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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ish Mar 01. 2024

문과생 전원이 로스쿨에 몰린다면

근래 입사한 20대 RA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 "문과 졸업생의 진로는 로스쿨 아니면 나머지"라는 것이다. 그 '나머지'라는 것은 아마 기업체나 언론사 취업 등 또 다른 문과 진로가 될 것이다. 회계사(CPA)나 세무사와 같은 (변호사에 버금가는) 전문 직종도 선택권이 될 수 있겠다. 그런데 한 가지 격세지감인 것은, 요즘 20대 문과 학생의 진로가 너무 천편일률적으로 정해진다는 것이었다.


05학번인 내가 대학을 다닐 초창기엔 사법고시가 법조인이 되는 유일한 루트였다. 물론 사법고시가 최고 난이도의 시험인 건 맞지만, 또 다른 문과 학생의 선택권도 많았다. 언론고시, 기업체 취업 등도 유망한 선택의 영역으로 꼽혔었지, "로스쿨 취업이 안되면 선택하는 '나머지'"는 아니었던 거 같다.


경제학계에서도 미국 열풍이 다소 식는 분위기가 감지되곤 했다. 국내외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하여 학계에 진출하는 학생들이 많았던 시절도 있었으나, 지금은 '가성비'를 고려해 경제학 유학 대신에 로스쿨을 진학하는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다. 과거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가끔 일부 변호사 분들의 프로필을 보면 '미국 ☐☐대 경제학 박사 수료'라는 타이틀을 가진 채 국내에 유턴해 국내 로스쿨을 가신 분도 종종 있곤 하다. 미국 유학을 하며 수천만원 이상의 유학비를 감당하는 것보단, 우선 시험을 붙기만 하면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낼 수 있는 법조인의 길을 택하는 경우가 많아진 거 같다.




로스쿨 열풍이 강한 것이 꼭 나쁜 일일까. 그렇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경기가 호황이든 불황이든 소송은 늘 발생하며, 법률 자문도 필요하다. 처우와 대우의 차이일 뿐이지 언제든, 어디든 법조인은 늘 필요하다. 이는 회계사(CPA) 등 다른 전문 직종에도 마찬가지인 내용이긴 하다.


다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요즘 대세로 여겨지는 로스쿨이 아니라 하더라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일정 수준의 경지에 이르거나, 어디에 밀리지 않는 전문성을 갖춘다면 업무적 평판과 신뢰도는 따라오기 마련이라는 점이다. 쉽게 말해, 나의 업무 영역에서 '대체 불가능성'을 인정 받는다면 사실 이 역시도 '라이센스'와 같은 사회적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다.


조금 다른 얘길 해보겠다. 내 또래는 어렸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공부 잘 해서 ☐☐이 되라"는 조언을 받곤 했다. 그런데, 나이 마흔을 앞둔 지금 이를 다시 돌이켜보면, 이는 다소 잘못된 접근의 프레임이라고 생각한다. "☐☐이 되라"고 한다면, 우리는 10대의 입시 경쟁을 지나 20대의 취업 전선에 이르러서 ☐☐이 되기 위한 경쟁에 몰리게 된다.


그러나 무엇이 되는 것보다, "어떤 분야에서든 최고가 되라"는 조언을 우리는 들은 적이 있는가? 프레임을 이렇게 바꿔보면, '무엇이 되는 것(전문직 등)'과 '최고가 되는 것(장인정신)'은 다소 다른 접근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물론, 당연히 전문직이 되어 최고가 되는 선택권도 존재한다.)




다소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모든, 아니 99%에 가까운 문과 졸업생이 로스쿨에 지원하고, 또 지원하기 위한 자격을 갖추기 위해 다 년 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나머지 1%의 문과 졸업생은 무슨 선택을 내리게 될까? 이 1%에 가까운 이들이 특정 직군에 매달리기보단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에 대하여 경지에 이르기 위한 노력을 벌이면 어떻게 될까? 비전문직이라도 경지에 이르는 실력을 갖추는 것은 평범한 전문직보다 더 좋은 사회적 인정을 받을 가능성도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은, 어찌 보면 기성 세대가 그간 젊은 세대에게 제공하지 못한, 중요한 질문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정 직업을 얻은 사람은 많지만, 그 분야에서 최고의 성과를 거둔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그리 많지 않다. 이는 법조/비법조 직군 모두에 해당되는 얘기인 거 같다. 그러니, 내 적성에 잘 맞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영역에서 남이 범접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는 것으로 목표를 설정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끝]

작가의 이전글 ⌜처음 만나는 ESG⌟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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