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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찬휘 Apr 04. 2022

그래서, ASMR을 깎아 보기로 했다

[ASMR을 깎습니다] 1화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 문득.


2022년 3월. 문득 유튜브를 본격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굉장히 느닷없고도 뜬금없는 생각이다. 그간 유튜브를 안 했던 게 아니라서다. 다만 지금까지는 지원사업을 따 내어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바를 영상으로 만들어 세상에 내어놓고 방송국에 출품하기 위한 일종의 창고 역할이었다고 하면, 이제는 출품이고 지원사업이고 차치하고 조금 더 주된 매체로서 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물론 나는 유튜브에 연예인들이 스태프들을 대동하고 등장한 시점에서 이미 들어가 자리를 잡은 사람이 아니라면 금전적인 성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요행히 어느 정도 성과를 내는 이들도 유튜브 수익만으로는 스태프 월급 주기도 벅차다는 건 영상 제작 업체와 관계해 본 관계로 이미 잘 알고 있다. 유튜브에서 수익을 내려면 어째라 저째라 호통 치는 친구들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어쩜 그 나이들에 표정들부터 가관인데 심지어 "유튜브에서 돈 벌 생각 없으면 하고픈 걸 해라, 하지만 유튜브에서 돈 벌고 싶으면 하고싶은 걸 하면 안 된다"라는 가르침 앞에서는 다른 의미로 탄복을 안 할 수 없었다. 그래 여기 그런 바닥인 거, 알고 있다.


그런데 내게는 대안이 없다. 늘 하던 것처럼 책을 쓰는 것 외에, 글과 만화 연재 매체를 더 뚫는 게 아니라면 - 물론 앞으로도 뚫겠지만 - 콘텐트를 쌓는다는 차원에서 내게는 블로그나 브런치나 유튜브나 다를 바가 딱히 없다. 글과 동영상의 차이를 감안한다 해도 '콘텐트'라는 차원에선 그렇다. 온라인 매체 상황은 앞으로 더 좋아질 리 만무하고, 외고에 기대선 먹고 살 방법이 없다. 그런데 유튜브는 나중에라도 그 자체로 돈이 될 '가능성'이 있다.


푼돈이라도.

지원사업을 안 따도.

출품을 안 해도.

게다가 사람들이 영상은 봐.

글은 안 봐도.


- 아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그간 내가 동영상 제작을 대하던 입장이 내 안에서 홱 변했다. 유튜브에 매진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조금 더 본격적으로는 대해야겠구나. 나의 목표는 여전히 레거시 미디어지만, 이제는 유튜브 또한 목표의 하나로 두어야 하겠다- 일단 그렇게 생각했다. 베이스캠프, 내지는 유의미한 콘텐트 포토폴리오 창구로서. 문제는 그거다. 유튜브는 동영상 플랫폼이다. 뭐가 됐든간에 영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내 주종목은 글이다.


그간 "영상으로 글을 쓴다는 것에 관해 연구 중"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거짓말은 아니다. 나는 그동안 내 돈 들여서 내가 기획한 프로그램을 외주 맡겨 제작하기도 했다. reTypist라 이름 붙인 이 프로그램은 배경색과 속도를 입력해 두고 문장을 적은 후 재생 단추를 누르면 해당 문장을 문자 그대로 '다시 타이핑'하며 이를 동영상 콘테이너 포맷인 mp4로 녹화한다.


배경색을 초록색이나 파란색으로 놓고 녹화를 하면 제법 긴 문장도 직접 타이핑하는 것처럼 동영상 파일로 만들어준다. 프리미어 프로나 파이널 컷에서 이를 불러다 놓고 크로마키 처리만 하면 간단하게 많은 문장 단위를 타이핑하는 듯 노출할 수 있다. 이게 중요한 까닭은 문단 단위로 화면에 뿌렸을 때보다 타이핑하는 과정으로 시간을 흐르게 할 때 그나마 '읽는' 감각을 유지시킬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할 수 있으면 나는 이 프로그램을 조금 더 발전시킬 예정이다. '글'을 영상으로 '읽게' 하는 감각을 나름대로 연구하고 있다는 말 자체는 그래서 내 입장에서는 진심이었다.



