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 경유지가 될 곳은 오 페드로우소라는 도시였다. 아르수아를 떠나 오 페드로우소로 향하는 아침 나는 다시 한번 중간에 나타나는 한 바에 들렸다. 무엇인가에 홀린 듯이 앞으로만 향해가는 게 아닌 여유를 가지고 제 때 제 때 그 순간을 즐기는 모습은 순례길의 막바지에 생긴 새로운 루틴이었다. 그렇게 카페 콘 레체(카페라테) 한 잔을 시켜 마당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홀로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홀로라고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순례길에서의 대부분의 시간은 결국 혼자 있는 시간이었다. 아침의 기운은 공기가 무겁고 청초했으며 파란 하늘은 꼼꼼하게 페인트를 발라 놓은 듯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간혹 혼자서 여행을 하는 것에 대해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 그렇구나' 정도의 표현을 넘어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인생이 곧 여행이고 여행은 그 인생의 단축판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렇게 비추어보면 홀로 여행하지 못한다는 것은 독립적으로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과 비슷한 결의 이야기라고 생각을 한다. 내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와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머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별 반 다를 게 없는 것이다. 내 안의 소리를 제대로 듣기 위해선 분명히 나 홀로 존재해야만 한다. 내 안의 소리와 외부의 소리는 그 속성과 내용의 다름 때문에 항시 힘겨루기를 하기 마련이다. 외부의 소리에 내 안의 소리가 완전히 묻혀버리면 '나'라는 사람의 고유한 소리가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고독을 즐긴다는 것은 내 안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며 어떤 물음에 스스로 대답하는 것이고 어떤 미련을 떨쳐버리는 것이기도 하며 어떤 문제에 힌트를 찾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답답한 현실에 비전을 발견하는 것이기도 하다. 섞여 있는 것에만 치중하게 되면 나 자신의 고유성은 조금씩 소멸해 간다. 그것은 나라는 존재가 세상 속에 살아 숨 쉬는 이유도 함께 사라진다는 것 아닐까?
고독을 씹는다는 것은 그런 의미인 것 같다. 고독은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다루냐의 문제일 뿐이다. 고독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재미를 더 이상 느낄 수 없다면 그것은 외부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 양분을 섭취할 수 없는 어떤 정서적 치주질환의 상태에 도달한 게 아닐까. 순례길에서 잃어버렸던 프리드리히 니체의 책은 그 페이지를 넘기고 넘겨도 언제나 혼자될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