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박사를 취득하며 회사를 옮겼다. 만 11년 5개월의 경력. 이번이 세번째 이직이다. 한 곳당 3~4년 이상씩은 꼬박 다닌 셈인데, 면접을 보면 가끔 듣는 질문이 있었다. "이직을 꽤 하셨네요?" 이 질문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 회사에 다니다가 또 언젠가 나갈 거 아니에요?"일 것이다.
또래 직장인을 만나면 이들 역시 비슷한 질문을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대개 10년 정도 직장 경력으로 3~4번 가량의 이직 경험이 있다.
나는 이직의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산업이 바뀌고, 트렌드가 바뀌어서다. 오늘의 신(新)산업이 내일의 구(舊)산업이 되는 주기가 너무 짧아졌다.
40~50대에 형성되어 있는 지금의 기성 세대는 비교적 경제가 탄탄하던 시절 취업했을지 모르겠지만, 현재는 취업 프레임이 하루가 다르게 바뀐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안정적인 직업이 우선시되어 '공무원이 대세였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너도 나도 자산 모으기 열풍이 불면서 '공무원 신화'가 깨지기 시작했다. 직업과 직장의 프레임이 어제와 오늘이 그렇게 차이나는 것이다.
조금 다른 얘기. 오늘 유튜브에서 한 인터뷰를 봤는데 참 감명깊었다. 한국과 실리콘밸리 개발자들의 멘토라고 불리는 한기용 님의 인터뷰였다. 한국과 미국의 내로라 하는 IT 기업을 다니신 이후에 해외 스타트업의 자문 역할도 하시고 근무도 하셨던 분이다. 이분은 회사를 11곳 다녔다. 꽤 연배가 있는 분이신 점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한 횟수로 이직하신 거다.
가장 인상깊었던 건 바로 다음의 멘트였다. "회사를 짧게 다닌 걸 후회하는 게 아니라, 회사를 길게 다닌 걸 후회해요."
회사를 다니는 것은 어찌 보면 자아의 발견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회사를 자기계발 목적으로 다니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장기적인 측면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내가 재밌게 일 할 수 있는 계기가 무엇인지 물색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덕업일치'라고 해야 할까. 내가 즐겁고 잘할 수 있는 것과 회사가 나를 에게 원하는 것이 만나는 지점에서 직원과 회사의 동시 성장이 이뤄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회사의 업(業)이 달라질 수 있듯이, 직원이 잘하는 것과 (미래에) 잘하고 싶은 것은 달라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직원이 이직할 수 있는데, 만약 직원이 새 직장이나 직무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이건 직원에게나 직장에나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런 측면에서 '맞지 않는' 옷을 오래 입는 게 후회된다고 한기용 님은 언급했을지 모른다.
만약 한 기성 세대가 당신에게 "왜 이직을 자주 하셨어요?"라고 묻는다면 이건 질문을 한 사람 스스로가 한 우물에서 오래 지냈다는 얘기일 수 있다. 또는 지금의 젊은 세대와 달리, 경기 안정권에서 별 다른 적성에 대한 고민 없이 원서 넣는대로 직장에 들어가 지금까지 쭉 '그런대로' 지냈던 세대일 수 있다. 이들을 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개인의 이직 경험을 함부로 생각하는 이들에 대한 반박일 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자신이 회사를 옮기려는 결정이 개인의 장기적인 목적과 부합하다면, 그리고 그 결정이 도피성이거나 윤리적 이슈에 따른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부끄러워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중요한 건 내가 하는 일이 내가 원하는 일인지, 최소 내가 하는 일에 있어서 만큼은 내가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될 만큼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지 여부 뿐이다.
내 필드에서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다면, 불필요한 말을 하던 이들에 대한 기억은 그저 신기루에 그치고 말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