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마.
후추와 내가 연애를 시작하고 100일쯤 지났을 때 계절은 봄을 지나 여름이 됐다.
우리가 연인으로 맞는 첫 여름이었다.
나는 한강, 남산, 경복궁 데이트 코스가 잔뜩 있는 서울을 좋아했고, 매 주말 데이트는 활동적이고도 색다른 걸 해야 했다.
후추는 지금까지도 내가 원하는 건 뭐든 해주는 사람인데, 그 당시에도 내가 서울대공원에 가자고 하거나 한강에 자전거를 타러 가자고 하거나 선유도공원에 사진 찍으러 나가자고 하면 무조건 "응응! 좋아!" 했다.
그날은 아마 8월 중순쯤. 내가 좋은 데이트 장소를 안다며 후추를 선유도공원으로 데려갔다. 사진도 찍고, 뜨끈한 우동도 먹으며 한참을 노는데 후추 낯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내가 손을 잡으려 다가가도 멀리 가버리고, 집에는 대체 언제 가느냐는 듯이 시계만 쳐다봤다.
후추는 내가 가까이 오는 게 싫어 보였다. 옆으로 오지 마.라고 말은 안 하지만 눈빛은 이미 곁에 가면 화를 낼 것처럼 화가 나 있었다.
변하지 않을 것 같던 후추에게도 권태기가 온건가.
나는 후추가 왜 갑자기 화가 났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로 기가 죽어 집에 돌아왔다.
진지하게 우리 관계를 다시 생각해봐야 하나 고민을 하고 후추에게 전화를 걸어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냐고, 이제 내가 싫은거냐고 불쑥 화를 냈다.
내 기세에 놀란 후추는 뜻밖에 이야기를 어렵게 꺼냈다.
"사실 나는 더위에 약해. 조금만 더워도 땀이 비 오듯 흐르는데 오늘은 우동까지 맛있게 먹고 사진 찍느라 이리저리 옮겨 다녔더니 너무 땀이 많이 나서 땀냄새가 나서 그랬어. 냄새를 맡으면 네가 날 싫어하게 될까봐."
후추는 그 냄새를 나에게 맡게 하는 게 싫었다고 했다. 미안하다고도 했다.
이 깍쟁이 같은 여자애가 "너 냄새나네. 그럼 안녕." 하고 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2007년 여름 내내 나에게 소원했던 후추는 내 손이 너무 잡고 싶고, 포옹으로 배웅하고 싶고, 팔짱을 끼고 걷고 싶은 마음을 여름엔 꾹꾹 참고, 가을엔 꼭 하리라. 결심했다고 한다.
후추는 이렇게 늘 뒤통수를 친다. 내가 후추를 구석으로 몰고 화를 내고 다그치면 그제서야 어렵게 자기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나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왜 나는 후추를 기다려주지 못할까. 소크라테스의 악처가 이런 기분이진 않았을까..
2007년 여름, 우리에게 처음으로 왔던 권태기는 그렇게 쉽게 갔다. 땀냄새까지 사랑스러운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