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환경의 180도 전환
수첩을 들고 주간 회의에 들어간 것은 나에게 있어 너무도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심신으로 체화되어 의심의 여지조차 없는, 하지만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노트북을 펼쳐놓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서울쥐와 시골쥐처럼 대조를 이뤘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모두 PC가 아닌 업무용 노트북을 사용하고 있었다. 자신의 자리에서 업무를 하다가 언제든 이동에서 회의에 사용하는 목적이 있었다.
7년을 일했던 이전 일터에서의 주간 회의란 '토의'나 '토론'을 뜻했다. 그 시점의 중요한 안건을 풀어헤치며 각자의 견해와 경험, 해석과 판단, 입장, 가치관 등이 발언이라는 주머니에 담겨 회의 공간을 채웠다. 때로는 격론이 펼쳐지기도 하고 감정이 섞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내용의 정확한 기록보다는 결론이 무엇인가였다. 그 결론을 키워드로 남기는 것은 팬과 노트만으로도 충분한 일이었다. 그것은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주관과 자율을 높은 수준으로 보장하는 조직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주간 회의란 그 성격이 사뭇 다르다. 가장 중점적인 키워드는 '공유'와 '전달'이다. 회의는 공유문서에 각자 기록한 주간 업무 보고를 기반으로 진행되며 맡은 업무의 추진 상황, 문제점, 완료 여부 등이 담당자 별로 보고된다. 상위 회의체의 의결 사항, 중장기 계획 같은 것들도 회의 시간을 통해 전달되는데 이 또한 내부 전자결제시스템에 올라가 있는 문서 내용 중 중요한 사항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렇게 진행되는 회의의 내용 또한 회의록으로 작성되어 전자 결제 시스템 상에 다른 사람들도 열람할 수 있는 상태로 남게 된다.
실현 가능한 최대한의 수준으로 모든 업무 상황을 공유한다는 것은 '세세한 기록'이라는 행동이 높은 가치를 부여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회의에 참전하는 사람들의 무기가 팬과 종이가 아니라 노트북이 되는 것은 그런 면에서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상황을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나의 마음에는 약간의 긴장감이 밑돌았다. 노트와 노트북이라는 이 상징적인 대조는 나의 업무 환경이 완전히 바뀌어 버릴 것이란 걸 암시하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