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커리어에선 하나의 변곡점이 있었다. 8년이 넘는 시간을 언론인으로 일했는데, 그 이후로 박사를 하게 되면서 연구인이 되었다.
직장과 병행하며 한 연구 생활이었는데, 나름 열심히 한 거 같다. 1년 6개월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쓴 논문은 총 14편. 6편은 게재했고, 3편은 투고했으며(이 중 1편은 accept), 나머지 5편은 working paper로 투고 대기 중이다.
그런데, 내가 열심히 한 것과 연구인으로서 경쟁력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미국 박사에 비해 국내 박사는 아무래도 시장 가치가 덜할 수밖에 없다. 같은 국내 박사이더라도 나처럼 다른 커리어 출신이라면 좋게 안 보일 수 있다.
가장 안 좋은 점은, 커리어 상의 일관성 결여랄까. 의외로, 세상은 커리어의 다양성보단 '하나에 올인한 경우'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조금 더 큰 거 같았다. 아무래도 채용을 하는 입장에선 더더욱 그럴 수 있겠다.
언론인 출신 박사보단, 꾸준히 연구만 했던 박사가 더 나아보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일관성은 있을테니.
잠시 딴 얘기. 얼마 전 친구와 만나 식사를 했다. 놀랍게도, 이 친구는 내가 (주 전공인) ESG를 연구하기 훨씬 이전 시점에 ESG를 연구한 것을 권한 바 있다. 놀라운 것은, 이 친구는 연구자도, 전문 투자자도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돈이 가는 흐름'에 대하여 상당히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식사 자리에서 그 친구는 내게 ESG 대신 새로운 트렌드, 이를테면 블록체인, 토크노믹스 등에 관심 가질 것을 권했다. 이런 트렌드가 앞으로 대세로 떠오를 것이란 얘기였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내가 큰 흐름에서 전공이 재무금융이라는 것이다. 이 전공은 ESG 뿐 아니라 블록체인, 주식, 채권 등을 모두 망라한다. 전공이 보편성을 띤 만큼 좀 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어제 ESG를 전공한 나는, 내일 블록체인을 공부할지 모른다. 정확히 말하면 내 전공이 일관성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산업 트렌드 변화의 주기가 그만큼 짧아지는 거일 수도 있겠다. ESG이든 블록체인이든, 세상의 동태성을 읽으며 진단하는 경제학 박사는 계속 살아남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어찌 보면, 내 전문성은 ESG도 아니고, 블록체인도 아닐지 모른다. 급변하는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는 것, 이것이 내 전문성일지 모른다. 5년 후, 10년 후에 내 자신이 무엇을 할지는 전혀 파악이 어렵다는 얘기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