그런데 그럼 뭐하나. 일단 채널이 그야말로 창고 같았는데. 보는 사람이 있어야 성과도 있겠지. 이런저런 연구와 궁리만 쌓다가, 오디오 기반 영상 콘텐트의 제작법도 연구해 보다가, 만화를 어떻게 영상으로 만들어야 하나 따위도 연구하다가… 어느 순간 그 모든 게 다 진절머리가 났다. 채널 자체가 살아 있질 않은데 이 이야기가 뭔 소용이야.


그래서 일단 꾸준히 쌓을 거리를 생각해 보기로 했다. 기왕이면 남의 시청시간을 빼앗을 수 있으면서, 마이너스럽더라도 막상 쓰려는 사람에겐 일말의 효용성도 있으면서, 막상 내가 해 왔던 일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게 뭐가 있을까.


궁리하고 궁리해보다가 퍼뜩 든 생각이 있었다. 아 나 여행 작가였지. 그리고 여행지에서 채집하고 다녔던 소리와 동영상이랑 사진들이 있지. 그것도 제법 많이. 생각해 보니 취미가 소리 채집이어서 곧잘 모아놓고 다녔다. 하다못해 비가 오거나 할 때 새벽녘에 사람 없을 틈을 타서 녹음기 들고 나가기도 하고, 한창 매미 울 때 매미 코 앞에다가 카메라 들이대기도 하고 별 짓을 다 했더랬다. 소리가 다 비비슷비슷하지 뭐 할 수 있지만 내게는 그 시점 그 순간 그 공간에서 나는 소리를 남겨놓는 것 또한 내 안에서의 작은 역사를 남긴다는 감각이어서 그랬다. 여행지 가도 취재하면서 곧잘 장면들 남겨놓고 그랬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그거 풀면 되겠네? 2시간 짜리로 편집해서, 틀어놓고 그냥 보든지 듣든지 하라고 하고? 그걸 시리즈로, 한 100개 정도 채우면 갯수 좀 나오겠는데?


그거 ASMR이잖아.

좀 시끄러우면 어때? 귀신 나올 것 같은 소리들로도 사람들 잘만 끌더만.

그럼 나는 여행과 일상이다!


그래서, 한 번 ASMR을 '깎아' 보기로 했다.

찍어놓은 장면들 하나하나를 편집의 힘을 빌려 만들어내 보는 거다.

일단은 내 유튜브 좀 키워놓고 봐야겠다.


대오각성 후 타이틀도 바꾸었다. 매우 심각하게 미친 짓이다. 이렇게나 만용에 가까운 타이틀이라니!


* 이 글은, 이후 제작하는 ASMR들에 얽힌 에피소드들을 중심으로 기술해나갈 예정이며 ASMR은 '일단' 100회를 목표로 만들 예정이다. 성원해주시면 이 글도 100회는 나갈 예정이다. 그러므로 아래 링크를 눌러, "구독과 좋아요 알람설정까지"…는 됐고 일단 구독을 "부탁합니다".



■ 서찬휘 유튜브 : 《만화와 여행은 서찬휘》

https://youtube.com/seochanhwe/sub_confirmation=1


■ 서찬휘 ASMR 재생목록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UhtI1oer_jpjLhd8FMJfPHfXJ8G2mx4X


* 그리고 이걸 또 글로 쓰는 건 브런치가 하도 당신 글 못 본 지 오래됐다고 자동 메시지를 계속 보내오는 정성이 갸륵해서라기보다 살짝 귀찮아져서다. 에잇 이렇게 끈덕지게 굴다니! 기왕 시작한 거 여러분이 책임까지 져 보라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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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칼럼니스트, 만화 창작자, 여행 작가 서찬휘


만화와 여행을 따로 또 같이 담아내고 있는 어문저술가. 저서로 《키워드오덕학》《나의 만화유산 답사기》《덕립선언서》(만화·웹툰작가 평론선) 《윤승운》《한혜연》《김진태》등이 있으며 아내인 헤니히와 함께 웹툰  〈임신하기 어렵네 : PAN&AL's 난임일기〉〈작정해도 어렵네 시즌 1~2 : 판다와 알파카의 육아일기〉를 육아·출산 전문 웹진 베이비뉴스에 연재.


영상 제작물로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 2019 만화 다각화 지원사업 선정작인 《만화 속 배경 여행과 경기문화재단 2020년 공공예술 프로젝트 선정작 《방구석 경기여행》등이 있다. 각 영상 기획 가운데 일부는 OBS, KTV 등 방송사 시청자 프로그램 방영작으로도 선정되어 방영되었다.


https://seochanhw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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