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학부생일 때만 해도 박사, 특히 경제학박사(경박)는 정말 똑똑한 사람들이 하는줄 알았다. 물론,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지금은 워낙 국내 아웃풋이 많아지고, 다양한 학문을 하는 사람이 경박을 많이 해서 그런지 몰라도 과거에 비해선 진입 장벽이 아주 높진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직장인 출신인 나도 했으니.
종종 후배들의 진로 고민을 들으면 경박을 추천해야 되냐, 말아야 되냐를 고민할 때가 꽤 있다. 물론 예전 글에서 포스팅한 것과 같이 미국 박사와 국내 박사의 차이는 여러모로 발생하긴 하지만, 오늘 글은 좀 general하게 다뤄보고자 한다.
박사 졸업을 하고도 꾸준히 연구 활동을 하는 내가 느끼는 바로는, 일단 경박 지원자, 혹은 관심을 갖고 있는 학생들의 숫자는 크게 줄어든 거 같다. 그 이유는 바로, 로스쿨 진학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경제학이 좋은 전공인 건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박사학위'는 '라이센스'가 아니며, 대중적으로 보더라도 변호사라는 전문 직종을 포기하고 올인할 만큼 메리트가 높은 분야인지는 한번 깊이 생각해볼 만 하다.
우연히 찾은 건데, '전문직'과 '경제학 박사'를 키워드로 검색하면 의외로 미국 경제학 박사 코스를 했던 전문직 분들이 꽤 나온다. 상당수는 코스워크까지만 하고 무슨 사연인진 몰라도 돌아와서 로스쿨이나 의전원을 가서 전문직이 된 분들 같다. 모르긴 몰라도, 상당수의 경박보다는 이 분들의 금전적 페이와 대우는 또 다르지 않을까, 란 생각도 해본다.
또 하나 아쉬운 거는, 경박은 가성비도 따져봐야 한다. 워낙 전공 자체가 수학, 그리고 통계적으로 깊히 들어가는 터라 상당히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미국 박사는 7~8년까지 하는 경우도 보긴 했는데, 같은 기간이라면 역시 앞에서 언급한대로 다른 전문직 자격증을 노리는 것이 가성비 측면에서 더 나을 수도 있다. 특히나 경박은 뽑는 TO는 연구원마다 제한적일 뿐만 아니라 원하는 기관에 입사하저라도어찌 보면 그저 '박사학위 있는 직장인'에 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내가 누군가에게 경박을 추천한다면,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응용 능력이다. 일반 입사에 입사하든, 연구원을 들어가든, 적지 않은 기간을 통해 쌓아올린 분석 역량은 다각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전통 경제 연구는 물론이고, 데이터 사이언스나 머신러닝에 이르기까지 정말로 연결이 안 된 고급 학문이 없을 정도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일반적인 기업에서 그 정도의 업무 역량을 박사급에게 기대하고, 그런 역량에 걸맞는 대우를 해줄지는 별개의 문제이긴 하다.
두번째로는, 높아진 기대치다. 나 역시 다양한 전공의 박사를 알긴 하지만, '경제학 박사'라고 하면 최소한의 경제 전망, 금융 지식, 그리고 수치 산출에 대한 정확도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다. 조직 곳곳에 적재한 테크니컬한 이슈에 대해선 적어도 '한 마디'는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기대치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나에 대해 실망할 여지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평소 내공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
회사도 다니며, 또 경제학 논문도 작성하면서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은 것은 사실이다. 경제나 금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나도 모르게 한 마디를 더 보태는 자신감이 생기는 것도 하나의 장점인 거 같다.
참. 그리고 앞서 경박을 비추천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도 언급하긴 했지만, 이를 거꾸로 말하면 '경제학에 진심으로 애정이 있는 사람'이 경박 학위에 도전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는 뜻이기도 할 거 같다. 역설적으로. 무엇이든 간에, 내가 정말 좋아서 하는 일이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고되더라도 잘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