형 관광의 뉴 노멀이 필요한 시점이다.     


동시에 제주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여름 휴가철 방역도 함께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개학이 늦어진 만큼 방학도 미뤄져 8월 중순 이후가 본격 휴가철이 될 거라고 한다. 또 한 번의 고비가 될 수 있다. 이번 제주 지역 코로나19 연쇄 감염이 잠시 주춤했던 관광 시장이 회복세로 돌아서던 시기에 발생한 것을 보면 말이다.


어렵다. 모두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을 본다. 재난이 일상화된 시대가 현대 사회라면 새로운 일상을 만들겠다는 다짐들을 본다. 폐허를 응시하라던 리베카 솔닛은 말한다. “재난은 그 자체로는 끔찍하지만 때로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뒷문이 될 수 있다. 적어도 우리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우리가 소망하는 일을 하고, 우리가 형제 자매를 보살피는 사람이 되는 천국의 문 말이다.”     


아홉 살 소녀에게도 말해주어야지. 좋은 시대를 물려주지 못해서 미안해. 하지만 재난은 언제고 반복될 테니 말이야. 어떻게 이겨내는지를 보여줄게. 그런 어른들이 될게!


[김민정의 제주산책 walk&talk]는 동명의 제목으로 제주도의회에 연재 중인 칼럼을 묶은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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