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공간 다른 느낌
이은새/철봉운동2018
어릴 적 운동장에 설치된 철봉은 나에게 즐거움과 놀라움을 선사해 주는 놀이터였다.
철봉과 나란히 함께하던 구름사다리, 정글짐, 사다리 타기!!!
하굣길에 책가방 내던지고 운동장을 떠나지 않고 놀게 해주던 파라다이스.
단단한 쇠기둥으로 만들어진 설치물들은 겉보기엔 오색찬란하게 페인트가 칠해져 있어서 마치 무지개 세상을 연상케 해주었다. 한동안 만지고 놀면 손에서 피 맛이 나는 쇠 냄새가 진동을 하게 된다. 하지만 도전을 하고 성공을 하고 스스로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을 맛보게도 해주었다. 높은 곳에 올라서고 세상을 거꾸로 보고 마치 구름 위에 있는 듯 세상을 재미있게 느끼고 현실과 다른 색다른 경험을 하게 해주는 그 공간이 그 시간이 즐거웠다.
철봉은 신기했다. 봉하나가 가로로 설치되어 있을 뿐인데, 요술을 부리듯 다양한 풍경이 펼쳐지는 상상을 가능케 해주었으니 말이다. 하늘을 나는 슈퍼맨도 되었다가 맛있게 익어가는 바비큐 닭처럼 원시시대 사냥감이 되어 매달려 있듯 대롱대롱 매달려 있기도 하고 두 팔에 의지하고 두 발을 땅에서 띤 채 그네처럼 왔다 갔다 하며 움직임을 즐기기도 하며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화를 줄 수 있는 그런 장소가 되어주었다.
철봉에 올라 세상을 뒤집는 게 내 손안에 달린 순간 뱅그르르 돌아 10초 동안 얻어내는 내가 만들어내는 세상이 주는 짜릿함, 얼굴로 쏠리는 피들이 핏줄을 서게 하고 그 세상을 지켜주기 위한 손목에 쥐어지는 힘줄들의 도움으로 얻어내는 그 순간은 어린 내가 만들 수 있었던 첫 번째 색다름이었다.
날다람쥐처럼 손과 발의 협동심을 발휘하여 철봉을 가운데로 하고 올라타기도 하고, 다리를 걸어 안정감을 확보한 후 두 팔을 자유롭게 풀어주기도 하며, 다람쥐가 묘기를 부리듯 그곳에서 자유로웠다. 지금으로선 상상도 되지 않는다. 지금은 온몸이 뻣뻣해져 있음이 느껴지고 있기에 날다람쥐는커녕 동네 뒷산만 한 바퀴 돌고 와도 입에서 나는 소리는 " 아이고, 허리야" 세월이 야속하다.
그때의 나는 높은 곳도 무서워하지 않고, 모험을 좋아하고, 온종일 하늘을 거꾸로 올려보며 세상을 다 가진 듯 힘듦이 힘듦인지 모르고, 꿈은 꾸는 대로 이루어지리라 믿으며, 마치 밝은 미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세상에 대해 기대심이 가득했던 그 어린 날을 뒤로한 채 지금의 나는 걱정이 많아지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비하고 준비하느라 세상을 거꾸로 보며 색다른 늘 맛보는 대신 똑바로 서서 흔들림 없이 세상을 직시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하여 나의 불안과 싸우며 세상을 거꾸로 보며 즐거워하던 어린아이 대신 나의 세상이 뒤집히는 일이 생길까 봐 무서워하고 있게 된 것이다. 두 발을 땅에서 다 띄어 놓고도 하늘을 거꾸로 마주해도 무섭지 않고 신기하고 흥미로워하던 나는 이제 두 발이 떨어지는 순간을 무척 긴장하게 되며, 높은 곳도 난간도 사다리도 무서워하게 되는 고소 공포증을 가진 어른이 되었다.
이은새 작가의 이 작품은 처음엔 어릴 적 철봉 놀이가 생각나 반가움으로 시작되었다. 한참을 추억을 회상하며 이리저리 그림 속을 항해하며 여행을 하고 돌아오니, 신선들 바둑두는 것 구경하다 도낏자루 섞는 줄 몰랐던 나무꾼처럼…. 그림 속에서 놀다 나와보니 지금의 세상을 만나버린 것처럼 다시 본 그림은 첫 느낌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생존게임! 살아남은 자가 상금을 타거나 함께 게임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라이벌이 되는 구조 속 게임. 그 게임 속 생존자들처럼 옆 사람 눈치를 보며, 경쟁구조 속에서 즐거움은 잊은 채 발버둥을 치며, 세상에 흔들리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무지갯빛이 가득했던 학교 운동장 파라다이스는 사라지고, 잿빛 도심 속 개인의 영광을 위해 약육강식에 의해 먹고 먹히며 경쟁자를 이겨야지 살아남아 버리는 세상. 생존게임 속 모습이 그대로 실행되고 있는 현실 속 모습같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